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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세이/<저 산후 우울증인 것 같아요>

10. 모성에 대한 당위성 (마지막 회)

by BOOKCAST 2022.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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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는 누가 돌봐?”

많은 심리이론에서 엄마의 역할을 강조하고, 최근에는 그것을 엄마든 아빠든 할머니든 ‘주양육자’로 바꾸어 이야기하려는 움직임이 있기도 하나 여전히 우리는 그것이 엄마를 이야기함을 알고 있습니다. ‘엄마의 양육 태도가 아이의 성격과 발달에 영향을 준다, 엄마가 어떻게 그런 말을? 엄마라면 할 수 있지!’라는 말들은 그 엄마가 내가 되고 보니 무겁고 나를 속박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더 괴로운 것은 그 이론들이 없는 말을 하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제가 현장에서 보고, 듣고, 배우며 경험한 것은 부모의 양육 태도가 중요함을 드러냈습니다. 기질 등 선천적 특성과 다른 환경적 요인을 배제할 수 없으나, 주 양육자와의 양적인 시간과 질적인 상호작용 모두 무척 중요합니다. 그러면 어쩌자는 것인가? 적어도 우리는 우리가 모성에 대해 어떤 당위성을 부여하고 기대하고 있는지를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것이 시작입니다. 나 스스로, 타인이 나에게, 내가 타인에게 모든 양육의 의무를 오직 ‘엄마’에게 냅다 뒤집어씌우는 게 아니라, 엄마도 한 사람임을, 혼자서는 결코 질 좋은 양육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짐을 나누고 부족한 부분을 비난하는 손길을 거두어야 합니다.

저는 여성이자, 엄마로서 이런 무거움을 느꼈으면서도 어린이집에 다니지 않는 아기를 둔 엄마가 혼자 나와 있거나, 어린이집이 파한 시간 이후에 혼자 다니는 엄마를 보면 ‘아기는 누가 봐 줘’ 하고 묻고 싶어 하는 저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아기를 누군가에게 맡기고 나오는 과정이 순탄치 않다는 걸 공감하고, 지금 얼마나 시원할지 얘기하고 싶어 하는 의도는 차치하고, 질문 자체에 ‘당연히 지금 아기를 보고 있어야 할 사람은 엄마’라는 가정이 전제해 있습니다. 여성이면서 엄마이기도 한 상대가 ‘나는 지금 아기를 돌보지 않고 다른 것을 하고 있다’라는 죄책감이 내면화해 있다면 무척 불편했을 것입니다. 남편이 “요즘 애가 밥을 잘 안 먹네. 살이 안 찌네”라고 한 말이 저를 비난하고자 한 게 아닌데, 비난처럼 느껴졌듯이요.

많은 사람이 ‘저 엄마는 아이를 어떻게 입혔고, 어떻게 챙기고, 어떻게 대하는지’를 봅니다. 저의 경우, 김밥집 아주머니 외에 지나가는 아주머니나 할머니들이 그러했습니다. 아이를 안고 걷고 있으면 “아기 덥다, 아기 춥다, 아기 힘들다” 참견했지요. 아이를 키워 본 여성일수록 그러하다는 게 역설적입니다. 여성이 여성에게 엄마로서의 당위성을 부과하고 있다는 방증일 것입니다.

남편의 육아 휴직 후 제가 일하러 간 첫날 받은 질문은 “아기는? 그래도 엄마가 봐야지”였습니다. 남자 직장 동료의 말입니다. 어린 둘째를 두고 일하러 나갔을 때, 첫째만큼 곁에 있어 주지 못하는 제 마음은 편했을까요? 제가 2년간 겪은 산후 우울과 부부의 관계 회복을 위한 선택이었다는 걸 그 직원이 알기나 할까요? 그리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설명할 수 있을까요. 책 한 권에 담아야 할 정도로 긴 이야기를 ‘그래도’라는 성찰 없는 말로 일축한 그는 상대에게 어떤 불쾌감을 일으켰을지 모를 것입니다.

‘그래도 엄마가, 어떻게 엄마가’라는 표현에서는 엄마의 존재를 이해하고자 하는 태도를 찾을 수 없습니다. 엄마라는 당사자의 행동에 대한 이유를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엄마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어떻게 선생이, 그래도 공무원인데’라는 말도 개인에 대한 이해보다는 사회적 신분과 역할에 많은 것을 가두는 말입니다. 그리고 가둬지는 것에는 행위만이 아니라 감정도 있습니다. 사랑은 넘쳐야 하고 미움은 없어야 합니다. 만족감은 당연하고 후회란 불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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