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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세이/<이번에는 붙을 수 있을까>

02. 잃어버린 생일

by BOOKCAST 2022.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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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국에서 떼놓을 수 없는 자가격리. 살면서 자가격리라는 단어를 이렇게나 자주 사용하게 될지는 몰랐지만, 생각해 보면 나의 수험기간이 곧 자가격리 기간이기도 했다. 어찌 되었든 자발적으로 타인으로부터 혹은 세상으로부터 스스로 고립되고 격리되었던, 슬프고도 암울했던 기간이었다.
 
공부를 시작하기 직전인 2015년은 최고로 바쁘게 보냈던 한해였다. 모교의 한 연구소에서 보조 연구원으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고, 교회 청년부 임원이자 대외활동 동아리 부대표이기도 했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랐던 시기였다. 거기다 대학 졸업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슬슬 임용공부도 시작했다. 여러 역할을 맡으면서 챙겨야 할 사람이 많아졌고, 해야 할 일도 많았다. 그것들을 반증해준 것이 바로 생일이었다. 나서기를 좋아하는 성격도 아니고, 소위 인싸도 아니었기에, 살면서 그렇게 많은 축하를 받아본 적도, 그렇게 많은 기프티콘을 받아본 적도 없었다. 생각해 보면 요즘 ‘인싸’의 기준은 생일 기프티콘 개수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라는데, 그때 그 시절에 나는 생각보다 꽤나 ‘인싸’였나 보다.
 
모든 역할에서 해방되었던 2016년, 나는 진짜로 임고생(임용고시생)이 되었다. 당시 여러 개 있었던 단톡방에서 내가 말을 하는 경우가 줄기 시작했다. 그곳은 더 이상 내가 있을 곳이 아니었다. 나는 백수이자 임고생이었고, 변한 환경에 하루라도 빨리 적응해야 했다. 나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독서실에 틀어박혀 있었고, 휴대폰도 전원을 끄고 사물함에 넣어둔 채 자물쇠까지 채워버렸다. 이렇게 노력해도 공부 외의 것들이 왜 그렇게 다 재미있던지. 나는 여전히 내가 속했던 세상에, 그 속의 관계에, 세상 돌아가는 소식에 관심이 많은, 임용고시에 반쯤 발을 걸친 임고생이었다. 그러다 공부를 시작한 지 1년이 될 무렵 임고생으로서 첫 생일을 맞이했다. 여전히 내 생일을 기억해주는 친구와 지인들에게 축하 메시지와 기프티콘을 받았다. 그간 내가 베풀었던 것들이 있었기에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당연하게 다가왔다. 내가 누군가의 생일을 축하한 만큼 내가 축하받는 것은 당연할 테니 말이다. 당시 시험이 겨우 한 달밖에 남지 않았지만 초수생의 얄팍한 자신감이 있었던 건지, 나는 가족 그리고 남자친구와 시간을 보내는 여유를 부리기도 했다.
 
첫 시험에서 떨어지고 두 번째 시험을 준비하면서 현실을 직시했다. 서서히 세상에 관심을 멀리했고, 가까운 사이가 아닌 지인들과의 연락도 뜸해지기 시작했다. 아마 이때쯤 카톡을 지웠던 것 같다. 그리고 그 해, 나는 SNS 생일 알림도 꺼두었다. 나에게 생일은 사치였다. 이때부터 나는 생일을 잃어버렸다. 나 역시 이전만큼이나 지인들에게 관심을 가질 수 없었고 자연스레 지인들의 생일도 축하해줄 수 없었다. 내가 먼저 생일을 축하해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질수록 나 역시 누군가에게 생일 축하를 받고 싶다는 생각을 일찌감치 지워버렸다. 공부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공부해야 하니까, 임고생이라서, 이런저런 핑계로 SNS 알림에 뜨는 지인들의 생일을 못 본 척하기도 했다. 부모님이 주시는 용돈으로 공부하는 입장에서 커피값도 아까워 잘 안 마시는데 누군가에게 기프티콘을 보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생일 축하한다고 메시지만 남기기에도 찝찝해질 나이이었기에, 여러모로 복잡했다.

그렇게 2017, 2018, 2019년이 흘렀다점차 내 생일을 아는 이도축하해주는 이도 없어졌다가족과 남자친구친한 친구 몇몇이따금 그들의 숫자를 세어보기도 했다마지막에는 한 손가락으로도 충분할 정도로 생일을 축하해주는 이가 줄었다어떤 해에는 가족조차 깜빡하고 지나칠 뻔하기도 했다차라리 잊으셨으면 하고 바라기도 했다생일에는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려야 하는데감사한 마음조차 사치였던 그때는 죄송한 마음뿐이라 차라리 잊고 지나갔으면눈 뜨면 다음 날이 되었으면 생각도 들었다생일이 시험 날짜와 가까웠기에 편하게 밥 한 끼 먹는 것도 쉽지 않았다당시 점심과 저녁 사이 한 끼만 먹던 때라 그 애매한 시간에 겨우 맛있는 걸 먹으러 가곤 했다하지만 맛있는 음식을 눈앞에 두고도 생일 기분은 느끼지도 못했고그저 남자친구와 먹는 식사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매번 내 생일에는 꼭 밥을 함께 먹어주었던 남자친구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생일을 잃어버렸어
 
혼자 공부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사람들과 멀어질수록그래도 다 견딜 만하다고 생각했는데 유독 생일만큼은 쓸쓸했다생각해 보면 생일 파티를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대단한 선물을 받고 싶은 것도 아니고축하를 많이 받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계속된 좌절로 더 이상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없을 때그냥 내가 태어났다는 사실 그 자체에 온전히 감사하고 싶었다무엇보다 아무 생각 없이걱정 없이 마음 편하게 밥을 먹고 싶었다그저 친구들에게 마음 편히 생일을 축하해주고기프티콘을 보내주고때로는 축하를 받고 싶었다그냥 그렇게 평범하게 생일을 맞이하고 싶었다.


※물론 축하해주는 몇 없는 사람들 속에서 받았던 축하 메시지와 선물은 지금도 선명히 기억할 정도로 그 전보다 열 배, 백배 더 고마웠다. 밤 11시에 집에 돌아와 동생이 준비한 케이크에 겨우 촛불을 불고 모처럼 와인을 한 잔 마시며 가족들과 함께 사진을 찍은 기억은 너무나 특별하고 또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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