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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신데렐라 내러티브>

06. 콩쥐 팥쥐_조선 문화와 『그림동화』의 만남

by BOOKCAST 2022.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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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작자 미상 / 연도 미상


조선 문화와 『그림동화』의 만남

티베트의 「노예의 딸」처럼 한국에도 소를 조력자로 하는 신데렐라 서사가 전해진다. 일본에서 출판된 최인학 편저의 『조선 옛이야기 백선』에 「콩쥐 팥쥐」가 실려 있는데, 잘 알려져 있듯이 한국에서 손에 꼽히는 유명한 이야기다.

옛날 옛적, 금슬 좋은 부부가 있었는데 그들에게는 자식이 생기지 않아 늘 속상해했다. 어느 날 스님이 부부의 집에 시주를 받으러 온다. 마음씨 고운 부인이 스님에게 쌀을 한가득 내밀자 스님은 혹시 소원이 있느냐고 묻는다. 부인은 아이를 갖고 싶다고 말했고 스님은 100일 동안 부처님께 기도하면 아이를 내려 주실 것이라고 예언한다.

과연 그 말대로 아이가 태어났고 부부는 아이에게 ‘콩쥐’라는 이름을 붙여 준다. 하지만 콩쥐가 어릴 때 어머니가 죽고 아버지는 몇 년 후에 후처를 얻는다. 계모는 콩쥐보다 한 살 어린 여자아이를 데려 왔고 ‘팥쥐’라고 불렸다. 콩쥐는 동생 팥쥐를 매우 귀여워했지만 팥쥐는 심술궂었다. 이윽고 아버지마저 사망하자 계모는 점점 콩쥐를 괴롭힌다.

하루는 콩쥐가 내용물이 변변치 않은 도시락을 나뭇가지에 걸어 놓고 돌 섞인 거친 땅을 갈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까마귀가 날아오더니 도시락을 먹어 치운다. 반면 팥쥐는 계모가 싸 준 고기와 쌀을 챙겨 부드러운 모래땅을 갈고 있었다. 콩쥐는 땅이 너무 거친 탓에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어 주린 배를 안고 울고 있는데, 하늘에서 암소가 내려와 음식을 베풀고 농사일을 도와준다.

그 소식을 들은 팥쥐는 콩쥐처럼 맛있는 음식을 받을 생각으로 황무지로 나간다. 그리고는 거짓으로 울며 도시락을 까마귀에게 빼앗겼다고 호소하자 암소가 나타난다. 암소는 이렇게 말한다.

“강에서 손발과 몸을 깨끗이 하고 내 엉덩이에 손을 넣어 원하는 음식을 얻어라.”

탐욕스러운 팥쥐는 먹음직한 음식을 많이 가져가고 싶었다. 그런데 욕심을 내서 음식을 너무 가득 쥐는 바람에 손이 빠지 않아 암소가 하늘로 올라가려 할 때 함께 끌려가야 했다. 결국 팥쥐는 음식을 놓을 수밖에 없었고 그대로 땅 위로 떨어져 피투성이가 된 채 집으로 돌아간다.

며칠 뒤 친척집에서 잔치가 벌어져 계모와 팥쥐가 나들이를 나간다. 콩쥐는 자신도 데려가 달라고 부탁하지만 되려 삼베짜기, 청소, 물 긷기, 부뚜막에 쌓인 잿더미 정리 등의 집안일을 떠안고 어찌할 바를 몰라 슬프게 운다. 그러자 참새가 나타나 일을 모두 정리해 주고 암소가 옷과 꽃신을 건네준다.

그렇게 차려입고 잔치에 가니 모두가 아름다운 콩쥐를 칭찬한다. 계모와 팥쥐는 질투에 사로잡힌 나머지 콩쥐를 잔치에서 쫓아내려고 한다. 콩쥐가 잡히지 않으려고 허겁지겁 도망가는데 도중에 꽃신 한 짝이 벗겨진다. 그 꽃신을 감사(監司)가 발견하고, 때마침 잔치에 사람이 많이 몰려 있기에 신발의 주인이 누구냐고 묻는다. 그러자 팥쥐가 자신의 것이라고 나서는데 신발이 발에 맞지 않는다. 계모는 포기하지 않고 팥쥐의 발을 칼로 베어서 신겼지만 거짓이 들통나 벌을 받는다. 마침내 감사의 하인이 마을로 찾아와 콩쥐를 발견하고 신발을 신겨 본다. 신발은 발에 딱 맞았고 감사는 콩쥐를 아내로 삼는다.

– 최인학, 『조선 옛이야기 백선』 중에서

콩쥐가 무리한 요구를 강요당하고 울고 있자 참새가 도와주는 장면이나, 신발이 팥쥐에게 너무 작아 계모가 팥쥐의 발을 자르는 장면은 「재투성이」와 매우 흡사하다. 이런 장면은 수많은 신데렐라 서사 가운데 오직 「재투성이」에서만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혹시 「콩쥐 팥쥐」는 『그림동화』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닐까?

물론 「콩쥐 팥쥐」에서만 존재하는 조선 특유의 문화도 녹아있다. 그중에서 이야기에 등장하는 ‘감사’라는 직책은 지역 관리 중에 가장 높은 자리였고, 그의 아내가 되는 것은 누구나 동경하는 일이었다. 「콩쥐 팥쥐」 역시 전형적인 신데렐라 서사의 구조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동아시아 신데렐라들의 공통점

한국의 신데렐라 서사는 「콩쥐 팥쥐」라는 제목에서 농경 문화를 떠올리게 한다. 베트남의 「떰과 깜」(으깨진 쌀알과 겨), 일본의 「누카후쿠와 고메후쿠」(겨와 쌀)와도 비슷한 결을 가진다. 그에 걸맞게 암소가 조력자로 등장하는가 하면 유럽과 티베트, 중국의 이야기처럼 신발이 배우자를 간택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한편, 「콩쥐 팥쥐」에는 불교의 흔적이 남아 있다. 아이를 낳을 것이라 예언한 스님은 동냥을 하는 승려, 즉 탁발승이다. 한반도에는 4세기에 불교가 전파되었다. 이후 고려 말부터 유교가 득세하면서 불교가 탄압받았으나 근대에 다시 부활했다. 「콩쥐 팥쥐」에서 등장하는 스님은 상당히 오래된 초기 불교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일 것이다. 

신윤복의 「노상탁발」에는 조선시대 탁발승들이 몸을 굽혀 동냥을 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탁발승은 불교가 탄압을 받던 조선시대에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지만 전래 동화에서는 큰 역할을 하며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전해질 수 있었다. 신윤복, 「노상탁발」, 연도 미상 Ⓒ신윤복, 「노상탁발」 / 공유마당 / CC-BY
 

유라시아 대륙에 퍼진 신데렐라 서사에는 공통점이 있다. 첫째, 재혼의 형태다. 물론 예외도 있지만 보통 재혼을 할 때 계모가 자신의 아이를 데려오고, 자연스럽게 의붓자매라는 설정이 등장한다. 한반도는 대륙과 이어져 있기 때문에 그 영향을 받았다. 둘째, 신발 문화를 꼽을 수 있다. 한반도에서는 예로부터 신분에 따라 신는 신발의 종류가 달랐다. 그 재료는 가죽부터 시작해서 나무, 짚, 삼베 등 다양했다. 특히 여성에게 꽃신은 손으로 직접 만든 명품의 상징이었다. 「콩쥐 팥쥐」에서 감사가 남은 꽃신 한 짝에 관심을 보이고 주인을 찾으려 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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