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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세이/<저는 부모님을 요양병원에 모시려고 합니다>

03. 생로병사를 이겨내는 작은 꽃들

by BOOKCAST 2022.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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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자 선생님, 제 동생 잘 부탁드립니다.
영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보호자 낫게만 해주시면 제가 선생님 옷 한 벌 해드리고 잔치도 크게 할게요.

꽃님 씨의 보호자인 오빠께서 면회를 오셨다. 우연히 마주친 나에게 여동생의 치료를 부탁하신다. 꽃님 씨의 오빠가 면회하러 온 날은 병실이 화분과 꽃다발로 꾸며진다. 보통의 보호자들은 환자에게 주로 간식을 보내지만, 꽃님 씨의 보호자는 항상 꽃을 보내신다. 덕분에 사계절 내내 병원에서 꽃을 구경할 수 있다.

 

오늘은 꽃님 씨의 기분이 저기압이다. 나의 안부 인사에 눈길도 주지 않는다. 꽃님 씨는 우리 병원에서 가장 젊은 환자이다. 단발머리에 동그란 얼굴의 그녀는 실제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인다. 요양병원 근무 10년 차인 내 눈에도 80~90대의 노인 환자가 대부분인 병동에서, 검은 단발머리의 젊은 여인이 앉아 있는 모습은 낯설기만 하다.

눈감고 누워만 있던 꽃님 씨가 어느 날부터 힘을 내어 운동을 시작했다. 내가 알려준 가벼운 침상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은 물론이고 아침부터 복도를 수차례 왕복하며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병실 끝 조용한 창가에서 쉬고 있던 꽃님 씨에게 다가가 물었다.

영맘 꽃님 씨! 아침부터 운동하신 거예요?
꽃님 씨 네! 선생님, 나 이제부터 운동 열심히 할 거야.
영맘 무슨 좋은 일 있어요?
꽃님 씨 네! 우리 아들이 나 데리러 온다고 했어!
영맘 와! 좋은 소식이네요. 언제요?
꽃님 씨 코로나 끝나면요. 선생님, 코로나 언제쯤 끝날 거 같아?
영맘 글쎄요.
꽃님 씨 올해 크리스마스쯤에는 끝나겠죠?

그러나 우리의 바람과는 달리, 코로나는 크리스마스 무렵에도 여전했다. 꽃님 씨는 겨우내 복도에도 나오려 하지 않았고, 매일 침상에 누워 눈을 감고 있었다. 어느 날은 병원 밖에까지 꽃님 씨의 울음소리가 났다. 발걸음이 무거웠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병실에 들어가니 꽃님 씨는 머리끝까지 이불을 덮어쓰고 울다 지쳐 잠들어 있었다.

내가 이런 꽃님 씨의 눈물을 이해하고 공감한다고 말한다면 가벼운 위선에 불과하다. 평범한 사회 활동과 결혼 생활을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닥친 질병으로 모든 일상이 산산조각 났을 때 그녀가 감당했을 고통과 좌절은 차마 가늠하기가 어렵다. “병이 나면서 가게는 문 닫고 남편은 도망갔어.”라고 웃으며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병으로 고통받는 이에게 ‘생로병사는 변화하는 자연의 법칙이자 현상이니 슬프거나 괴롭다고 여기는 것은 인간의 감상일 뿐이다’라는 말이 위로가 될 수 있을까? 그런 깨달음을 통해 감정을 초월하는 경지에 이르기에 우리는 너무 평범하다. 꽃이 피면 설레고, 꽃이 지면 괜스레 서글프며, 꽃잎이 채 시들기도 전에 떨어질 때는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그러나 그 안타까움을 드러내는 것조차 환자에게 큰 실례가 되며 의료인으로서 올바른 행동이 아니기에 그저 휴지로 눈물을 닦아주고 몸이 굳지 않도록 치료하고 운동을 도와주는 것으로 조용히 나의 응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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