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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세이/<겨우 존재하는 아름다운 것들>

06. 비켜나 있음의 쓸모

by BOOKCAST 2022.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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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어떤 아이에게 물을 줄까? 눈과 귀를 활짝 열고 조심조심 베란다 식물들 사이를 돌아보는데 이번에는 찔레꽃이 말을 걸어온다. 자신은 사고파는 상품이 아니라서 사진 한 번 찍어 주지 않느냐고.

, 미안 미안해.
서둘러 찔레꽃을 포토존(고등학생 딸이 졸릴 때 서서 공부하는 하얀 스탠딩 책상인데, 가끔 식물을 올려놓고 사진 찍는 포토존으로 이용하고 있다)에 올려놓고 찬찬히 들여다본다.
찔레꽃, 너는 어디서 왔더라? , 맞다! 벌써 십 년이 족히 넘었겠구나.
 
친정집에 갔을 때 일이다.
아침밥 드시라고 밭일하는 아버지를 모시러 논두렁 사잇길을 설렁설렁 걸었다. 마침 아버지가 일하는 밭 옆에는 하얀 찔레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아직 이슬도 채 가시지 않은 살짝 이른 아침, 새소리로 가득한 산골짝에서 만나는 찔레꽃 향기에 나는 금세 취해버렸다. 무덤 같은 찔레꽃 무더기 앞에서 오래 서성이다 얼마간 나가 있던 정신을 차리고 돌아보니 아버지는 벌써 저만치 집으로 가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마당에 나가보니 뿌리가 상하지 않도록 잘 포장된 아기 찔레꽃 한 뿌리가 있었다. 유독 식물을 사랑하는 막내딸의 마음을 진작에 알아본 아버지가 올라갈 때 가져가라고 새벽에 준비해 놓은 것이다. 탐스러운 모란꽃과 석류나무의 꽃과 열매, 그리고 고요와 선비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배롱나무를 사랑한 아버지는 식물에 애착하는 내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러니까 이 찔레꽃은 친정아버지의 잔잔한 정이 가득한 마음 씀씀이로 우리 집에 오게 된 거다. 새소리만이 가득한 산기슭에서 도시의 열악한 베란다로.
그날부터 나는 베란다에서 찔레꽃 한 송이 피우는 행복을 꿈꾸었다.
한 송이만으로도 베란다에 찔레꽃 향기 가득하겠지.


 

그런데 십 년이 넘어가지만 아직까지 꽃 한 송이 보지 못했다. 그래도 괜찮다. 죽지 않고 잘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좋고, 여전히 나는 찔레꽃 한 송이 피우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으니까. 무성한 초록 이파리들 사이에 하얀 찔레꽃 한 송이를 상상으로 즐기는 것도 꽤 괜찮다.
 
도심 곳곳에 화려하게 피어나는 빨간 장미꽃과 비슷한 시기에 피어나는 하얀 찔레꽃. 나는 화려한 장미꽃보다 소박한 찔레꽃을 더 좋아한다. 왜일까?
찔레꽃 앞에 서면 마음이 뭉근하게 풀어지는 게 그냥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건 또 왜일까?
찔레꽃을 앞에 두고 조약돌이 그리는 물수제비처럼 생각이 잔물결로 펼쳐나간다. 오랜 세월 중심보다는 가장자리의 삶을 살아온 것과 깊은 관련이 있을 듯싶다.

내향적인 성격 탓에 앞에 나서지 못하니 점점 주변부로 밀려나게 되고, 동시에 사람들의 관심도 덜 받게 되니 혼자만의 시간이 길어지게 되었다. 혼자만의 긴 시간은 자연스레 자기비하나 열등감, 우울감 같은 것을 데려오니 얼마간은 정신적으로 힘듦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혼자만의 시간에 혼자서 꽁냥꽁냥 할 수 있는 놀이와 깊은 고민들이 있었으니 그런 감정들은 어느 정도 통제가 가능했다. 특히 혼자만의 시간에 최적의 놀이인 책읽기는 가장자리의 쓸쓸함에 큰 기둥이 되어주었다.

그리하여 적당한 쓸쓸함과 우울감과 열등감을 품은 가장자리는 내 몸에 딱 맞는 가장자리의 삶이 되었다. 그러니 찔레꽃 앞에서 가장자리의 공간과 그 느낌과 분위기가 내 몸에 딱 맞는 옷처럼 편안한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자리의 삶에서 좋은 것은 중심에서 돌아가는 일이 어떤 관심이나 방해받을 일 없으니 더 잘 보인다는 것이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중심에서 비켜나 있음이 아주 유용한 쓸모가 되는 셈이다.
 
그러니까 소박해서 더 좋아하는 찔레꽃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송이만 피워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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