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네이티브 영어의 미덕은 화려한 발음과 빠르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쉬운 영어’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영어유치원에서 주최한 학부모 간담회에 간 적이 있습니다. 영어유치원답게 벽에 ‘We Make Our Future!’라는 구호가 붙어 있더라고요. 그런데 마음이 좀 찜찜했습니다. 문장이 어색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한국어로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나가요!’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에요. 만일 TV시리즈〈프렌즈〉의 챈들러와 같은 시니컬한 미국인이 본다면 "Who doesn’t?(누군 안 그래?)”라고 할 법한 구호였어요. 영어 문장으로 온전하기 위해서는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그’ 미래가 밝고, 건설적이고, 진취적인 미래라고 설명해 주는 편이 낫다는 것이죠.
더 아쉬웠던 건 대형 스크린으로 보여준 유치원 재학생의 짧은 인터뷰 동영상이었어요. 7살 안팎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크리스마스를 주제로 영어로 귀엽게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정확하진 않지만 “My excellent memory about Christmas is.” 이런 식으로 이야기했습니다. 이 역시 듣기에 자연스럽지는 않았죠. 영어로 ‘excellent memory’라고 하면 ‘멋진 추억’이 아니라 ‘뛰어난 암기력, 기억력’이 먼저 떠올랐거든요. 그냥 개별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 그대로 작문하고 외운 문장 같았어요.
일반적으로 복수형으로 ‘memories’라고 하는 편이 ‘추억’이라는 뜻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또 형용사 ‘excellent’를 앞에 붙이면 ‘memories’의 뜻은 더욱 ‘기억력, 암기력’에 가까워집니다. 어떤 대상을 평가했을 때 활용하는 빈도가 높은 형용사이기 때문이죠. 아예 기억력과는 궁합이 안 맞는 ‘sweet’를 쓰면 어떨까 싶어요. sweet memory’를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달콤한 기억, 좋은 기억’이라는 뜻이 나오네요.
“아니 문법도 틀린 데가 없고 사전에서 뜻을 찾아 그대로 썼는데 뭐가 문제라는 거죠?”라고 따져 묻는다면 ist because"(그냥…)”라고 말하고 ‘shrug(어깨를 으쓱하다)’ 하는 정도로 답할 것 같긴 합니다. 언어라는 게 원래 그렇습니다. 단지 문법이나 사 전의 지식만으로는 완전하게 설명할 수 없는, 너무 오랜 시간 많은 이들이 집단적으로 사용해온 습관의 결과물이니까요. 보다 더 자연스러운 영어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굉장히 답답하고도 꼼꼼한 길을 가야 합니다.
알버트 슈바이처는 이렇게 말합니다.
“Happiness is nothing more than good health and a bad memory”
행복은 건강과 나쁜 기억력에 불과하다.’라는 뜻이에요. bad memory’가 나쁜 기억이 아니라 나쁜 추억이라면 행복할 수 없겠죠?
다시 이야기의 원래 줄기로 돌아와서 이날 결국 이 영어유치원에서는 좋은 영어 환경을 제공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속으로 ‘어이쿠야!’ 하고 있는데 주변에 앉은 다른 학부모는“우리 애도 ‘저렇게’ 영어 잘하는 아이가 될 수 있을까?”하고 기뻐하는 눈치였어요. 이에 호응하듯 원장님께서 마이크를 잡고 연신 “어머님들, 우리 아이도 저렇게(?)될 수 있습니다!”라고 홍보하더라고요.
물론 완벽하지 않다고 해서 영어로 막 발화를 시작한 아이를 지적해서는 안 됩니다. 정확하지 않다고 입을 막으면 주눅이 들거나 영어를 싫어하게 될지 모르니까요. 하지만 ‘정확성’ 보다 줄줄 쉬지 않고 말하기만 하면 잘하는 것으로 쳐주는 애매한 ‘fluency(유창성)’를 추구하는 교육 현장이 좀 아쉽기는 합니다. 성인의 자기계발 영어도 큰 흐름은 거의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발음과 유창함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하지만 유려한 발음도 유창함도 ‘정확성’이 결여되면 무용지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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