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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얄팍한 교통인문학>

09. 세계경제를 바꾼 강철 상자

by BOOKCAST 2020.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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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할인마트에 가면 전 세계에서 생산된 물건들이 우리를 기다린다. 독일 주방용품, 미국 소고기, 베트남 해산물 등 세계 각지의 다양한 물건들을 손쉽게 구할 수 있다. 오늘날 사람들은 당연한 듯 먼 지역의 상품들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하지만 사실 이것은 1950년대까지만 해도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장거리 화물수송 자체가 어려웠고, 가능하더라도 운송료가 너무 비쌌기 때문이다. 운송비가 획기적으로 낮아지기 시작한 것은 컨테이너 시스템이 등장하면서부터였다.

과거의 항구 모습과 오늘날의 항구 모습을 비교해보면 운송비의 차이가 왜 발생하는지 알 수 있다. 옛 항구에는 항상 일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인부들은 저마다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배를 오르내렸다. 수십 킬로그램의 짐을 내리고 다시 선적하는 일은 엄청난 육체노동이었을 뿐만 아니라,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부두 근처에는 짐을 보관하는 창고들이 즐비했고, 창고가 없는 곳에는 아예 제품 생산을 위한 공장이 들어섰다. 항구는 원자재를 쉽게 확보하고 제품을 신속히 내보내기에 가장 유리한 장소였다.

오늘날 항구에는 등짐 나르는 인부들이 없다. 어떤 물건이 선적되는지 육안으로 확인할 수도 없다. 아스팔트로 포장된 광활한 공간에 수시로 드나드는 대형트럭, 높이 쌓여 있는 컨테이너 박스, 그리고 거대한 크레인이 있을 뿐이다.

컨테이너 시스템은 과거의 풍경을 한순간에 바꿔놓았다. 화물을 미리 규격화된 크기의 컨테이너에 담아서 항구로 옮긴 뒤 크레인으로 배에 선적하면 출발 준비가 끝난다. 화물을 배에서 항구에 내릴 때도 마찬가지다. 선적 과정이 단순화되면서 비용은 크게 감소했다. 부두에서는 노동자들이 빠르게 사라졌고, 물건을 쌓아두는 창고도 줄어들었다. 공장의 입지도 바뀌었다. 전 세계 어디든 빠른 수송이 가능해지면서 입지 선택이 자유로워졌다. 컨테이너 박스는 단순히 화물을 운반하는 도구가 아니라 화물운송 시스템 자체의 혁명이었고, 세계경제의 흐름을 바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바다와 육지를 하나로 잇다.


마크 레빈슨(Marc Levinson)의 저서 『더 박스』에는 컨테이너의 역사가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책에 따르면 현대적인 컨테이너 시스템은 한 트럭운송회사에서 시작되었다. 1934년, 미국의 말콤 맥린(Malcom McLean)은 ‘맥린트럭 운송회사’를 설립하고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그의 성공 비결은 치밀하고 철저한 비용 절감이었다. 그는 가장 효율적인 화물 수송방법을 연구해 트럭 운송 현장에 적용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도 시대의 흐름 앞에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1950년대로 접어들자 도로 위에 차량이 크게 늘었고 고속도로 정체가 수익성을 악화시켰다.

고민 끝에 맥린은 정체된 고속도로에서 시달리는 것보다 아예 선박에 트럭 트레일러를 실은 뒤 다른 해안의 부두로 보내버리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선적 작업 시 트럭들이 바로 접근해 짐을 실을 수 있는 획기적인 시스템이었다. 당시 미국의 법률은 트럭과 배를 구분했고, 두 영역은 완벽히 분리되어 있었다. 해운사, 철도회사, 트럭회사 등은 모두 자신들의 이권을 지키는 데만 관심이 있었다. 하지만 맥린은 각 영역을 ‘화물’이라는 관점으로 통합시켰다. 그는 누가 가장 큰 배를 가지고 있는지, 누가 가장 넓은 철도망을 가지고 있는지 전혀 관심이 없었다. 오직 자신의 화물이 안전하게 제 시각에 도착하는 데만 관심을 둘 뿐이었다.

1950년대의 전통적인 물류 시스템에서 트럭 운송회사가 자사의 선박을 활용해 목적지 해안으로 간다는 발상은 그야말로 혁신적인 것이었다. 마침내 1956년 58대의 트럭이 컨테이너 박스에 화물을 가득 싣고 뉴저지 주 뉴어크에 정박해 있는 유조선 아이디얼X호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 유조선은 5일 뒤 휴스턴으로 떠났다. 컨테이너 운송의 대혁명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가장 효율적인 운송 시스템으로 진화하다.


이후 컨테이너 시스템은 보다 많은 짐을 효율적으로 옮기기 위해 진화를 거듭했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배 안에서 컨테이너가 움직이지 않도록 단단히 고정하는 것이었다. 이에 맥린사에서는 새로운 트레일러 섀시를 만들었는데, 이것은 컨테이너를 가뒀다가 내보내는 작업을 훨씬 수월하게 만들었다. 컨테이너의 모습도 점차 달라졌다. 컨테이너를 쌓을 경우에 대비하여 각 모퉁이에는 강철 가로대를 입혔고, 특별한 잠금장치도 추가했다.

아울러 맥린사는 컨테이너를 배에 옮겨 싣는 전용 기중기도 개발했다. 기존의 선적용 기중기로는 18톤의 무게에 길이 10미터가 넘는 컨테이너를 도저히 들어 올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맥린사는 선박의 거의 모든 곳에 닿을 수 있는 거대한 기중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1959년 세계 최초의 컨테이너 전용 기중기를 가동시켰다. 이 기중기는 단 3분 만에 20톤짜리 박스 1개를 배에 실을 수 있었다. 하역 인부들이 작업할 때보다 생산력은 30배 이상 높아졌다.

한편 동시대의 맷슨이라는 해운회사는 가장 효율적인 컨테이너의 크기를 고민했다. 컨테이너가 너무 크면 빈 공간이 늘어났고, 반대로 너무 작으면 컨테이너를 싣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맷슨사는 배가 출발하는 시간, 각 화물선의 선적 용량, 갑판과 기중기의 사용현황 등 수많은 조건으로 실험을 진행하여 가장 경제적인 운송방법을 찾아나갔다. 이러한 맷슨사의 노력은 훗날 컨테이너 규격의 표준화로 이어졌다.



표준화로 완성된 컨테이너 시스템

 

컨테이너는 1950년대 말 모든 운송업계를 뒤흔들었다. 컨테이너의 압도적인 경제성이 알려지면서 트럭, 기차, 선박 등 모든 교통수단들이 컨테이너를 운반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컨테이너의 종류도 다양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의 한 제조업체는 무려 30종류 이상의 컨테이너 모델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다양성이야말로 컨테이너 산업의 발전을 가로막았다. 컨테이너의 모양과 크기가 균일하지 않으면 효율적으로 선적할 수 없었고, 화물운송비의 절감도 더 이상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문제를 인식한 미국 정부는 1958년 컨테이너의 규격 등을 정리하기로 결정했다. 모든 산업이 그렇듯 컨테이너 분야에서도 ‘표준화’가 이뤄지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이 작업은 여러 업체들의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다. 긴 논의 끝에 1965년 국제표준화기구(ISO)에서는 미국의 맞춤장치 디자인을 국제표준으로 공식 지정했다. 이후 사이즈, 규격 등 컨테이너 박스의 표준화가 순차적으로 이루어졌다.

컨테이너 박스는 20세기 화물운송의 혁명이었다. 컨테이너 자체가 획기적인 발명품은 아니었다. 그것은 그저 강철판을 용접해서 만든 거대한 박스에 불과했다. 하지만 컨테이너 박스를 활용한 자동화된 운송시스템은 복잡한 수송과정을 단순화시키면서 세계경제의 흐름을 바꿔놓았다. 컨테이너 시스템은 운송비를 절감시켰을 뿐만 아니라 원하는 시간에 화물을 운반할 수 있도록 하여 기업들의 재고 부담을 덜어 주었다. 나아가 전 세계의 경제 구조를 바꾸고 대규모 무역의 시대를 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강철 상자는 5대양 6대주를 이동하면서 세계경제를 움직이고 있다.

 

 

 

컨테이너 박스를 활용한 자동화된 운송시스템은 복잡한 수송과정을 단순화시키면서 세계경제의 흐름을 바꿔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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