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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대중문화/<사진기획전시>

08. 홀로 세상과 마주하라

by BOOKCAST 2022.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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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면 더욱 잘되는 일들이 있습니다. 힘든 일을 할 때도 같이 나눠 하면 수월하게 끝나게 되죠. 함께 영화를 보거나 쇼핑을 할 때도 혼자 하는 것보다 더 재미있고 즐거울 때가 있어요. 하지만 사진의 경우에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우선 사진을 하는 사람들과 함께 출사라는 것을 가는 경우, 사람들과 어울려 사진 찍기 좋은 풍경이나 장소를 찾아다니게 됩니다. 그리고 함께 사진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되죠. 서로 조언하며 사진에 대한 이야기꽃을 피우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사실 그게 전부입니다. 이렇게 되면 사진에 대한 고민이나 사색과는 점점 멀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즉 함께 어울려 다니며 좋은 대상이나 구도를 찾아다니다 보면 정작 사진에 몰입하기보다는 인간관계나 상황의 변화 때문에 고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많은 생각을 할 때 사진에서도 그 생각이 드러나는 법이죠. 사진은 찍는 사람 스스로 프레임을 선택해야 하는데 함께 다니기만 한다면 자신만의 사진을 찍을 기회가 적어지게 마련입니다.

 


아마추어 사진가들 중에는 종종 혼자 찍으러 다니는 것을 외로워하며 왠지 낯설어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진 동호회에 가입하고는 사진 찍기 좋다는 곳으로 함께 촬영하러 다닙니다. 그러나 가입 후 몇 달 못 가서 탈퇴하거나 출사를 더 이상 나가지 않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여럿이 몰려다니다 보니 사진이 더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그 자리에 계속 머무는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관광지나 여행지를 다니다 보면 사진기를 둘러메고 사진을 찍고 있는 단체와 마주치는 경우가 있어요. 하지만 특별한 곳에서 멋진 사진을 찍기 위해 함께 어울려 다닐 경우 차별화된 자기만의 사진이 나오기가 어렵습니다. 쉽게 말해 남들과 비슷한 이미지만 수두룩하게 쌓이곤 하죠. 자기만의 사진, 자기만의 특별한 것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기꺼이 혼자가 되어 주변 대상들을 관찰하면서 새로운 것을 찾는 기쁨을 느껴야 합니다.

미국의 사진가 로버트 프랭크는 ‘미국인’이라는 사진집을 내어 전 세계 사진계에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는 홀로 미국을 누비며 힘들게 촬영하였는데, 결국 그가 바라본 시각은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많은 영감과 새로운 시각을 가져다주었죠. ‘나다움’은 바로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합쳐질 때, 즉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을 때 비로소 찾을 수 있어요.

골목길, 작은 상점, 길모퉁이를 혼자 거닐 때 일견 소소한 듯 보이던 나무나 꽃 등이 확대되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새로운 느낌이 들 때마다 사진을 찍고 자기만의 생각이나 느낌을 글로 기록해 볼 수도 있어요. 그 사진에 대한 느낌과 사진을 찍은 이유 등을 기록하는 것이죠. 사진 일기와도 같은 방식, 혹은 자신에게 익숙한 주변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방법으로 ‘나다움’을 찾을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나다움’이란 자신에게 익숙한 것들을 날마다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사진을 찍고 그 느낌을 솔직히 적어 나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어요. 자기만의 기록을 통해 그 과정을 느껴보고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죠.

매일 사진을 찍고 기록하다 보면 하루를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하게 보내게 될 뿐만 아니라, 자신이 모르던 감정들과 생각들을 알게 되고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이러한 사진과 기록들이 모이면 나중에 자기만의 진정성 있는 사진 작업 노트로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고 무엇이든 좋으니 느낌대로 한번 찍어보세요. 이때 사진에 어떤 의미를 두려고 하지 말고 마음 가는 대로 찍는 것이 좋습니다. 너무 의미를 두지 않는 게 좋아요. 그저 가볍게 사진으로 자신의 느낌과 생각들을 알아간다는 마음가짐으로 말이죠. 자신을 찾는 일련의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좋습니다. 이렇게 찍은 사진과 기록들은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주변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줄 것입니다.

이와는 달리, 장소를 돌아다니지 않고도 자기만의 시간을 만들어 ‘나다움’을 찾는 방법도 있습니다. 바로 숨겨져 있는 자기 내면을 사진으로 표출하는 것인데요, 자신을 보여주고 내면을 드러내는 셀프 사진을 말합니다. 셀프 사진은 자기와의 직접적인 대면 방법이죠. 그만큼 자신과의 시간을 가져야만 가능합니다. 많은 시간이 아니더라도 하루에 15분 정도면 됩니다. 이 시간은 남에게 보여 주는 작업이 아니라 오롯이 자기만을 위한 시간입니다.

셀프 사진은 자신을 알아가고 이를 통해 사진을 더 발전시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입니다. 바로 사진을 통해 ‘나다움’, 즉 자신을 알아가는 시간을 갖기 위함이죠. 이를 통해 자기 주변과 세상을 자기만의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사진을 통해 자신을 이해하고 내면을 바라보면서 세상과 자신을 발견할 수 있게 되죠. 거창할 필요는 전혀 없어요. 오롯이 느끼는 그대로 자신을 표현하면 됩니다.

영국 유학시절 잡지사 인터뷰를 위해 영국에서 작업하던 일본 사진가를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오전에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을 때였죠. 그 작가는 갑자기 저에게 양해를 구하고 잠시만 쉬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그가 한 행동이 저를 더 놀라게 했죠. 잠시 전화를 하거나 화장실에 다녀올 줄 알았는데, 갑자기 한발자국 옆으로 가더니 자신의 셀프 사진을 찍는 것이었습니다. 정확히 12시 정각에 말이죠. 저는 그에게 왜 갑자기 일을 멈추고 사진을 찍었는지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죠.

“제가 요즘에 하는 정오 12시 프로젝트예요. 제가 어디에 있든, 누구와 있든 어떤 상황이든 무조건 정오 12시가 되면 그 장소에서 셀프 사진을 찍습니다. 이것은 저 자신을 찾기 위한 기록입니다.”

몇 개월 동안 한 번도 놓치지 않았다는 그의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죠. 저는 그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만약 그때 중요한 사람과 약속이 있거나 식사 중이면 어떡하나요?”
“그래도 무조건 찍어요. 우선 찍고 나서 상황을 이야기하면 다들 이해하고 오히려 제 프로젝트에 관심을 갖게 되죠. 저는 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정오 1분 전에 꼭 알람을 설정해 놓습니다. 꾸준히 할 수 있는 비결이죠.”


처음에는 일본을 떠나 영국에서 지내고 있는 자신의 정체성, 즉 작가 자신을 좀 더 알기 위해 시작했다고 했어요.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 선택한 사진 방법이라면서 말이죠. 그는 자신을 알아가기 위해 셀프사진 촬영을 선택한 것이었죠. 매일 똑같은 시각에 자기 모습을 사진기로 담는 것으로 말이죠. 자신을 알아간다는 것, 그리고 ‘나다움’을 찾는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임을 저는 한 사진가를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고 주변을 돌아보며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 혹은 자신을 관찰하면서 자기만이 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에서 진정한 ‘나다움’을 발견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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