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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세이/<저는 부모님을 요양병원에 모시려고 합니다>

06. 생로병사의 선생님께 배우는 삶과 죽음

by BOOKCAST 2022.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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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맘 어르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할머니 선생님도 새해 복 많이 받아요.
영맘 감사합니다.
할머니 나는 이제 받을 복은 죽을 복밖에 없소. 자식 고생 그만 시키고 내일이라도 자던 잠에 죽는 것이 소원이에요.

나의 의례적인 새해 인사에 할머니는 비장함을 가득 담아 답인사하신다. 생의 마지막 경계에 가까이 서있는 요양병원에서 ‘죽음’이라는 화두는 젊은 한의사에게 언제나 조심스럽다.

사람은 모두 언젠가 죽는다. 그러나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사는 이는 드물다. 잠자리에 누워 내일이 오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잠드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나 역시 요양병원이라는 직장에 다니지 않았다면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타인의 늙음, 병듦, 죽음을 지켜보면서야 ‘나의 죽음, 그 순간은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가끔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애써 내 죽음의 장면을 지웠다. 남겨질 가족들을 생각하니 죽음을 몇 초 떠올리는 것조차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정하고 회피한다 한들 죽음을 피할 수 있겠는가. 삶의 시작인 탄생이 중요한 만큼 그 마무리인 죽음 역시 중요할 것이다. 일생일대의 사건 죽음, 더는 그 사건의 관찰자가 아닌 주인공이 되었을 때 어떤 모습으로 맞이해야 할까?

나는 웰다잉(Well-dying), 좋은 죽음을 맞고 싶다. 바라는 모습대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감히 죽음의 순간을 상상해 본다.

동양 고전 《서경》에는 인생의 바람직한 조건으로 오복(五福)을 제시했다. 첫째는 수(壽), 오래 사는 것이요. 둘째는 부(富), 부자가 되는 것이며, 셋째는 강녕(康寧), 육체적인 건강과 정신적 건강을 바라는 것이다. 그리고 넷째는 유호덕(攸好德), 선행을 베풀어 덕을 쌓는 것, 마지막이 고종명(考終命), 깨끗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내가 꿈꾸는 복된 죽음, 고종명은 ‘노화에 의한 자연사’이다. 이왕이면 백 살까지 살고 싶다. 내가 노인이 될 50년 후에는 백 세를 사는 것이 장수가 아닌 보편적인 수명이 될 것이다. 세상사 힘들다고 울고불어도 남들 사는 만큼은 살아야 여한이 없겠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두루 겪으며 백 살까지 생존하고, 충분한 노인의 시간을 통해 몸과 마음의 준비를 한 후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

어르신들은 자던 잠에 죽고 싶다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 자신도 고통이 없고, 보호자도 고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러나 돌연사보다는 며칠에서 몇 달 정도 조금씩 앓다가 죽는 것이 조금 더 좋은 죽음일 것이다. 어느 날 아침, 방 안에서 갑자기 돌아가신 부모를 발견한 자식은 얼마나 큰 충격을 받겠는가? 마지막 장소가 집이 아닌 요양병원의 병실이라도 간병인, 의료진, 주변 환자들을 놀라게 하며 죽고 싶지 않다. 조금씩 아프면서 자신이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자각할 수 있고, 소중한 이들에게 마지막 인사와 유언을 남기는 등 죽음의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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