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anmar
카렌족 / 연도 미상
비슈누 신과 물고기 모티프
카렌족은 미얀마를 중심으로 태국 북서부에 사는 부족이다. 그들은 모든 사물에 정령이 깃들어 있으며 그들로부터 영적인 힘이 나온다고 믿고 있다. 카렌족 사이에서 전해 내려오는 「우기의 기원」은 창세 신화 중에 하나로, 그 기원은 꽤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어느 마을에 마음씨 고운 소녀가 있었는데 이웃들 사이에 착하기로 소문이 났다. 그러나 어머니가 갑작스레 사망하고 아버지는 재혼을 하게 되는데, 새로 들어온 계모는 자신의 딸도 함께 데리고 온다. 계모는 친딸만 귀여워하고 소녀에게는 힘든 일을 시키며 괴롭힌다.
소녀는 슬퍼하며 시냇가에서 수면을 들여다보다가 물고기를 발견한다. 가지고 있던 밥알을 주며 다정하게 말을 건네니 한 마리였던 물고기가 두 마리로 늘어난다. 소녀는 물고기들과 친해져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계모는 아무리 괴롭혀도 소녀의 기분이 금방 풀리는 것을 이상하게 여겨 따라갔다가, 그녀가 물고기와 대화하는 것을 보고 시샘을 낸다. 계모는 소녀가 없을 때 물고기를 불러보지만 목소리를 알아듣는 물고기는 소녀의 목소리와 다른 것을 알아채고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화가 난 계모는 소녀가 물고기와 대화하는 것을 숨어서 지켜 보다가 물고기가 나타나자 돌을 던져 두 마리 모두 죽인다. 소녀가 물고기를 애도하기 위해 쐐기풀에 불을 붙이려고 하자, 갑자기 그 사체에서 기름이 쏟아져 나와 불이 꺼진다. 기름은 산더미처럼 쌓였고 소녀가 그 위에 오르자 점점 높아져 하늘까지 닿는다.
하늘로 올라간 소녀는 달의 여신과 비의 여신을 만나 그들의 조카인 번개와 결혼한다. 그리고 번개와 비의 신은 소녀를 괴롭힌 계모를 벌하기 위해 지상에 큰 홍수를 일으킨다. 이것이 우기의 기원이라고 한다.
– 야마무로 시즈카, 『세계의 신데렐라 이야기』 중에서

카렌족의 신데렐라 서사에는 신발 모티프가 존재하지 않지만 조력자가 물고기라는 점에서 중국의 「예시엔」, 베트남의 「떰과 깜」과 유사하다. 태국의 「황금 망둥어」라는 이야기에서도 망둥어로 변한 어머니가 주인공을 곤경에서 구해 내는 역할을 한다. 물고기 모티프는 인도와 베트남, 술라웨시 섬, 혹은 아시아 지역의 민화에서 볼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어업’이라는 생활 문화와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다.
포르투갈의 신데렐라 서사 「부뚜막 고양이」에서는 왕자가 물고기로 변해 조력자로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예외적인 일이다. 과거 포르투갈은 아시아와 무역을 하고 식민지를 지배하는 과정에서 아시아의 신데렐라 서사가 유입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민화는 그 지역의 풍토나 역사와 깊은 연관이 있다. 예를 들어, 물고기 신앙의 기원은 인도 신화에 등장하는 힌두교의 비슈누 신이라고 여겨진다. 그러고 보면 물고기가 발휘하는 신통력은 신의 힘과 닮기도 했다.
미얀마의 「우기의 기원」은 신화적 요소를 분명하게 담고 있으며 유럽의 신데렐라 서사보다 그 기원이 오래되었다. 또한 지상이 아닌 천계에 있는 번개의 종족과 결혼한다는 비유를 통해볼 때 타부족과 혼인을 맺는 이른바 ‘외혼제’의 특징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소녀는 물고기에게 내려진 비슈누 신의 가호로 천계에서 계모에게 복수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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