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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세이/<아빠의 비밀일기>

07. 꼰대의 시간은 흐른다. (마지막 회)

by BOOKCAST 2022.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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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이 모이는 작은 동창 모임에 나갔다. 오래된 기억들을 짜 맞추는 재미를 술안주 삼아 마시고 떠드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갑자기 분위기가 썰렁해진 건 한 동창생이 자신의 딸 이야기를 꺼내면서다.
 
딸이 사춘기가 되면서 아빠를 대하는 태도가 예전과 달리 냉랭하기 짝이 없고, 무시당하는 것이 괘씸해 죽겠다는 것이다. 그러자 좌중 여기저기서 너도 그렇다니 다행이다. 우리 애도 그렇다!” 혹은 그건 약과다. 나는 이런 꼴까지 당하며 산다!”는 피해사례가 앞을 다투어, 추임새처럼 장단을 맞추고 든다.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문제가 점점 커졌다. 말이 위험수위를 넘나드는가 싶더니 듣기 거북한 막말로 흐르고 급기야 옆에서 입을 틀어막기에 이르렀다. 앞뒤가 온전치 않은 지저분한 말들이었다.
 
아내가 둘째를 원하지 않았지만 나는 딸을 갖고 싶었다. 그래서 강제로 부부관계를 한 끝에 생긴 아이다. 그렇게 애지중지하며 키웠는데 머리 좀 굵었다고 이젠 아예 아빠 말을 안 듣는다. 아주 제멋대로다. 내가 벼르고 있다. 어디 한 번 눈에 나기만 해보라지? 머리를 박박 밀고 다리 부러뜨려서 가둬 버릴 거다! 여자애들은 정신 바짝 차리고 키워야 한다. 그냥 뒀다가는 담배 피우고 문신이나 하고 다니게 된다. 요새 페미니즘이나 동성애에 빠져서 이상한 권리나 주장하는 애들이 많아졌지 않으냐. 다 그런 애들끼리 몰려다니다가 일어나는 일들이다. 말세다, 말세!”
 
다들 눈과 귀를 의심했다. 그나마 순화하여 글로 옮긴 게 이 정도인데, 그야말로 입으로 똥을 뱉어내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내 주변의 또래에게서 이런 말을 듣게 될지는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몇 줄 안 되는 저 말에는 참 잔인하고 많은 참사들이 나열되었다. 주장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르겠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다만 저기서 언급되는 여성들은 이 남자와 함께 사는 게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만 들었을 뿐이다. 갈수록 고립되어 외로운 것은 그 자신일 것이다. 그런 파격의 고백을 허용하는 경우란 과거에 나는 그처럼 모자라고 불량했지만, 지금은 다 뉘우치고 용서를 구하였을 때뿐이다.
 
반론하고 조언하는 주변 친구들의 말은 소용이 없었다. 애당초 설득될 생각이 없는 꼴통스런 결기만을 불태우고 있었다. 아마도 그는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딸들이 빠질 수 있는 위험에 대해서, 이 시대의 딸 가진 아빠를 대표하여 웅변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굉장히 해롭고 공허한 술주정에 불과했다. 오직 피해의식과 떼고집만 남은 그를 이후로 다시 만날 이유는 없었다.
 
세월을 거스를 도리란 없다. 손사래를 치며 마다해도 세월 따라 아재가 되고, 꼰대가 되어 가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슬프지만 나는 이미 한 인간으로서 정점을 찍은 뒤 인생의 내리막길에 접어들었음을 안다. 육체적으로야 당연하고 정신적으로도 앞으로는 앙상해질 일만 남았을 것이다. 어제보다 오늘 더, 오늘보다는 내일 더 늙을 것이 분명하다. 꼰대들은 젊은이를 보고 이 미숙한 것들한테 어떻게 세상을 맡기나?’ 걱정이 태산 같을지 모르나 천만의 말씀이다. 자고이래 세상은 늘 젊은이들의 것이었고, 그 세대는 최소한 나보다 완성도가 높은 인간들이다. 깔고 앉은 자리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새로운 임자에게 제때 비켜주지 못하는 자를 일컬어 세상은 꼰대라고 부른다.
 
변화의 흐름에 올라타지 못하면 외롭고 힘들어진다. 시간은 냉정하게 흐른다. 그 시간을 조금이라도 붙잡고 늦추고자 한다면 끊임없이 학습하고 변화에 적응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래도 부족할 판에 이 공부에 방해가 되고 시침을 거꾸로 감으려는 자를 굳이 곁에 두면서 견딜 이유가 없다.
 
그날을 마지막으로 다시 볼 수 없었던 그 동창생에게 받은 질문 하나는 너무나도 유치해서 도저히 잊을 수가 없다. 나는 대꾸할 기력을 잃은 상태였다.
 
? 동성애가 그럴 수 있는 문제라고? 아니, 그럼 너는 나중에 아들이 결혼할 때 남자를 데리고 와도 좋단 말이냐? 환장하겠네!”
 
내겐 동성 커플인 지인이 있다. 그들은 보통의 이성애자들보다 훨씬 더 품위 있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인격자다. 타인의 취향이란 적어도 누가 함부로 찬반을 표시하며 참견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나와 다른 취향은 지구와 인류를 위협하는 존재가 아니니 그만 안심해도 좋다. 문명을 밝혀 온 것은 인간의 새로운 욕구였으며, 다수만을 위한 불합리한 질서를 거스르는 용기였다.
 
노후를 대비하여 적당한 근력운동이 필요한 것처럼 언어감수성, 인권감수성, 시대감수성의 근육 또한 나날이 들여다보고 단련해두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다. 중년의 내게 미래란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다. 꿈꾸는 내일임과 동시에 받아들이고 적응해야 하는 숙제이기도 하다. 이 초고령화 시대에 한참은 더 살고 싶은 나 자신을 위한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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