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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세이/<저는 부모님을 요양병원에 모시려고 합니다>

04. 몇 십 년이 지나도 잉꼬부부. 남편만 바라보는 바라기 할머니

by BOOKCAST 2022. 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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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얗고 고운 얼굴의 바라기 할머니는 여러 번 큰 수술을 하고 요양병원에 입원하셨다. 한없이 약해진 몸으로 휘청휘청 걸으면서도 남편을 찾아 밤낮으로 병원 복도를 배회하셨다. 자신을 기다리는 이런 아내의 마음을 잘 알기에 할아버지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매일같이 면회를 오셨다. 침상 옆에 앉아 아내의 손을 꼭 잡고 기도하신 후 함께 커피믹스를 마시는 시간이 노부부에게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일과였다. 아내를 수년간 간병하면서도 할아버지는 매번 온화한 미소와 다정한 당부를 잊지 않으셨다. 치매로 어린아이가 되어 버린 아내를 달래고 위로하며 따뜻한 보호자가 되어 주셨다.

그런데 다정한 부부의 오작교가 되었던 병실 면회가 코로나 사태 이후 금지되었다. 할아버지가 오지 못하면서 바라기 할머니는 점점 말이 없어지고 누워만 계셨다. 의료진과 간병인이 말을 걸어도 아무런 대답 없이 무기력한 몸과 무표정한 얼굴로 처치를 받으셨다.

남편을 찾아 복도를 헤매던 아내는 점점 걷기가 힘들어지고, 식사를 거부하시더니 치매 증상이 심해졌다. 병원 직원들을 향해 욕하거나 소리를 지르기도 하셨다.

바라기 할머니는 아들딸의 이름과 존재조차 잊으신 듯싶었지만, 남편분과 함께했던 티타임의 추억만은 잊지 않으셨다. 대면 면회가 금지된 후로 두 분은 상상 속에서만 겨우 만날 수 있었다.

코로나로 안타까운 상황이 계속되던 어느 날, 낯익은 얼굴의 신환이 입원하셨다. 바라기 할머니의 남편분이었다. 집 안에서 넘어져 수술을 받고 치료와 돌봄을 위해 입원하신 것이다. 남편을 만날 날만 손꼽아 기다리던 바라기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병동에서 재회하셨다. 50년 넘는 세월을 함께한 노부부는 그렇게 같은 병원 한 병동 안에 머물며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아끼고 사랑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고 계셨다.


부부가 함께 입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자식들이 출가하고 두 분이 생활하시다가, 한 분이 편찮으셔서 간병이 시작되고, 고된 간병 노동으로 돌보던 분마저 병을 얻거나 지병이 악화해 같이 입원하는 경우다. 부부는 2인실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경제적 이유와 간병의 어려움으로 남녀 병동에서 각각 생활하시기도 한다. 또, 따로 생활하실 경우 보통은 서로의 병실을 오가며 만나시는데, 여의찮으면 휴게실에서 만나신다.

휴게실에서 부부는 무덤덤한 얼굴로 TV를 보며 앉아 계신다. 그러나 오랜 세월 서로 의지해 살아온 부부의 데이트는 세상 어느 연인보다 애틋하고 아름답다. 곱고 수줍던 아내는 쪼글쪼글 주름진 할머니가 되었고, 가족을 지켜주던 듬직한 남편은 스스로를 지탱하기 힘겹도록 작아져도 평생 동고동락하며 희로애락을 나누어온 노부부에게는 생로병사도 이겨낸 강인한 사랑의 힘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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