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스마트폰에 빠져 있다. 과거에 책을 읽거나 워크맨으로 음악을 들었다면 이제는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거나 영화를 본다. 기술의 발전에 따라 대중교통에서 시간을 보내는 방법도 달라진 것이다. 우리는 이동 중 좁은 공간에서 어떻게든 지루함을 달래보려 하는데, 이런 욕구는 철도교통이 시작될 때부터 형성되었다. 이언 게이틀리(Iain Gately)는 『출퇴근의 역사』에서 기차가 처음 운행을 시작했을 때 대중들이 그곳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설명한다.
당시 승객들의 지루함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콘텐츠는 ‘책’이었다. 기차를 타면 낯선 타인과 좁은 공간에서 오랜 시간 함께 이동해야 했다. 그들은 긴 시간을 혼자 견뎌야 했고, 경우에 따라서는 옆 사람과 원치 않은 대화에 휘말릴 수도 있었다. 독서는 강제된 공공장소에서 혼자만의 영역을 구축하고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었다. 즉 사람들은 책을 통해 공적인 장소에서 사적인 공간을 확보한 것이다. 구텐베르크의 시대에 이미 인쇄기술이 발명되었으나 책이 본격적으로 유통되어 일상 속으로 들어왔던 것은 철도의 시대부터였다.
기차 이용객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도서 판매량도 덩달아 늘었다. 출판사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당시 기차역 간이 판매점에서는 책과 신문을 비롯해 다양한 상품을 판매했는데, 출판사들은 바로 이곳에 기차용 특별판 도서를 공급했다. 기차에서 읽을 책은 부피가 크지 않고 저렴해야 했으며, 출판사들은 이런 조건에 부합하는 작고 가벼운 책을 공급했다. 페이퍼백이나 문고판처럼 작고 간편하게 들고 다닐 수 있는 책은 철도교통과 함께 시작된 셈이다. 또한 철도교통은 이동 중에 책 읽는 문화를 만들어내며 문맹률을 낮추는 데도 일정 부분 기여했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은 증기기관차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증기기관차의 탄생
증기기관차가 보급되려면 기존에 말이 끌던 것보다 속도, 힘, 유지비용 등에서 앞서야 했다. 조지 스티븐슨(George Stephenson)은 기관차의 성능을 개선하기 위해 여러 아이디어를 고안해냈다. 그는 연통을 이용한 증기 분사 방식을 적용해서 기관의 동력을 두 배 이상 끌어올렸다. 또한 실린더와 바퀴를 직접 연결해서 효율성을 높였으며, 바퀴에 ‘커넥팅로드’라는 수평 지지대를 연결해 모든 바퀴가 골고루 동력을 전달받을 수 있도록 했다.
스티븐슨의 첫 증기기관차는 시범운행에서 평균시속 6.4㎞의 속도로 약 30톤의 석탄을 실은 화차를 끌고 언덕을 올라갔다. 그리 빠르지는 않았지만 말이 끄는 것에 비하면 놀라운 힘이었다. 문제는 속도가 아니라 레일이었다. 당시 선로는 목재나 주철이 사용되었는데 둘 다 증기기관차의 무게를 견디기 어려웠다. 그래서 스티븐슨은 연철로 레일을 만들어 내구성을 높였다.
증기기관차의 가능성을 확인한 스티븐슨은 스톡턴-달링턴 구간에 철도를 부설하고, 새로운 증기기관차 로코모션호를 개발했다. 로코모션호는 첫 운행에서 450여 명의 승객을 태우고 1시간 만에 14㎞ 떨어진 목적지에 도착했다. 스톡턴-달링턴 구간은 공공수송을 목적으로 부설된 최초의 철도였으며, 로코모션호는 개통 이후 잉글랜드 북부에서 석탄을 운반하기 시작했다.
한편 승객을 수송하는 최초의 열차는 1830년에 등장한 로켓호였다. 이 무렵 영국에서는 새로 개통되는 리버풀-맨체스터 구간에 어떤 기관차를 투입할지 열띤 논쟁이 벌어졌다. 결국 철도 회사에서는 500파운드의 상금을 걸고 기관차 경주대회를 열었고, 스티븐슨의 로켓호가 우승을 차지하면서 리버풀-맨체스터 구간의 기관차로 선택되었다. 로켓호는 승객 36명을 태우고 50㎞ 거리를 최고시속 46.8㎞로 주파했다. 수레나 마차의 평균속도가 고작 시속 1.5㎞ 정도였으니 그야말로 로켓을 타고 나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당시 열차에 탑승했던 사람들은 바람을 가르는 황홀감과 빠른 속도의 두려움을 동시에 느꼈다고 한다.
철도교통, 문화를 바꾸다.
철도교통은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어서 큰 인기를 모았다. 철도교통의 발전과 함께 사람과 물자의 이동반경이 넓어졌고, 작은 지역공동체에 머물러 있던 사회는 국가의 형태로 확장되었다. 철도는 세상을 하나의 길로 연결했다. 그리고 도시를 가로지르며 새로운 삶의 양식과 문화도 함께 실어 날랐다. 특히 증기기관을 이용해 대량으로 인쇄된 신문은 철도를 이용하여 곳곳으로 배달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곧바로 알게 되었다.
철도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도 바꾸었다. 굉음을 내며 달리는 거대한 증기기관차는 그 자체로 근대와 진보의 상징이었고, 철도의 구조적·기계적 아름다움은 당대 화가들의 작품 소재가 되었다. 영국의 윌리엄 터너(William Turner)는 1844년 <비, 증기, 속도>라는 회화 작품을 선보였다. 이 그림 속의 증기기관차는 뜨거운 열기로 주변 풍경까지 함께 불태우고 있다. 그것은 과거를 태우며 새로운 시대를 향해 달려가는 근대의 모습이기도 하다.
철도는 당시 등장했던 영화 매체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뤼미에르(Lumière) 형제가 만든 세계 최초의 영화는 기차역에 열차가 들어오는 모습을 담은 50초짜리 무성영화였다. 당시 관객들은 눈앞으로 돌진하는 기차에 놀라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고 한다. 또한 미래파 예술가들은 근대 문명이 낳은 속도와 기계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작품으로 표현했는데, 그들이 찬미했던 속도의 중심에는 철도와 증기기관차가 있었다.
근대적 인간의 완성
철도교통은 사람들의 일상에 ‘근대적 시간관념’을 심어놓았다. 기차가 대중화되기 전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정확한 시간이란 불필요했다. 해가 뜨면 밖으로 나가 노동을 하고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왔다. 일출·일몰 시간은 지역마다 달랐고, 따라서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철도교통은 멀리 떨어진 공간을 하나로 연결했고, 정확한 운행을 위해서는 출발 지점과 도착 지점이 같은 시간을 공유해야만 했다. 기차는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항상 정확한 시간에 출발하고 도착했다. 이러한 새로운 교통수단을 이용하면서 사람들의 시간관념도 달라졌다. 정확하고 일정한 기차의 시간에 맞춰 인간의 시간도 변해버린 것이다. 찰리 채플린이 영화 <모던 타임즈>에서 풍자한 근대 노동자의 시간 강박은 다름 아닌 철길 위에서 만들어진 셈이다.
열차를 타기 위해서는 정확한 시간을 알아야 했고, 때문에 시계의 수요도 크게 늘었다. 원래 시계는 돈 많은 귀족들의 사치품이었다. 하지만 누구나 기차를 타면서 시계는 필수품이 되었다. 시계를 가진 사람들은 더 이상 기차를 놓칠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기차탑승을 위해 구입한 시계가 다른 약속에도 활용되면서 모든 사람들이 동일한 시간을 공유하도록 도왔다. 이처럼 철도는 사람들의 삶을 시·분·초 단위로 재구성했다. 그 정교한 시간 속에서 마침내 자신의 삶을 통제하는 근대적 인간이 완성된 것이다.
로켓호에 탑승했던 사람들은 바람을 가르는 황홀감과 빠른 속도의 두려움을 동시에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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