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카시꽃 향기가 흥건하던 더없이 좋은 날에 아버지를 영원히 떠나보내고 나는 골방에 처박혀 보냈다. 보냈다기보다는 견디는 시간이었다. 죽음과 애도에 관한 책을 수없이 읽었지만 막상 내 앞에 닥치고 보니 속수무책이었다.
더디게 가는 시간을 견디며 아버지 사십구재까지 지내고 나서 오랜만에 아래층에 사는 언니를 만났다. 이미 늦었지만 더 늦어지면 서운해할까 봐, 그동안 아버지 장례를 치렀노라고 했다. 순간 언니의 큰 눈이 촉촉해지더니 의자를 가까이 끌어당기며 두 손으로 내 손을 가만히 감싸 안았다.
“…….”
“그리 큰일을 치렀구나.”
“…….”
볼 일을 마치고 밥때가 되어 점심을 먹고 났을 때 언니는 별일 없으면 함께 갈 데가 있다고 했다. 사고 싶은 식물이 하나 있는데 수형을 좀 봐달라며 바람도 쐴 겸 화원에 같이 가자고 했다. 식물이라는 말에 흔쾌히 따라나선 길, 차창으로 보이는 낮은 지붕의 마을과 논두렁 풍경에 마음이 곧 해사해졌다.
언니가 사고 싶었던 식물은 나 때문에 알게 되어 고맙다며 언젠가 밥까지 사며 좋아라 했던 마오리 소포라였다. 오랜 시간 요리조리 꼼꼼히 살펴서 드디어 고른 그 마오리 소포라는 우리 집에 와 있다. 두 번째로 고른 건 언니가 데려갔다.
언니의 사려 깊은 위로와 애도의 선물, 따뜻한 이야기를 품은 작은 나무, 마오리 소포라.
이제 막 돋아난 새싹처럼 자그마한 이파리가 무척이나 귀엽다. 특이하게 지그재그로 오밀조밀 자라나는 줄기는 소포라가 선(線)을 즐기는 나무라는 걸 확실하게 각인하는데, 그 지점이 바로 소포라에 유혹되는 결정적인 이유다. 소포라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니 아버지가 과실나무 외에 유일하게 좋아하셨던 배롱나무를 닮은 듯도 하다.
올해 처음으로 우리 집에서 겨울을 나게 될 마오라 소포라 때문에 나는 늦가을부터 마음을 졸였다. 이야기를 품은 식물이니 더 각별한 마음이었다. 기온이 내려가면서 이파리가 누렇게 되고, 누런 이파리는 우수수 떨어지고 그나마도 줄기 하나는 우리 집 채식 지향 고양이 레오가 날름 훑어 먹어버렸다.
예민한 이 아이를 어쩐다지?
오전이면 해를 따라다니며 옮겨주고, 흐린 날에는 실내등을 켜고 선풍기로 산들바람 강속의 바람을 쏘여 주었다. 영양제도 한 피스 먹이고. 그러고 두 달쯤 지났을까.
노랑을 품은 연둣빛 싹이 나오기 시작했다.
히야! 이제 됐어. 드디어 생기를 찾았구나.
내 몸에 싱싱한 세포 하나가 생긴 것만 같았다. 내 간절한 마음에 반응해준 소포라, 그저 고마웠다.
아니지. 오히려 소포라가 나에게 고마워하지 않을까?
적절한 때를 넘겨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되지 않도록 예민하게 알아차린 내 마음결에 대해서 말이야. 식물이나 사람이나 회복하기 적절한 때를 예민하게 알아차려야 하는 법이니까.
이 엄동설한에 연둣빛 새순을 바라보는 일에 하염없이 시간을 쓰고 있다. 더불어 내 마음도 서서히 회복되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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