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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혼자서 종이우산을 쓰고 가다>

01. 아무도 어디로도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by BOOKCAST 2022.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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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 라운지에는 피아노가 있고 촉촉한 곡이 연주되고 있다. 부스석에 자리를 잡고 앉은 세 사람은 각자 마실 거리를 주문했다.

여위고 키가 크고 피부가 가무잡잡한 시노다 간지는 여든여섯 살, 대머리에 몸집이 작은 시게모리 츠토무가 여든 살이고, 축 늘어진 뺨이 불도그를 연상시키는 데다 숏 보브 스타일의 백발이 남의 이목을 끄는 미야시타 치사코는 여든두 살이었다. 세 사람이 한자리에 모이는 건 두 달 만으로, 그전에도 그다지 띄엄띄엄 만나지는 않았기에 예전과 같다고 세 사람 다 느끼고 있었다. 어쩐지 간단히 옛날로 돌아와 버린 것 같다고. 실제로는 아무도 어디로도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시절엔 이런 날이 오리라곤 생각 못했는데.”
치사코가 그렇게 말하고 건배하듯 맥주잔을 살짝 들어 보인다.

하긴, 그렇게 따지자면, 간지 씨가 시골살이를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고, 벤짱 머리가 그렇게 확 날아가 버릴 줄 생각이나 했겠냐만.”

거울을 좀 봐요, 남 말할 처지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될 테니.”

츠토무가 받아치는 그 옆에서 간지는 생각한다. 그 시절이란 대체 언제를 말하는 걸까. 처음 만났을 무렵일까(그때라면 간지는 스물여섯 살이었다),  10년 후일까, 아니면 20년 후? 언제든 말이 된다. 세 사람은 쭉 사이좋은 친구지간이었으니까.
어떤 상황에서도 술은 맛있네.”

물에 희석한 위스키를 홀짝홀짝 마시며 츠토무가 히쭉 웃어 보인다.
술만큼은 나를 배신한 적이 없어요.”

나는, 하고 입 밖에 내진 않고 치사코는 생각했다. 나는 개에게만은 배신당한 적이 없다고.
오늘 세 사람이 모인 곳은 도쿄역에서 가까운 호텔의 로비이다. 주로 신칸센 편으로 오는 시노다 간지의 편의를 고려해서 정한 장소였지만, 간다 출신인 미야시타 치사코에게는 옛날부터 익숙한 지역(너무 변해서 올 때마다 당황스럽긴 해도)이고, 한때나마 긴자에서 일하며 주변을 놀이터 삼았던 시게모리 츠토무에게도 나름 그리운 장소라고 할 수 있었다.

맨 먼저 도착한 사람은 간지였다. 체크인을 마치고 일단 객실로 올라갔는데 세면실을 사용하고 나니 달리 할 일도 없어서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렀지만 로비로 내려왔다. 그러자 거기에 츠토무가 와 있었다. 세밑이어서 거리며 로비며 사람들로 북적였지만 두 사람은 서로를 금방 알아보았다. 두 사람에게는 그게 뭔가 결정적인 일인 양 느껴졌다. 상대를 찾다가 눈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찾기 전부터 자연스레 눈에 들어왔다. 마치 자신들과 그 이외의 인간들이 이미 확실하게 갈라져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약속한 다섯 시보다 15분 늦게 도착한 미야시타 치사코도 오랜 두 친구를 금세 알아보았다. 커다란 꽃이 장식된 받침대 앞에 무료한 듯이 나란히 선 두 남자가 눈에 들어왔을 때 말쑥하다라는 생각에 치사코는 기뻤다. 치사코가 생각하기에 중요한 것은 그거였다. 말쑥한 것. 게다가 두 남자의 얼굴에는 역사가 새겨지고 품위와 지성과 좋은 성품이 배어 나왔다. 적어도 치사코에게는 그리 보였고 빨려 가는 듯이 달려갔다.

뛰지 않아도 돼, 뛰지 않아도, 라는 것이 츠토무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었고, 짐이 있나? 라는 것이 간지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었다. 치사코가 핸드백이라 하기엔 너무 큰 가방을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다시 생각했다. 짐이 있어서 나쁠 이유도 없다고.

늦어서 미안해요. 어디 좀 잠깐 들렀다 오느라.”
치사코는 그렇게 말하고,
따뜻하네, 안은.”
하면서 그 자리에서 바로 코트를 벗었다. 빨간 스웨터에 검정 스커트. 간지도 츠토무도 그 눈에 띄는 복장을 보며 치사코다운 선택이라고 생각했지만 둘 다 입 밖에 내진 않았다. 치사코 또한 두 남자의 복장을 재빨리 훑어보았다. 오늘이라는 날을 위한 옷. 츠토무는 양복에 중절모, 간지는 스웨터에 코듀로이 바지. 어느 쪽이나 치사코가 익히 잘 아는 그들의 복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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