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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세이/<아무나가 아니라 ‘내’가 되고 싶어>

03. 미국에서 근무해 보고 싶지 않아요?

by BOOKCAST 2022.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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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 머물며 호텔 로비에서 피아노 연주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안 호텔을 A부터 Z까지 공부하고 싶다는 의지가 생겼다.
 
호텔에 취직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침 나의 생각을 아는 듯 친구가 곧 오픈할 리츠칼튼 호텔에 지원을 할지 고민 중이라는 얘기를 했다. 리츠칼튼은 당시 최고급 호텔이었다. 주저할 것 없이 친구를 설득해 리츠칼튼에 같이 지원을 했다.
 
호텔이 새로 들어서면 개관 6개월 전부터 직원 채용을 시작하기에, 두 달 전에 들어간 건 막차를 탄 셈이었다. 그때만 해도 이 하찮아 보이는 직무가 나를 미국으로 데려갈 오리엔트 익스프레스 열차가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리츠칼튼은 아시아에 처음 생기는 리츠칼튼 서울에 대단한 정성을 기울였고, 세계 여러 지점의 총지배인과 부지배인 150명을 서울에 파견했다. 이들은 오픈 전 3주 동안 서울에서 650여 명의 직원을 교육했다. 로비에서 일하는 고객 서비스 팀을 교육하기 위해 온 담당 간부들과는 3주 동안 매일 얼굴을 마주쳤다.
 
교육 현장에서 프로페셔널한 그들은 일상생활에서는 서툴기 일쑤였다. 당시만 해도 서울은 영어가 잘 통하는 지역이 아니었고 영어로 된 간판이나 안내문도 흔하지 않았다. 우체국에 가거나 은행에 갈 때마다 그들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 감기에 걸려도 약을 사지 못해 끙끙대곤 했다. 그들이 난처해 하는 걸 본 나는 그 어려움을 공감했다. 독일에서 지내는 동안 외국인으로서 힘들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도움을 주는 게 내 직무는 아니었지만 우리를 교육하기 위해 온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표하고 싶었다. 어쨌거나 우리를 도와주려고 멀리서 온 이들이 아닌가.
 
은행에 간다고요? 거기는 이렇게 가면 돼요. 지도를 그려 줄게요.”
감기약을 사기 어려워요? 제가 대신 사 오면 되죠.”
 


나는 그들이 서울에 머무는 동안 적극적으로 그들을 도왔다.
영어가 완벽하지 않았지만 보디랭귀지로 그들과 소통했다. 때로는 설명이 어려워 도움이 필요한 곳까지 함께 가기도 했다. 그런 나를 동료들은 좋게 보지 않았다.
 
뭐 하러 그런 일까지 해?”
잘 보여서 뭐 하게?”
 
잘 보이려고 한 일이 아니었다. 나는 능력도 학벌도 대단하지 않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손발 벗고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거기에 이들은 우리를 교육해 주겠다고 온 사람들 아닌가!
 
얼마 가지 않아 나는 해외 간부들의 해결사가 되었다. 그들이 내 이름인 하주현을 발음하기 어려워해서 가톨릭 세례명인 줄리아(Julia)로 부르도록 했다. 그들은 사소한 어려움을 겪을 때도 줄리아를 찾았고, 다른 사람이 어려움을 겪을 때도 줄리아를 추천했다. 해결사 줄리아로 산 지 3주 정도가 되었을까? 놀라운 제안을 받았다.
 
줄리아, 혹시 미국의 리츠칼튼에서 근무해 보고 싶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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