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 일을 하면 누군가를 잃은 사람을 너무 많이 만난다. 그래서 이런저런 사연에 둔감해지고,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고 아이템이 될까 안 될까를 고민하는 자신의 모습에 놀라게 된다. 그런데 그날은 그냥 들었다. 너무 맑은 날에, 나연엄마가 눈물을 흘리면서 인생이 실패로 느껴진다고 했다. 아이를 잃으면 엄마는 그냥 슬프기만 한 게 아니었다.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고, 자기 자신을 손가락질하는 인간이 된다. 이상하게 화가 났다. 나라면 어떨까. 아이를 지키지 못했을 때, 나라면 누구를 손가락질할까.
나와 비슷한 연배인 나연엄마는 90년대 개그감을 갖고 있어서 대화하며 자주 웃었다. 그런데 왜 나연엄마는 아이를 잃고 3년 동안, 그렇게 아픈 기억을 기록하고 있었을까. 나연엄마는 농담처럼, 이제 갱년기가 오는 것 같다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했다. 남은 세 아이를 키우다 보면 너무 바쁘니까. 아이들은 쑥쑥 크고 기억은 뒤로 휙휙 지나가는데, 불쑥 찾아오는 기억과 기억하려고 해도 희미해지는 기억 사이에 나연엄마가 있었다. 울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알 수 없는 아이처럼 어쩔 줄 모르는 어른의 표정 을 본 적이 있는가? 나에게 일어난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표정.
나연엄마는 MBC에서 왜 평범한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담으려고 할까 싶었다고 했다. “VR로 아이를 다시 만나본다면 어떨 것 같으세요”라고 물었다. 그냥, 다시 만난다면, 한 번만 다시 만나본다면… 나중에 들었는데, 사실 나연엄마는 VR로 무엇을 한다는 건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고 했다. 나연이 일이니까 그냥 한다고 했단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정신으로 3년을 보내니 삼년상이라는 말이 왜 있는지 알겠다며, 마침 뭔가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게 소위 ‘보내주는’ 것인지, 참아온 말을 토해 내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날 긴 대화를 하고 돌아오면서, 손에 잡힐 듯하게 아이를 기억하는 엄마의 눈빛과 “내가 기억해 주지 않으면, 이 아이는 세상에 없던 아이가 되는 거잖아요”라는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게 말이 되느냐, 억울하다는 말. 마치 누군가에게 따지는 것 같은.
기억해 주지 않으면 사라진다는 세계관은 픽사가 애니메이션 <코코>를 통해 대중적으로 풀어낸 적이 있다. <코코>는 ‘죽은 자들의 날’이 있는 멕시코의 독특한 전통과 함께 죽음을 유쾌하고 애틋하게 섞어서 표현한 영화다. 그 영화에서는 이승에 기억해 주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을 때, 저승의 영혼이 사라진다. 우리는 이 프로젝트에서 ‘한 사람에 관한 기억’을 디테일하게 풀어내지 못하면, 게임 엔진으로 표현된 캐릭터가 매우 민망해질 수 있다는 실재적 위험에 마주했다. 자칫하면 게임 속의 NPC처럼 표현되어, 체험하는 사람과 지켜보는 시청자 모두를 맥 풀리게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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