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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얄팍한 교통인문학>

01. 낯선 공간에 길을 열다.

by BOOKCAST 2020.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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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은 때로 ‘고통’이 된다. 서울 도심의 정체구간에서 몇 시간 동안 운전하면 그 고통을 체험할 수 있다. 가속페달과 브레이크페달을 번갈아 밟다 보면 발목의 통증이 어느새 어깨까지 올라온다. 길게 늘어선 줄, 빈틈으로 무섭게 끼어드는 차량, 사방에서 들려오는 경적 소리. 나도 모르게 신경이 예민해지고 눈빛은 날카로워진다. 가끔, 운전을 하면서 생각한다. 자동차가 과연 나를 자유롭게 해주는 걸까?

하지만 이런 생각은 도시인의 배부른 투정일 뿐이다. 자동차뿐 아니라 기차, 항공기, 선박 등 각종 탈것들은 먼 거리를 더 빠르고 편하게 잇는 문명의 선물이다. 교통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히고, 나아가 인류 전체의 삶과 경제, 문화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예컨대 기차와 자동차는 대도시 노동자들의 출퇴근 문화를 바꾸었고, 컨테이너 화물선은 세계 각국의 물건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항공기는 누구나 지구 반대편으로 훌쩍 떠날 수 있게 만들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수많은 탈것들의 궤적 위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갇힌 사회에서 열린 사회로


그렇다면 교통이라는 개념은 언제부터 인간 사회에 뿌리내리기 시작했을까? 인류에게 교통은 공간의 제약을 극복하는 방법이자, 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치열한 과정이었다. 정착생활을 시작하고 주거지가 확대됨에 따라 이동해야 할 거리도 점차 늘어났다. 공동체가 부족 단위 정도로 작았던 시절에는 걷기, 뛰기, 수영 등 인간의 신체활동만으로도 웬만큼 이동이 가능했다.

하지만 국가 단위로 공동체의 범위가 비약적으로 넓어지면서 인간의 힘만으로는 목적지까지 원하는 시간 안에 도착하기가 어려워졌다. 산맥이나 사막으로 막힌 두 지역이 서로 교류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동의 제약은 소통의 제약을 의미했으며, 이는 공간과 공간의 단절로 이어졌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거대한 제국들은 통치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교통망부터 구축하고자 했다.

고대 로마제국만 하더라도 길을 통해 통치영역을 확대하였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이 유명한 문장은 로마제국을 중심으로 당시 교역과 문화가 발전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로마인들은 도로와 같은 국가 인프라가 사람다운 생활에 필요한 기본 요소라고 생각했다. 또한 세금을 받는 국가가 당연히 수행해야 할 의무라고 여겼다.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는 ‘열린 사회’와 ‘갇힌 사회’를 나누는 기준으로서 ‘길’을 언급한 바 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길을 놓는다는 것은 단순히 공간을 연결하는 것을 넘어, 누군가 길을 통해 들어올 수 있고 또한 그 길을 통해 바깥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외부 세력의 침입이나 새로운 변화를 두려워한다면 결코 길을 열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로마제국은 외부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열린 사회였다. 그들은 기원전 3세기부터 500여 년 동안 372개 노선에 걸쳐 약 8,500㎞의 간선도로를 건설했다. 지선도로까지 합하면 무려 15만㎞에 이른다. 역사학자들은 “로마가 강했기 때문에 도로를 건설한 것이 아니라 도로를 건설했기 때문에 강했다”고 말한다. 제국 전역을 연결한 도로망 덕분에 로마는 군사·경제·문화적으로 다른 국가보다 우위에 설 수 있었다.


동양과 서양을 이어준 실크로드


과거에는 먼 거리를 이동하는 사람이 드물었다. 생산 활동은 대부분 마을 안에서 이루어졌고, 여행은 일부 지배계급의 사치일 뿐이었다. 그리고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경제적인 이유로 여행길에 오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상인들이다. 이들이 교역을 위해 싣고 다니던 물건들이야말로 교통의 존재 이유였다.

옛 상인들의 교통수단은 가축이었고, 그들이 가축과 함께 다니던 곳은 시간의 발자국이 쌓이며 길이 되었다. 이런 교역로 중에서 동양과 서양을 이어주던 가장 유명한 길이 실크로드(Silk Road)이다. 실크로드는 고대 중국과 서역 간에 비단을 비롯하여 정치·경제·문화를 이어 준 교통로를 말하며, 독일의 지리학자 리히트호펜(Ferdinand. Richthofen)이 이를 ‘비단길(Seidenstrassen)’이라고 명명하면서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했다.

 

 

 


오늘날 실크로드는 중국에서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를 거쳐 이스탄불과 로마에 이르는 교역로 전체를 의미한다. 이 길을 통해 중국의 비단, 칠기, 도자기 같은 물품과 양잠, 화약, 제지 같은 기술이 서양으로 전해졌다. 특히 종이 제조술은 유럽의 인쇄술 발달과 지식 보급의 원동력이 되었다. 반대로 중국으로도 서양의 여러 기술이 유입되었는데, 중국의 천문과 역학은 바빌로니아와 인도 지역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실크로드의 역사적 의의는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인도의 불교가 이 길을 통해 중국, 우리나라, 일본으로 전래되었으며, 그밖에 여러 종교와 문화가 실크로드를 따라 세계 각지에 전파되었다. 실크로드는 결코 비단처럼 매끄러운 물리적 도로가 아니다. 그것은 옛 상인들의 흔적이며, 전 세계의 문화를 이어준 그들의 거친발자국이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열망


교통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첫째는 사람이나 화물처럼 이동할 ‘주체’, 둘째는 자동차나 비행기처럼 이를 운반할 수 있는 ‘수단’, 셋째는 그 교통수단이 움직이거나 정박할 수 있는 도로·항구 등의 ‘시설’이다. 교통의 주체는 과거나 지금이나 크게 변한 것이 없다. 여전히 이동하는 것은 사람 혹은 화물이다. 하지만 이 둘을 실어 나르는 ‘수단’과 그 기반이 되는 ‘시설’은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 대부분의 진화는 19세기부터, 구체적으로는 증기기관차가 발명된 1825년 이후부터 급격히 전개되었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교통수단과 교통시설은 언제나 함께 발전했다. 증기기관차가 발명되면서 유럽에 본격적으로 철길이 놓이기 시작했고, 자동차가 대중화되면서 고속도로도 함께 뻗어나갔다. 항공기의 역사는 곧 공항의 역사이기도 하다. 기차, 자동차, 선박, 항공기 등각 교통수단의 진화 과정은 꽤 복잡하지만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길’이었다. 교통이란 결국 공간에 사람과 화물이 다닐 수 있도록 길을 내는 과정이다. 지상의 길이든, 바다의 길이든, 하늘의 길이든 그 의미는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길’이라는 단어는 어떤 곳으로 가는 여정, 삶의 방향이나 목적, 사람의 도리, 방법이나 수단 등 다양한 의미로 확장된다. 이것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길 위에서 자신의 운명을 개척했으며, 새로운 길을 발견하기 위해 헤맸다는 것을 의미한다. 길의 여러 의미 안에 인류가 걸어온 길이 담겨 있는 셈이다.

미국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는 <가지 않은 길>이라는 작품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두 갈래 길이 숲속으로 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사람이 덜 밟은 길을 택했고, 그것이 내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과거 수많은 사람들이 더 빠르고 효율적인 교통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그것은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을 발견하는 일이었으며,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움직이기 위한 몸짓이었다. 오늘날 정교한 교통 시스템은 단지 기술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걷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이 아닐까?

 

 

길은 단순히 도로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어떤 곳으로 가는 여정, 삶의 방향이나 목적, 사람의 도리, 방법이나 수단 등 다양한 의미로 확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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