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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 떠난 뒤 맑음>

01. 가출은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시고요.

by BOOKCAST 2022.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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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전화가 걸려 온 시각은 오전 6 50. 미우라 신타로는 아직 자고 있었다.
리오나짱이야. 이츠카가 또 뭔 일을 저지른 모양이야.”
흔들어 깨우는 아내한테서 무선 전화기를 건네받았다. 신타로는 눈을 껌뻑이며 졸음을 쫓고 한쪽 손으로 머리를 긁적인다. 잠에서 깰 때면 늘 두피가 근지럽다.
여보세요.”
쉰 목소리가 나왔다.
신짱?”
여동생의 목소리는 단조로웠다.
거긴 아침이겠네. 자는데 깨워서 미안. 그런데 이츠카가 없어졌어, 레이나를 데리고.”
이해하는 데에 조금 시간이 걸렸다.
없어졌어?”
곁에 서 있던 아내가 눈썹을 치켜올리며 입을 삐죽 내밀어 보인다.
으응, 아마도.”
여동생의 대답이 왠지 어설프다.
거실에 편지가 놓여 있었어.”


레이나가 썼다는 그 편지를 여동생은 전화기에 대고 소리 내어 읽었다.
디어 댓 앤 맘(Dear dad and mom).”
뭐라고?”
디어, 대드, 앤드, . 그것만 영어야.”
어어.”
, 마지막의 러브도 영어네.”
.”
이츠카짱이랑 여행을 떠납니다. 가출은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시고요. 전화도 하고 편지도 쓸게요. 여행이 끝나면 돌아올 거예요. 러브(Love). 레이나.”
신타로로서는 뭐가 문제라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여행 가면 안 되는 거야?”
여긴 미국이고, 레이나는 아직 열네 살이거든?”
리오나가 말한다.
집 근처 말고는 혼자 나다니게 한 적도 없어. 어딜 가든 차로 데려다주고 데려오는 거, 알잖아?”
알고 있었다.
여행이라면, 어디로 갔는데?”
리오나는 한숨을 내쉰다.
그걸 모르니까 걱정이지. 어디에 가는지, 언제 돌아오는지도 쓰여 있지 않으니까.”
아내가 신타로의 어깨에 카디건을 걸쳐 주었다.
하지만 전화하겠다고 했으니 기다리면 되는 거 아냐?”
레이나는 아직 열네 살이거든?”
힘없는 목소리로 리오나는 같은 말을 되풀이했지만, 곁에 있는 아내는 이미 긴장이 풀린 모습이었다. 신타로의 말과 어조로 보아 심각한 사태가 아님을 판단했으리라.
이츠카도 아직 열일곱이잖아? 물론 어린애는 아니야. 원래대로라면 고등학교에 다닐 나이니까.”
외동딸인 이츠카는 반년 동안 등교 거부를 이어 오다 작년에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학교 성적은 좋았고 고졸 인정시험에도 합격했기에 미국 대학으로 유학을 보냈다. 하긴 아직 학부생은 아니고 대학 부설 어학원에 다니는 몸이었지만.
그 애는 외모도 그렇고, 말하는 것도 어른스럽지만, 아직 미성년자임에는 변함없어.”
여동생이 이번 일을 이츠카의  다시 말해 신타로의  책임이라 여기고 있다는 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여행을 떠날 거면 저 혼자 가면 됐잖냐고 여긴다는 것도.
학교만 해도, 둘 다 이미 신학기가 시작됐는데.”
남편이 돌아오면 아마도 경찰에 연락하게 될 거라고, 리오나는 말했다. 여긴 이미 날이 저물기 시작했고, 달리 어찌해야 좋을지 알 수 없어서, 라고.
신타로는 여동생 부부에게 폐를 끼치게 되었다며 사과했지만, 이 시점에서는 아직 아이들의 안부에 대해선 거의 걱정하지 않았다. 걱정은커녕 이츠카답다며 내심 유쾌하기까지 했다. 제법이지 않은가, 라고.
그러나 미우라 신타로 또한 여동생에게서 국제 전화가 걸려 온 이 10월의 아침을, 하나의 분기점으로써 훗날 두고두고 떠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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