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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세이/<저는 부모님을 요양병원에 모시려고 합니다>

01. 치열한 노년의 삶

by BOOKCAST 2022.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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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가까이에서 늙음과 병듦, 죽음을 관찰해도 아직은 노년의 삶이 제삼자의 일처럼 느껴진다. 다만, 영원히 늙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하고 젊은 날을 조금 더 의미 있게 살아야 한다는 것과 늙고 병들고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에는 반드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요양병원에서 늙음을 관찰하며 한 가지 결론을 얻었다. 늙는다는 건 젊은 날을 살아냈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죽지 않고 살아남았기에 젊은 시절을 보내고 오늘날까지 늙을 수 있는 것이다.

다리가 불편해서 늘 휠체어에 앉아 계신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강제 징용되어 일본으로 끌려가셨다가 함께 간 사람 중 유일하게 살아남으신 그 옛날을 회상하신다. 또, 다섯 남매를 낳아 기르고 농사짓고 살림하느라 허리가 굽어 침상에 제대로 눕지 못하시는 할머니는 한국전쟁의 포화 속에서 아이들을 업고 안고 피난길에 나섰던 그 옛날을 회상하신다. 나는 이런 어르신들의, 산 위로 뛰어올라가 나무 기둥에 매달려 사라호 태풍 1959년에서 목숨을 건진 일화, 콜레라와 장티푸스에 걸려 생사를 넘나들었던 일화를 들을 때마다 내가 마주하는 환자복 속 앙상한 노구에 감춰진 백절불굴의 생명력과 삶에 대한 의지에 경외감을 느낀다.

요양병원의 어르신들은 보릿고개와 일제강점기, 한국전쟁을 버텨내고, 수많은 자연재해와 사건 사고, 질병을 극복하며 지금까지 살아남은 생존자들이다. 비록 현재 몸은 늙고 정신은 흐릿해져 침상 밖으로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하지만, 험난한 삶의 길을 쉬지 않고 걸어온 강인한 사람들이다. 인생을 전쟁에 비유하자면 끝까지 살아남은 백전노장인 것이다. 노병은 죽지 않고, 다만 오늘도 요양병원에서 살아가고 있다. “어찌어찌 살다 보니 벌써 이 나이가 되었네.”라고 덤덤히 말씀하시지만, 어르신들은 젊은 날 자신을 지키고 또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하여 죽음이 아닌 치열한 삶의 길을 걸어오셨다.

 

 

나 역시 늦둥이로 첫아이를 낳은 후, 삶에 대한 집착이 더욱 강해졌다. 어린 자식이 장성할 때까지 살고 또 살겠다는 의지이다. 친할머니와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환갑에 가까웠던 부모님은 갑자기 엄마 잃은 아이가 되어 한동안 일상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셨다. 나이가 지긋해진 자식에게도 엄마의 부재는 받아들이기 힘든 고통인데 하물며 어린아이에게는 얼마나 큰 비극일까. 행복한 성장을 위협하는 엄청난 비극일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기필코 오래 생존하여 자식이 이 엄마의 죽음에 의연할 수 있을 때까지 늙고 또 늙을 것이다.
아가야! 늙음은 너를 오랫동안 사랑하고 싶은 엄마의 노력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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