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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세이/<이번에는 붙을 수 있을까>

04. 퇴근하면 나는 여전히 수험생이었다.

by BOOKCAST 2022.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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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월의 짧은 기간제 교사에 합격 연락을 받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중에 설렘과 두려움이 몰려왔다. 꿈꾸던 그 자리에 다가가는 순간이었지만, 교사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내가 잘해낼 수 있을지, ‘공부 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면접관으로 들어와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셨던 선생님 한 분이 나를 맞아주셨고, 짧은 이야기를 나누며 인수인계를 받았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노트를 펼쳤다. 사람 인생 한 치 앞을 모른다고, 1년 동안 지옥 같은 수험 생활을 할 것이라는 예상과 다르게,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을 걷게 되었다. 수많은 생각과 걱정을 누르고 앞으로의 공부 계획과 4개월 동안 내가 해야 할 일을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일과 공부 모두 잘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모든 게 처음인 나에겐 준비과정이 필요했다. 또 공부 시간이 절반으로 줄어든 만큼 효과적인 공부 방법을 세워야 했다. 그래서 처음으로 노트에 쓴 문장은 욕심부리지 말자였다. 일과 공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다 전부 놓칠 수는 없었다. 4개월간의 여정은 마치 시험대처럼 느껴졌다.
 
이 시간은 내 인생과 미래의 중요한 발판이 될 거라 확신했다. 그래서 딱 두 가지를 목표로 삼았다. 첫 번째, 진정으로 교사가 되고 싶은지 생각해보기. 두 번째,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나는 여전히 교사를 꿈꾸는 수험생이었고, 내가 교사라는 직업을 진정으로 원하는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한편으론 이 시간을 통해 어떠한 결론이 나더라도, 서른을 앞둔 시점에서 앞으로의 실패를 줄이기 위해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했다.
 
진정으로 교사가 되고 싶은지 확인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아이들과 내가 모두 만족할 만한 수업을 하고, 아이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돌아보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 이게 전부였다. 아이들의 머릿속에 조금이라도 더 오래 남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수업을 준비했고, 수업 시작 종이 울리기 2분 전에 교실에 들어가 아이들에게 한 마디라도 더 걸고 이야기를 나누려 했다. 겨우 4개월이었지만 다른 선생님들의 업무에 폐를 끼칠 수 없었고, 초짜인 나를 뽑아주신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교무부장님과 같은 부서 선생님들께 이것저것 물어보며 하나씩 맡은 일을 해나갔다. 그 과정에서 나는 조금씩 선생님다워졌고, 선생님이라 불리는 게 자연스러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퇴근하면 나는 여전히 수험생이었다. 아니, 사실 학교에서도 마음만은 수험생에 더 가까웠다. 때로는 교무실이 어색하기도 했다. 공강 시간에는 업무와 수업 준비를 모두 끝낸 후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책 한 장이라도 더 보려고 전공 서적을 펼치기도 했다. 야자 감독을 할 때는 제일 소란스러운 반에 들어가 함께 책을 보기도 했다. 근무 학교가 집에서 한 시간 남짓 걸렸기 때문에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퇴근 후 학교 근처 스터디 카페에서 공부하고 밤늦게 집으로 향하기도 했다, 간혹 아이들 시험 기간과 겹쳐 스터디 카페에서 학생들을 만날 때도 있었다. “선생님, 저 어제 공부하면서 선생님 봤어요라는 말에 나는 약속 시간이 남아서 수업 준비하고 있었어라며 말끝을 흐리기도 했다. 나의 출퇴근을 책임졌던 1001번 좌석버스는 제3의 독서실이자 부족한 잠을 보충하는 공간이었다. 나는 학교에서는 선생님으로, 학교 밖에서는 수험생으로 4개월을 보냈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선생님이 되었다. 누구에게나 처음이 있지만, 나에게는 단연 특별한 순간이었다. 아이들이 선생님이라 부르며 찾아올 때, 수업 중 아이들과 교감이 이루어진다는 느낌을 받을 때, 그 찰나의 순간 소름이 돋을 때, 맡겨진 일을 무사히 잘 처리했을 때, 그 순간순간은 내가 걸어가고자 하는 길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었다. 다른 이들보다는 조금 늦게 찾아온 이 소중한 기억을 감사히 간직한 채 8월을 맞이했고, 계약 기간이 끝났다. 그리고 나는 온전히 임용 수험생으로서 다시 돌아왔다. 값진 4개월이었지만 공부량은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이제는 마음이 조급해지고 걱정과 두려움이 스며들고 있었다. 하지만 경험하지 않았다면 느끼지 못했을 내 선택에 관한 확신을, 공부한 지 4년 만에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시험까지 남은 4개월을 버티게 해준 커다란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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