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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세이/<너를 만났다>

01. 삶이란 너랑 했던 일들의 기억

by BOOKCAST 2022. 1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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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 기술을 어떻게 결합할 생각을 했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때마다 다른 대답을 한 것 같은데,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다만 ‘어떤 공간 안에서 헤어진 가족을 다시 만난다면’이라는 기획안을 쓰긴 했다. 자신은 별로 없었다. 기획을 꺼내면 접어야 할 이유가 할 이유보다 많은 법이다. 가장 구체적인 부정적 반응은 “HMD를 쓰고 있으면 표정이 안 보이는데 감정이 전달되겠냐”라는 반응이었다. 맞는 말이라 뭐라 하기도 어려웠다. 이런 말들을 들으면 “아무래도 그렇지” 하고 접을 생각부터 하게 된다.

그로부터 1년 후, 코로나가 막 유행하던 2020년 1월에 <너를 만났다>의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홍보 자료에 VR과 휴먼 스토리의 결합이라고 해서인지 많은 기자가 와주었다. 프로그램을 소개하는데 긴장해서 적어온 말들을 빠르고 어색하게 읽어 나갔다. “…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삶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삶이란 너랑 했던 일들의 기억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삶은 너랑 했던 일들의 기억. 그런 당연한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은 힘들고 즐거웠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주요 모티브도 결국 ‘시간’이다. 같은 세상에서 아이를 사랑하며 살던 아빠가 임무를 수행하다가 블랙홀과 웜홀을 통과해 결국 아이와 다른 시간 속에 빠진다는 내용이다. 과학적으로 가능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빠는 책장 너머로 아이가 사는 모습을 본다. 아무리 크게 이름을 외쳐도 아이는 돌아보지 못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애틋한 장면이다. 무언가를 개념화하지 않더라도, 문학과 영화 등을 통해 비슷한 감성을 느끼는 훈련은 도움이 된다.

가장 아픈 이야기는 아무리 원해도 이룰 수 없는 것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배우는 박목월 시인의 ‘하관’이라는 시가 있다. 저자가 아우를 잃고 쓴 시다. ‘다만 이곳은 열매가 떨어지면 툭 하는 소리가 들리는 세상’이라는 구절. 여기는 열매가 떨어지면 툭 소리가 나지만 저곳은 소리가 들리지 않으며, 두 세계는 절대 넘어갈 수 없다. 그리고 이쪽 세계에는 저쪽 세계에 있는 사람을 끝없이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모티브는 대자본을 들인 할리우드 대작이나 픽사의 영화에서도 반복된다. 데미 무어가 제일 예뻤던 때의 영화 <사랑과 영혼>에서는 동전 하나로 그 경계를 넘어가 본다. 이런 모티브가 반복되는 이유는 결국, 인간 공통의 운명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운명임을 느끼게 하는 이야기에 많은 사람이 위로받는 것 같다. 가상 현실을 통해서 아주 잠깐, 그 경계를 넘어가 보는 그런 느낌은 이런 사실에서 착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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