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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세이/<너를 만났다>

09. VR 저널리즘_용균이를 만났다, 다른 사람의 기억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면?

by BOOKCAST 2022. 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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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방송 이후에 조금 더 새로운 영역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하늘에 있는 가족을 만나는 경험을 사회적으로 가치 없다고 비난해준 분에게도 고마운 마음이었다. 시즌1에서 엄마와 나연이의 사연을 같이 지켜보고, 그 느낌을 전달한 것은 평생 만나기 힘든 아름다운 경험이었고, 자신의 감정을 떠올리고 의미를 찾아준 시청자분들에게도 너무나 감사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VR로 누군가를 만난다’는 개념 이 조금 더 다양한 가능성을 가진 것인지 시험해보고 싶었다. ‘휴먼 스토리를 너무 신파적으로 연출하는 게 아니냐, 과연 그런 기술의 결합이 사회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느냐’라는 말에 대한 답을 프로그램으로 대신하고 싶었다.

교양 프로그램을 생산하는 이곳을 이끌어온 한 축이 사람의 이야기 (휴먼 스토리)라면, 한축은 <PD수첩>으로 대표되는 PD 저널리즘이다. <너를 만났다>를 통해 사람의 이야기에 기술을 결합해 새로움을 전달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간 저널리즘이 하고자 했던 일에도 기술을 결합하면 무언가 다른 느낌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은 다양한 레퍼런스를 보며 축적해왔다. ‘VR 저널리즘’이라는 말이 생소할 것이다. 그러나 해외에서는 꽤 많은 작품이 만들어지고 있으며, 일생을 이 주제에 바치는 사람도 있다. 바로 뉴스위크의 기자였으며, VR을 활용해 사회적인 이슈와 관련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는 노니 데 라 페냐 감독이다. 그녀가 이 신기술에 빠져든 이유는 VR이 주는 몰입감을 활용해 그간 기자로서 갈증을 느끼던 부분을 극복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VR 저널리즘이란, VR 헤드셋을 쓰고 어떤 상황으로 들어가 보는 저널리즘을 말한다. 그리고 그 공간에는 우리가 뉴스에서 보는 다양한 문제들(전쟁, 차별, 무관심, 빈곤 같은 문제)이 펼쳐진다. 사회 문제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하려는 의도가 있다. 여기에 활용되는 것은 VR이 주는 몰입감과 편집되지 않은 경험이다. 편집된 누군가의 생각을 전달받는 게 아니라 스스로 문제를 찾고, 관찰하고, 참여하는 것. 최종적으로 체험자가 사회적 문제에 공감하는 것이 VR 저널리즘의 목표다.

지금도 많은 PD와 기자가 다양한 스토리텔링으로 이러한 문제를 돌파하려 한다. 데 라페냐 감독은 <로스앤젤레스에서의 굶주림>이라는 최초의 VR 저널리즘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서 그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직접 체험해보지는 못하고 유튜브로만 볼 수 있었는데, 내용은 이렇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더운 날에 가난한 사람들이 푸드 스탬프를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그런데 나이가 지긋한 한 아저씨가 어지러운 듯 위태위태하다. 일사병인지, 탈진인지, 심장마비인지 모르겠지만, 그는 곧 쓰러지고 만다. 옆에 있는 사람들이 웅성웅성하더니 누군가는 지켜보고, 누군가는 구급차를 불러달라 외친다. 영상은 조금 조악하지만, 사운드는 실제 상황을 사용해 매우 생생하며, 이를 체험한 사람 일부는 HMD를 벗으며 눈물을 흘리거나 생각에 잠겼다. 첨예한 스토리도 아니고,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모호하게도 느껴지지만, 그래도 체험자는 그 상황에 직접 있었던 것처럼 ‘세상에 저런 일이 있구나’ 하고 느낀다. 갑자기 실직하거나 집안 사정이 악화해 무상복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고, 뙤약볕 아래에 줄을 서 있다가 쓰러질 수도 있는 어떤 이의 삶을 잠시 살아본 것이다. 나도 영상 시청 후 잠시 멍했다. 이런 VR 필름을 체험한 것만으로도 일단은 잠깐 다른 세상에 다녀온 느낌이 들 것이고, ‘나와 다른 상황에 있는 사람’에 대한 관심이 조금은 더해지지 않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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