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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얄팍한 교통인문학>

02. 인류의 역사를 움직인 바퀴

by BOOKCAST 2020.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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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태우고 유모차를 끌다가 갑자기 바퀴가 고장 나서 쩔쩔맨 적이 있다. 손쉽게 굴러가던 모든 것들이 내 힘으로만 움직이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바닥에서 바퀴가 온몸으로 구르며 땅을 밀어낸다는 것을, 사람은 그저 바퀴가 움직이도록 도와줄 뿐이라는 걸 말이다. 네 개의 작은 바퀴가 지면과 맞닿아 구르는 동안 아이와 짐들이 이쪽 공간에서 저쪽 공간으로 이동한다. 유모차부터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운동에너지의 극적인 변화를 우리는 일상의 매 순간마다 경험한다.

오늘날 이동수단에는 다양한 기계적 메커니즘이 담겨 있는데, 그중에서도 바퀴는 지면의 물체를 움직이게 하는 핵심 요소이자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기계 장치 중 하나다. 인간은 신체적 한계를 극복하고 이동의 자유를 얻기 위해 다양한 영역을 탐구했다. 가축을 길들인 것이 자연에서 이동수단을 우연히 ‘발견’한 것이라면, 바퀴는 이동에 필요한 도구를 ‘발명’한 것이었다. 그리고 가축이라는 자연물과 바퀴라는 인공물은 훗날 마차라는 형태로 자연스럽게 결합했다.

 

 



바퀴는 어디에서 굴러왔을까?


흔히 바퀴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처음 발명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지역에서 바퀴를 사용했다는 것은 그림문자 등 여러 자료를 통해 추정된 것일 뿐, 물리적인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바퀴는 대중적이지 않았으며, 실용적인 목적보다는 지배계급의 과시 목적으로 활용되었다는 견해도 있다. 즉 당시의 바퀴는 왕이나 사제의 위엄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바퀴의 성능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바퀴 이외에 다른 요소들이 필요하다. 바퀴가 적당한 마찰력으로 굴러갈 수 있는 도로 그리고 바퀴 달린 운송수단을 끌 수 있는 노동력이 있어야 한다. 노동력을 제공한 것은 주로 가축이었다. 하지만 어차피 가축을 써야 한다면 그냥 가축의 등에 싣고 가는 것이 수레를 끄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었다. 다시 말해 바퀴가 처음 발명되었을 때는 승차감, 주행성, 경제성 등 모든 면에서 가축보다 효율이 떨어졌던 것이다. 그래서 초기에 바퀴를 이용한 이동수단은 특별한 상황에서만 제한적으로 사용되었다.

바퀴에 대해 깊이 연구한 리처드 불리엣(Richard Bulliet)은 『바퀴, 세계를 굴리다』에서 바퀴가 처음 발명된 지역으로 동유럽 카르파티아 산맥의 구리광산을 꼽는다. 그는 광산 터널 안에서 광부들이 광석을 나르기 위해 바퀴 달린 사륜 수레를 사용했을 거라 추정했다. 다시 말해 일반적인 환경에서는 바퀴의 경쟁력이 가축보다 떨어지기 때문에 가축 활용이 어려운 곳, 수레의 장점이 극대화되는 곳에서 가장 먼저 바퀴가 사용되었을 거라는 얘기다.

이런 관점의 연장선상에서 바퀴가 유용하게 사용된 또 하나의 지역은 유라시아 초원이었다. 가축에게 먹일 풀을 찾아 끊임없이 움직이며 생활하던 유목민들은 네 개의 바퀴가 달린 수레 안에 텐트, 식품, 물을 싣고 긴 시간 동안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었다. 수레에 의한 운송은 ‘원거리 유목’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유목민들은 말과 수레를 활용해 유라시아의 광대한 초원지대를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었다. 따라서 바퀴는 말과 더불어 초원의 유목민들을 변방에서 세계사의 중심으로 이끌어낸 중요한 발명품이라고 할 수 있다.


수레의 진화, 바퀴의 혁신


바퀴의 수에 따라 수레의 형태와 기능도 달라진다. 처음 수레가 등장했을 때는 대부분 네 개의 바퀴를 장착했다. 사륜수레는 이동할 때는 물론 정지했을 때도 안정적이며, 더 많은 승차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짐을 운반하는 데는 네 바퀴보다 두 바퀴가 더 효율적이었다. 이륜수레는 방향전환을 포함해 대체로 조종하기 더 편했고, 사륜 수레보다 무거운 짐을 옮길 수 있었다. 두 개의 바퀴가 회전할 때 발생하는 마찰력이 네 개의 바퀴가 회전할 때의 절반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원전 2000년 이후부터는 이륜수레가 사륜수레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운송수단으로서 수레가 널리 활용되면서 바퀴의 형태도 점차 바뀌었다. 최초의 바퀴는 통나무를 그대로 잘라서 만든 것이었다. 나무의 지름이 곧 바퀴의 지름이 되었고, 큰 바퀴를 만들기 위해서는 더 큰 나무가 필요했다. 무거운 통나무 바퀴는 점차 살이 있는 가벼운 바퀴로 진화했다. 바큇살을 붙여서 만들면 통나무보다 무게가 줄어들기 때문에 수레 전체의 무게를 줄일 수 있었고 운반효율도 높아졌다. 무엇보다 통나무 바퀴는 나무의 지름보다 큰 바퀴를 만들 수가 없었다. 하지만 살이 있는 바퀴는 여러 부품을 조합해 만들기 때문에 크기의 제약에서 자유로웠다. 그리고 바퀴가 커진다는 것은 길 위의 장애물들을 효과적으로 주파할 수 있음을 의미했다.


전차의 시대에서 마차의 시대로

 

가볍고 튼튼한 바퀴, 정교한 수레 제작 기술, 길들여진 말. 이 세 가지 요소는 서로 화학작용을 일으키며 ‘전차’라는 새로운 탈것으로 진화했다. 전차는 오직 빠른 속도를 위해 개발되었으며, 바퀴의 장점을 극대화한 발명품이었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노예 검투사 막시무스는 로마의 정예 전차부대를 상대하게 된다. 당시 전차부대는 보병들에게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영화에서 전차부대는 빠른 속도로 콜로세움을 돌면서 중앙에 밀집된 병사들에게 화살을 날린다. 또한 두 바퀴의 회전축에는 칼날을 장착해 주변의 적들을 무자비하게 베어버린다. 물론 영화에서는 주인공의 침착한 대처와 노련한 지휘 덕분에 노예들이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현실이었다면 그들은 모두 전멸하고 말았을 것이다.

한동안 전차는 화려하게 전장을 누볐다. 이후 등자가 발명되고 기마병이 투입되면서 군용전차는 점차 승용이나 화물운반용으로 그 용도가 바뀌었다. 전장에서 퇴각한 이륜전차는 사륜마차가 되었고, 주로 상류층 여성들의 장거리 이동수단으로 활용되었다. 아마도 바퀴가 가장 우아하게 굴러가던 시절이었을 것이다. 중세 유럽의 남성 귀족들은 이동수단으로 말을 선호했으며, 마차를 타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했다고 한다. 마차에 오르는 것이 남자답지 못하다고 여겼던 탓이다. 하지만 이런 편견은 15세기 이후부터 점차 사라졌다. 남성들의 인식이 바뀌었고, 탑승자의 충격을 줄여주는 완충 기술이 개발되는 등 마차의 성능도 개선되었다. 그 결과 17세기 무렵부터 마차는 유럽 전역에서 귀족들에게 인기를 얻었고, 이후 증기기관이 발명될 때까지 대표적인 장거리 여행수단으로 사랑받았다.


역사라는 거대한 바퀴

 

지상의 모든 탈것들은 최종적으로 바퀴의 회전력과 마찰력을 통해 앞으로 나아간다. 바퀴는 운송수단과 길이 서로 만나는 접점이다. 네 개의 자동차 바퀴가 지면에 닿는 면적은 고작 A4용지 크기 정도라고 한다. 이 좁은 공간에서 바퀴가 지면을 붙잡고 있기 때문에 자동차는 안정적으로 달리고 멈출 수 있다.

자동차의 발전과 함께 바퀴의 성능도 비약적으로 발전했으나 그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바퀴는 여전히 둥글고 축을 중심으로 굴러간다. 포장된 도로가 없던 시절, 바퀴 달린 수레는 가축보다 효율이 떨어졌다. 인간이 수레를 포기하고 계속 가축에만 의존했다면 아마도 바퀴는 도태되어 사라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인류는 바퀴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바퀴에 다양한 기술을 접목시켜 가축보다 효율적인 이동수단으로 바꾸었다. 따라서 바퀴는 한계에 도전하면서 살아남은 인류의 역사 혹은 그 흔적이라고 할 수 있다.

바퀴는 앞으로 굴러가는 모습 때문에 종종 시간과 역사의 은유적 표현으로 사용된다. ‘역사의 수레바퀴’라는 표현에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시간의 속성이 담겨 있다. 그래서 황동규 시인은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라는 작품으로 정체되지 않고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사회를 꿈꾸기도 했다. 바퀴가 움직이기 위해서는 추진력과 함께 지면과의 마찰력 또한 필요하다. 아무리 강한 힘이 작용해도 얼음판처럼 미끄러운 길 위에서 바퀴는 제자리를 헛돌 뿐이다. 새가 좌우의 날개로 날아가듯이 앞으로 가려는 구동력과 붙잡아 두려는 마찰력이 만나서 역사의 바퀴는 굴러간다. 과거를 지나 현재를 스쳐 미래를 향해.

 

바퀴는 한계에 도전하면서 살아남은 인류의 역사, 혹은 그 흔적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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