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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생각의 보폭>

05.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오는가?

by BOOKCAST 2022.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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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한다.

생각의 보폭을 넓혀 추상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관하여 이야기해보려 한다. 이런 식으로 말하면 ‘교육론’으로 인식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교육’이라는 구체적인 ‘방법’이 사람을 키우는 것에 대하여 솔직히 나는 반신반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식을 가르치는 교육이라면 그 성과는 매우 또렷하다. 역사적으로 봐도 그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하는 문제라면 과연 가르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특히 ‘발상하는 방법’이나 ‘상상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 몹시 난감하다. 그것을 만일 유사하게 체험할 수 있었다고 해도 다른 발상이나 다른 상상, 그 사람만의 발상이나 독특한 상상이 가능해질까?

잔혹한 얘기가 되겠지만, 솔직히 말해 결국 추상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키우는 구체적인 방법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가르칠 수도 없다는 게 현시점의 내 생각이다. 어떤 기발한 방법이 언제인가 불현듯 떠오를지도 모르기에 절대 불가능하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지금 시점에서 내게 그 같은 발상은 없다.

‘노하우(Know How)’라는 말이 있다. 또한 최근에는 ‘하우투(How To)’라는 말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노하우・하우투’라는 분야도 있을 정도다. ‘사고법’에 대해서도 많은 사람들이 갖가지 방법을 시도해왔다.

예컨대 아이의 상상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은가 하는 교육에 힘을 쏟는 사람이 많다. 호기심을 키우기위한 구체적인 방법도 자주 듣는다. 벌써 몇십 년 전부터 그런 방법이 실행되었다. 그렇다면 지금 상상력이나 호기심이 명백하게 향상되어진 사람들이 있을까? 만일 효과가 분명하다면 어째서 전 국민에게 그 방법을 실행하지 않는 것일까? 소수의 사람을 대상으로 했다면 극단적인 격차를 보여 만천하에 화제가 되지 않았을까?

교육이라는 건 결국 구체적인 지식을 주입시키는 것밖에는 할 수 없다. ‘재능을 키운다’는 것은 본디 그 사람에게 있는 재능을 활짝 펼칠 장소를 마련해준다는 말이다. 나는 30년 가까이 교육 관련 일을 해온 사람이지만, 젊은 시절에는 교육의 효과를 굳게 믿었다. 하지만 지금 이 같은 결론에 다다른 것은 수많은 사례를 직접 보아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고한다는 체험

물론 교육만을 해온 것은 아니다. 나의 주요 업무는 연구로, 연구하는 동안에 나는 일단 내 머리로 생각한다. 그러는 가운데 업무 성과로서 한 단계 향상할 때는 틀림없이 어떤 새로운 발상이 앞서 있었다. 이 발상이 없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저 조사하고 시도하고 데이터를 모아도 그것은 그저 ‘조사’일 뿐이지 결코 ‘연구’가 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발상’은 어렴풋한 형태로 느닷없이 찾아오는데 그것을 마치 구름을 낚아채듯이 손으로 잡아당기면 서서히 어떤 형태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 발상을 움켜쥐었을 때 ‘알았다!’라는 감동은 없다. 너무도 흐릿하여 뭐라고 말할 수 없다. 구체적으로는 아무것도 없다. 놓치지 않으려 집중하여 생각하는 동안에 차츰 구체적인 나뭇가지와 잎이 보인다. 그 이후에 실험을 하고 확인을 위해 계산하는 동안에 그 본 줄거리가 겨우 자신의 것이 된다. 따라서 환한 이미지는 없어도 멀리 떠 있는 구름에서 번개가 ‘번쩍’ 하는 모습을 본 것 같은 느낌은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이 전만큼 어두운 암흑이 펼쳐진다. 그 암흑 속에서 필사적으로 무엇인가를 찾는 시간이 내내 이어진다.

거기에 있는 건 환희도 만족도 아니다. 그저 불안과 긴장만이 있을 뿐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번뜩하고 머릿속을 스친 것이 논문의 구체적인 이론이 될 때까지 몇 년의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옳은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시간이 필요하고, 때에 따라서는 현시점에서 확인할 방법이 없는 경우도 있다. 발상의 진위를 확인하는 건 누구든지 가능하기에 다 같이 힘을 모아 계산한다. 발상 중 90% 이상은 구체적인 것이 되지 못한다. 계산해본 결과, 틀렸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럴 때 불안과 긴장이 밀려온다.

그래도 처음에 찾아오는 ‘발상’이 없다면 연구는 시작조차 하지 못한다. 무엇을 생각해야 할지 모르면 생각조차 할 수 없다. 따라서 연구자는 문제를 끌어안는 걸 더할 나위 없는 행복으로 느낀다.

 



발상을 잘하는 방법

이처럼 어떤 발상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뛰어난 연구자로 우수한 두뇌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사람을 동경하고 어떻게 하면 자신도 그런 발상을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한다.

나는 연구자로서 일하며 수많은 학생들을 연구자로 키웠다. 하지만 발상법만큼은 도저히 학생들에게 가르칠 재간이 없었다. 당연하다. 나 역시도 생각이 어떻게 떠올랐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맨 처음에 떠오른 게 무엇인지도 설명할 수 없다.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발상에서 발전시킨 아이디어다.

발상이 씨앗이라면 아이디어는 떡잎이나 새싹이 돋은 묘목으로 이 단계에서 비로소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수 있어서 힘을 모아 그것을 키워갈 수 있다(말라죽을 수도 있지만). 결국 자신의 머리 밖으로 나올 수 있는 것은 발상 그 자체가 아닌 다른 사람도 이해할 수 있도록 논리적으로 키운 아이디어다.

망연한 발상에 딱히 어떤 방법이 있을 리 없다. 따라서 만일 자유로운 발상법에 대하여 설명하는 책이 있다면 거기에는 놀랄 만한 새로운 사실 혹은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거짓이 있을 것이다. ‘놀랄 만한 새로운 사실’이라면 굳이 책으로 읽지 않아도 조만간 세상의 핫이슈로 대두되어 곧 알게 된다.

단, 때때로(결국 확률은 꽤 낮다) 본래 재능을 갖고 있었는데 어떤 이유로 그것이 봉인된 사람이 책을 읽거나 스승을 만나면서 봉인이 해제되어 눈을 뜨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조금은 교육에 기대해볼 만하다. 결국 그 방향성은 아이들의 가능성을 어떻게 하면 망치지 않을까에 있다. 현재 젊은 사람은 상식에 묶여 구체적인 수많은 정보에 억눌려 있다.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인데도 ‘할 수 없다’고 믿는 사람이 너무 많다. 그 비율은 옛날보다 훨씬 많아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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