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자동차 경주는 1894년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되었다. 신문사 ‘르 프티 주르날(Le Petit Journal)’의 주최로 파리에서 루앙까지 126㎞를 달리는 경기였다. 이 대회에는 증기차, 가솔린차, 전기차 등 다양한 형태의 자동차들이 함께 출전했고, 속도를 겨루는 것보다는 내구성과 연비를 겨루는 형태에 더 가까웠다. 그리고 이듬해 프랑스 파리에서 보르도까지 가장 먼저 결승점에 도착한 선수를 가리는 제대로 된 자동차 경주가 개최되었다.
자동차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는 중이었고, 자동차 경주는 이러한 기술을 테스트하고 대중들에게 홍보할 수 있는 무대였다. 첫 대회에서는 다임러의 엔진이 장착된 자동차가 우승을 차지하면서 가솔린 자동차의 우수성을 과시하기도 했다. 이후 유럽의 각 도시를 연결하는 장거리 레이스가 성행하였으나 각종 사고로 인해 1903년부터는 자동차 경주가 전면 금지되었다. 당시에는 자동차 성능에 제한이 없었기 때문에 사고가 잦았고 사망자도 많이 발생했다. 그래서 안전하게 경기를 진행할 수 있는 규격, 즉 ‘포뮬러(Formula)’가 등장하였다. 참가하는 자동차의 크기나 성능을 규제하여 공정하고 안전한 경기를 도모한 것이다.
유럽을 휩쓴 그랑프리 열풍
최초의 포뮬러는 차량 중량을 1,000㎏ 이하로 제한하였으며, 1904년 미국에서 개최된 제1회 밴더빌트컵 레이스에서 처음 적용되었다. 하지만 오늘날 자동차 경주의 기원이 된 것은 1906년 프랑스 오토모빌 클럽이 주최한 프랑스 그랑프리였다. 이 대회 역시 동일한 규격이 적용되었으며, 프랑스 르망시 부근의 공공도로를 폐쇄해 서킷으로 사용하였다. 때문에 당시 경기장은 한 바퀴가 150㎞에 이를 정도로 길었고, 32개 팀이 치열한 경주를 벌였다.
이후 자동차 경주는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며 다양한 그랑프리가 생겨났고, 각국의 자동차 제조사들이 경쟁적으로 참여했다. 포뮬러가 제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각 제조사들은 규정 내에서 최고의 성능을 추구했고, 포뮬러 규정 역시 시간이 지날수록 강화되었다. 1900년대 초반에는 프랑스의 르노와 푸조, 이탈리아의 피아트, 독일의 메르세데스 등이 주요 참가 제조사였고, 1920년대 후반부터는 이탈리아의 알파로메오, 프랑스의 부가티 등이 이름을 알렸다. 그리고 1930년대에는 그랑프리 경기가 18개로 늘어나며 대중들의 큰 인기를 모았다.
세계 최고의 모터스포츠 포뮬러 원
세계 최초의 자동차 경주를 개최한 프랑스는 모터스포츠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다. 프랑스는 영국, 독일,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각 국가별 자동차 경주를 국제적으로 통합하는 데 앞장섰고, 마침내 1947년 전 세계 모든 국제 모터스포츠를 관장하는 국제자동차연맹(FIA)이 탄생했다. FIA의 공식명칭이 프랑스어이고, 그 본부가 파리에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FIA에서는 출범 이후 모든 그랑프리를 통합하는 새로운 규정, ‘포뮬러 원(F1)’을 제정했다. 그리고 유럽 전역에서 산발적으로 열리던 그랑프리를 하나의 카테고리로 통합해 1950년 영국 실버스톤에서 첫 번째 F1 그랑프리를 개최하였다. 현재 세계 최고의 모터스포츠로 불리는 F1 그랑프리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자동차는 탄생과 동시에 빠른 스피드로 대중들을 열광시켰다. 속도는 인간의 승부욕을 자극했고, 그 욕망은 모터스포츠로 실현되었다.
한편 비슷한 시기인 1949년 미국에서는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 시리즈 중 하나인 나스카(NASCAR) 챔피언십이 조직되었다. 나스카는 ‘전미 스톡카 자동차 경주 협회’의 약자이며, ‘스톡카(stock car)’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대회는 일반 상용차를 경기용으로 개조해 레이싱을 진행했다. 원래 스톡카는 양산차를 기반으로 한 경주용 자동차를 의미했으나, 최근에는 겉모습만 양산차와 비슷할 뿐 내부는 별도의 프레임과 엔진으로 제작된다.
르망 24시와 밀레밀리아
한편 그랑프리 경주가 포뮬러 규정과 함께 보다 전문화되면서 일반적인 스포츠카를 사용하는 레이싱 대회도 생겨났다. 1910년경에는 자동차 시장에 실용성과 고성능을 겸비한 스포츠카 장르가 등장했으며, 이에 따라 1920년대에는 스포츠카 전문 대회로서 프랑스의 ‘르망 24시’, 이탈리아의 ‘밀레밀리아(Mille Miglia, 1000마일)’ 등의 레이스가 등장했다. 르망 24시는 24시간 동안 몇 바퀴를 돌았는지에 따라 순위를 정한다. 자동차의 내구성을 증명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에 기술력을 강조하고 싶은 자동차 회사들이 많이 출전하는 대회다. 르망 24시는 지금까지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모터스포츠 중 하나이며, 특히 단일 레이스로는 최대 규모의 모터스포츠 이벤트이기도 하다.
밀레밀리아는 1927년부터 약 30년간 개최된 레이싱 대회로, 그 이름처럼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1000마일’을 달리는 경주였으며,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레이싱’으로 불렸다. 하지만 1957년 대형사고가 발생하면서 경기는 중단되었고, 20년이 지난 1977년에야 비로소 부활하게 되었다. 새로운 밀레밀리아는 과거에 대회가 열렸던 기간, 즉 1927년에서 1957년 사이에 제작된 클래식 자동차만 참여할 수 있는 독특한 대회로 바뀌었으며, 오늘날까지 대표적인 클래식 자동차 경주로 이어지고 있다.
즐거움이 세상을 움직인다.
자동차는 탄생과 동시에 빠른 스피드로 대중들을 열광시켰다. 속도는 인간의 승부욕을 자극했고, 그 욕망은 모터스포츠로 실현되었다. 자동차의 ‘달리는’ 속성이 승부를 겨루는 ‘레이싱’의 발견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 것이다. 모터스포츠는 놀이로써 자동차의 새로운 가치를 찾아낸 것이었다. 포르쉐의 경영자 페리 포르쉐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도로에서 자동차가 사라진다고 해도 우리는 여전히 스포츠카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현재 우리는 말을 타고 다니지 않지만 레저와 스포츠 영역에서 과거보다 더 많은 경주마를 갖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 세상에서 마지막에 만들어질 차, 그것은 아마 스포츠카가 될 것이다.” 모터스포츠는 자동차 산업 초창기부터 관련 기술의 놀라운 진화를 이끌었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실용이나 경제성이 아닌 재미와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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