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스마트폰과 카카오톡이 나온 게 2008년쯤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그때 나는 이미 7년 차 PD였다. 테크놀로지라는 단어를 뭔가 어렵고 SF적인 것으로 느끼며, 우리의 삶과 결합한 약간 소프트한 느낌의 테크놀로지는 생각하지도 못 했다. 방송은 서서히 기울어갔다. 네이버와 카카오같이 개발자를 보유하고 삶의 영역을 바꾸는 빅테크 기업을 방송사와 비교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 되었다.
그래도 <너를 만났다>를 만들며 외부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계속 업데이트되는 신기술을 받아들이고, 될 만한 아이템을 찾는 일은 다이내믹했다. V사와 최종 계약했다. 방송이 나간 뒤에는 둘 다 웃을 수 있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미안한 금액이고, 무모한 도전이었다. 의기투합했던 나날을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마감 기한이 꽤 촉박하고, 완성도보다는 어떻게든 해내는 것을 추구하는 방송일이 업체에도 색다른 경험이었으리라 믿는다. 또한, VR 업계에 게임 엔진이 높은 수준으로 발전하는 와중에 콘텐츠 한 방이 부족했던 것이 행운이었다. 그들에게도 뭔가 화제가 될 만한 콘텐츠가 필요했다.
되도록 많은 VR 필름에 노출되어야 VR 매체의 특성을 알 수 있을 것 같아, 이현석 감독과 부천영화제의 VR 섹션을 찾았다. 그리고 좋은 작품이든, 그렇지 않은 작품이든 꼭 하나씩 깨닫게 되는 것이 있었다. 예를 들어, 몇 만 장의 사진으로 집의 내부를 3D로 만든 시리아 폭격에 관한 저널리즘 작품은 진짜처럼 거칠고 진실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삐걱거리는 나무 바닥을 재현하기 위해 체험장의 바닥을 진짜 나무로 제작한 것이 실재감을 높였다. 시각의 스케일을 크고 작게 변화시킨 작품도 있었다. 눈앞에서 사람을 만났다가 지구를 내려다보기도 하는 효과가 인상적이었다. 모두 새로운 매체를 다루면서 각자의 방식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 기술의 발전을 시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고 싶은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을 보고, 이현석 감독과 각자 좋았던 걸 말하며 맥주와 의견을 나누었다. PD는 심하게 불안해하고 오히려 VR제작 팀원들이 다 잘 될 거라며 웃었다.
영화를 만드는 것과 같은 과정이었다. 결국, ‘이 프로젝트는 무엇인가’라고 자문했을 때 말이 되는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겉멋 든 걸로 느껴지더라도 정확한 언어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을 납득시킬 수 있는 말이어야 남을 설득할 수 있다. 그러고 나서야 실제로 필요한 프로세스로 넘어갈 수 있다. 이 프로젝트는 ‘기억’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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