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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신데렐라 내러티브>

07. 신데렐라 서사는 어떻게 유라시아 끝까지 건너왔을까?

by BOOKCAST 2022. 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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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파의 시초는 유럽이 아니다?

신데렐라 서사는 어떻게 동아시아 바다 건너 일본까지 유입될 수 있었을까? 지금까지 사람들은 메이지 시대(1867년~1912년) 이후에 유럽으로부터 동화가 전해지며 그 일환으로 함께 전파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시에는 유럽의 영향이 압도적으로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서 살펴봤듯이 신데렐라 서사는 일본에서도 까마득히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미 조몬 시대나 야요이 시대(기원전 10세기경~기원후 9세기경)에 한반도 또는 류큐 제도를 경유하여 일본으로 건너간 사람들이 있었으며, 이후 대륙과 동남아시아와의 활발한 교류 덕분에 타지역의 신화와 민화도 함께 유입되었을 것이다. 고대에 일본으로 건너간 사람들이 퍼뜨린 문화와 수나라, 당나라 등 해외 유학을 통해 문서로 유입된 이야기도 있었다.

일본에 전해지는 이야기 중에서 칠석전설, 「다케토리 모노가타리」, 「우의전설」 등에도 대륙의 신데렐라 서사와 비슷한 점이 있다. 또한 베트남의 「떰과 깜」에서 드러나는 모티프는 개의 영혼이 나무로 환생해 기적을 일으키는 「꽃 피우는 할아버지」와 은혜 갚은 거북이의 이야기인 「우라시마 타로」 등의 민화에서도 엿볼 수 있다.

구전으로 일본에 널리 퍼져 있는 신데렐라 서사는 「누카후쿠와 고메후쿠」인데, 한국의 「콩쥐 팥쥐」와 줄거리가 유사하다. 중국 헤이룽장성 연변에 있는 조선족도 한반도 문화권에 속하기 때문에 이 지방에도 「콩쥐 팥쥐」가 전해지고 있다.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면 「누카후쿠와 고메후쿠」는 중국 대륙, 동남아시아, 티베트의 신데렐라 서사와도 맞닿아 있다. 따라서 신데렐라 서사는 아시아 루트를 거쳐 일본에 전파되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누카후쿠와 고메후쿠」와 영향을 주고받은 관계는 확실하지 않지만, 비슷한 이야기로 일본 중세에 『오치쿠보 모노가타리』와 「우바카와」 등의 문학 작품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 세키 게이고에 따르면 이들이 탄생한 시기는 10세기 말 혹은 그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고 한다. 즉 이런 이야기는 9세기 중국에서 탄생한 「예시엔」의 영향을 받았으며 신데렐라 서사의 기원이 되는 이야기는 늦어도 헤이안 시대(794년~1185년)에 일본으로 전파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일본에는 「오긴과 고긴」, 「재투성이」, 「손 없는 색시」 등의 민화에 어린아이가 학대를 당하는 신데렐라 서사가 남아 있다. 이 중에서 『오치쿠보 모노가타리』는 에도 시대(1603년~1867년)에 작가 교쿠테이 바킨이 개편하여 「베니자라 가케자라」라는 연극을 만들기도 했다. 다만 결혼의 결정적인 수단을 신발이 아니라 일본의 전통 시(和歌)로 대체했다.

한편, 개항 이후 독일의 『그림동화』가 일본 민화에 스며드는 현상이 일어났다. 스가 료호가 1887년에 신데렐라 서사를 『서양고사신선총화』에 수록해 출판하였고 쓰보우치 쇼요는 이것을 「오싱 모노가타리」라는 이야기로 1900년에 교과서에 실어 널리 소개했다. 교과서에서는 ‘신발’이 ‘부채’로 바뀌기도 했지만 신데렐라 서사가 정착되는 데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렇듯 일본이 수용한 신데렐라 서사는 메이지 시대 이전을 기반으로 하는 민화에 서양의 것이 합쳐진 이중 구조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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