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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무작정 부동산 사무실을 차렸습니다>

05. 젊은 나이에 부동산을 해도 괜찮을까?

by BOOKCAST 2022.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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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의 문제가 아닌 실력의 문제

올해 나이 서른다섯, 사회생활에서 적은 나이가 아니라는 걸 나도 잘 안다. 아이를 몇이나 낳은 친구들도 여럿 되고,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친구들도 이제는 어느 정도의 직함을 달고 있다. 요즘은 젊은 사람들도 부동산 중개 일을 많이 하지만 내가 있는 곳은 지방이라 그런지 아직도 신기하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공인중개사’ 관련 개인 블로그와 유튜브를 하다 보면 “나이가 어린데 부동산 해도 괜찮을까요”는 꾸준하게 들어오는 단골 질문이다. 나 또한 개업하기 전에 가장 많은 고민을 하게 한 주제였다. 지방의 10평짜리 조그만 부동산 사무실을 운영하는 내 이야기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나의 이야기를 한번 해보려고 한다. 인터넷에서는 부동산을 하려면 어느 정도 나이가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고, 나이가 어리면 적은 금액의 원투룸 중개밖에 못한다는 말이 대부분이었다. 반신반의하긴 했지만 일단은 도전해 보았다. 

개업 초반에 사무실에 앉아있으면 “아가씨, 사장님은 어디 갔느냐”며 사장님을 불러 달라는 말을 참 많이도 들었다. 나와 상담을 하면서도 곁눈질로 벽면에 붙어있는 자격증을 살피시는 분이 워낙 많아 자격증 걸어놓는 위치를 아예 가게 전면으로 옮겨 놓기도 했다.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어리면 경력이 없다, 곧 초보다’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에 나이가 어린 공인중개사들은 원투룸 중개밖에 못한다는 이야기가 있는 것 같다.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처음에 일했던 공장형 사무실에서는 사고가 가장 적고 분쟁 발생 확률이 적은 원투룸 임대만을 했었다. 그곳에서는 계약서 브리핑이라고 해봤자 계약서를 들이밀면서 여기 여기 확인하고 사인하라고 하는 것이 다였다. 어쩌다 간혹 상가나 매매 매물이 접수되기도 하였지만 대체로는 경쟁력이 없는 매물(매매가 성사되기 전까지 시간이 꽤 소요되는 매물)이었고 접수된 매물에 적합한 광고 루트를 알지 못해 장부에만 기록되어 있는 것이 다반사였다. 

소속 공인중개사로서 일했던 사무실에서 원투룸 임대 빼고는 매매계약이 진행되는 것을 단 한 건도 본 적이 없다. 다들 벌어들이는 수입에 비해서 많은 광고비를 지출하고 있었으며, 한 우물 안에서 한정된 정보를 가지고 오직 원투룸 임대로만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었다. 나는 그때 너무나 간절하게 매매가 해보고 싶었다. 중개대상물의 금액이 중요한 게 아니라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좋으니 매매계약이 너무나 해보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워킹 손님이 전혀 없는 2층에 위치해 있는 사무실에서 원투룸 임대 광고만 하고 있는데 매매 손님이 찾아오는 것이 더 이상한 것이지만 그때는 마음의 여유도 없고, 일에 대한 시야도 좁아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때의 나는 동네 부동산에 다 내놓고도 소식이 없어 우리 부동산 사무실까지 나온 경쟁력이 없는 매물들을 매물 장부에서 꺼내어 이런저런 광고를 해보곤 했다. 비싼 유료 광고를 이리저리 해보면서, 원투룸 임대로 번 돈을 모두 새로운 광고에 쏟아붓는 과정을 반복했다. 그럼에도 계약은 쉽지 않았고 내가 나이가 많지 않아 원투룸 임대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점점 커져만 갔다. 

어쩌다 잡힌 매매 안내는 온 열정과 성의를 다해서 진행했다. 많은 손님들이 생각해 보고 연락 준다는 말만을 남겨놓고 사라졌으며 수없이 많이 안내를 해도 계약으로 성사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간혹 손님들의 소중한 피드백을 받았고, 점차 더 해당 매물에 적합한 광고 루트와 브리핑 방법, 중개 스킬을 알게 되었다. 이 과정을 수도 없이 반복하고 나서야 나는 첫 매매계약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첫 매매 계약이 성사되자 두 번째는 아주 쉬웠다. 

내가 마냥 어렸기 때문에 매매를 하지 못했던 것일까. 나의 경우는 아니었다. 내가 젊기 때문에 금액대가 높은 중개대상물을 거래하지 못한 게 아니라 내가 준비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회사원이 월차나 반차를 내면서까지 일정을 비워서 부동산을 보러 오는 것은 매수 의향이 높다는 것이었지만, 첫 번째로 그 손님들이 어떤 물건을 원하는지, 원하는 물건을 정확히 캐치하지 못했고, 두 번째로 입맛에 딱 맞는 부동산을 제시하지 못했다. 내 장부에는 비교적 사람들에게 경쟁력이 낮은 물건들만 주로 접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거래를 성사하고 싶은 마음에 손님의 취향에 맞는 물건을 다시 찾아보기보다는 가지고 있는 물건의 좋아 보이는 점만 계속 강조했었고, 그중 손님이 마음에 들어 하는 물건이 있어도 계약으로 유도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했던 탓이었다. 광고를 내는 것은 나이에 상관없이 그 누구나 돈만 주면 할 수 있지만 그 광고를 보고 연락 온 손님들과 상담을 하는 것은 다르다. 짧은 순간 몇 마디만 나눠보면 실력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손님이 무언가에 대해서 물어봐도 내가 해당 분야의 지식이 없었기에 전혀 엉뚱한 대답을 하고 있거나 핵심적인 내용은 쏙 빠져있는 순간적 재치로 상황을 모면하는 대답을 하곤 했다. 그것에서 내 실력은 드러났다.

그런 대답을 들으면 나의 신뢰도는 더욱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 무렵의 나는 고시원 매매 광고를 내놓으면서 고시원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나 정보가 전혀 없었고, 손님이 고시원 운영이나 수익률에 대해 물어보면 아는 바가 없어 자신 없는 말투로 알아보겠다 얼버무리며 소중한 손님들을 떠나보냈다. 이때 나이가 어린 것은 더더욱 핸디캡이 돼버린다. 부동산은 전 재산에 해당되는 큰돈이 왔다 갔다 하는 만큼 경험치와 일의 숙련도가 중요시된다. 아무래도 너무 젊거나 경험 없어 보이는 사람에게 전 재산에 해당하는 돈을 주고받는 거래를 맡기는 것은 못 미더울 수도 있다. 젊은 사람이 첫눈에 신뢰를 얻지 못하는 건 사실이다.

나는 지금도 까다로운 계약이나 어려운 계약을 할 때는 검증의 시간을 갖는다. 손님들은 어떤 것을 일부러 질문해 보기도 하고 내가 어떻게 대답할지 지켜보기도 한다. 그런 검증의 시간을 거쳐야 손님은 나에게 비로소 마음을 열게 된다. 부동산 중개를 하려면 어느 정도 나이가 있어야 한다는 말은 어떠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상황을 유연하게 넘어갈 수 있는 지혜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한번은 내가 5년 차일 때 회사를 갓 정년퇴직한 초보 대표님과 공동중개를 한 적이 있는데 손님이 나에게 열심히 하면 저 대표님처럼 평생 부동산 할 수 있다고 해서 그 대표님과 서로 눈빛 교환하며 웃음이 터진 적이 있기도 하다. 가만히 있어도 경력이 많아 보이는 것은 너무 부러운 일이지만 손님들은 중개사의 겉모습만 보고 거래를 하지 않는다. 중개를 하다 보면 무엇보다 실력이 필요할 때가 많다. 누구나 거래하고 싶어 하는 큰 물건, 그런 류의 거래는 확률상으로도 계약이 쉽지는 않다. 그 적은 확률을 고사하고도 나이가 어려서 계약을 못 한다기보다는 실력이 없어서 계약을 못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내 경우에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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