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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세이/<아빠의 비밀일기>

01. 미국아빠 판타지

by BOOKCAST 2022.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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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영화에서 종종 발견되는 클리셰 하나.
아빠와 캐치볼 또는 플라이낚시를 하던 아이가 얼굴을 바로 쪼는 햇볕에 눈을 찡그리며 질문을 던진다.
배경이 미국이고 영화의 한 장면인 만큼 나 오늘 학원 안 가면 안 돼요?” 같은 질문이 아니다. 눈치 빠른 관객이라면 여기가 바로 작가나 연출자가 힘주고 있는 대목임을 감지한다. 영화의 도입부 어딘가에는 관객에게 의미심장한 동기나 암시를 주려고 고심한 흔적이 꼭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건넨 질문은 아마도 그 물음 자체로도 다양한 상상을 유발할 수 있고, 적당히 추상적이면서 복합적일 확률이 높다.

미국 아빠들은 이때를 허투루 낭비하지 않는다. 마치 이 순간을 기다려 왔다는 듯 나긋한 목소리, 온화한 눈빛으로 필요한 대답을 들려준다. 절묘한 은유와 심오한 함축의 언어는 보는 이의 심금을 울린다. 아이는 아버지의 말에 담긴 교훈을 되새기며 의젓한 청년으로 성장하여 훗날 그날을 회상한다. 미국 아빠들은 때가 되면 나라에서 예상 질문지라도 받아 근사한 모범답안을 미리 연습해두는 모양이다.
 
아이들은 옹알이를 하면서부터 끊임없이 질문하기 시작한다. 아이가 세상을 향해 발산하는 호기심만큼 엄청난 에너지가 어디에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다. 어떤 대답들을 돌려받느냐에 따라 아이가 어떤 길로 나설지, 얼마만큼 자라날지가 달라진다고 생각하면 우리의 대답이 가벼울 수만은 없을 것이다. 엉뚱하고 기발한 아이들의 생각에 순발력 있게 잘 대처해가야 함은 부모가 갖춰야 할 중요한 자질이자 피할 수 없는 관문이다. 부모도 아이의 생각이 커져 가는 박자와 리듬에 맞춰, 같이 생각하는 연습을 해야 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나의 멋진 대답 오디션 성적은 썩 좋지 않은 편이다. 기습적인 질문에 발등에 불이나 끄듯 다급하게 어리바리 대답해 놓고는 좀 지나 아, 이렇게 말해줄 걸! 하며 후회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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