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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본삼국지 2>

18. 조조의 무덤이자 제갈량의 천적이 된 사마의 (마지막 회)

by BOOKCAST 2022.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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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면 더 재미있어]
 
조조가 승상이 되어 3공의 자리를 없애고 스스로 그 일을 겸한 것은 후한의 정치 판도를 바꾼 중요한 변혁이었다. 전한 초기에는 상국(승상)이 정사를 도맡았는데, 이후의 황제들은 그 권력이 너무 커지는 것이 두려워 3공을 두어 힘을 나누었다. 조조는 실권을 잡자 그 벼슬을 없애 권력을 한 손에 거머쥐고, 승상부를 만들어 조정의 정사를 자신의 거처에서 다루게 되었다.

그런데 그의 위세가 유례없이 강해지자마자 벌써 그의 무덤을 팔 사람이 나타났으니, 바로 사마의(179~251년)다. 사마의는 뒷날 제갈량의 최대 적수로도 활약하는데, 원작에는 소개가 너무 간단하다.


사마의의 혈통은 조조보다 훨씬 고귀해 대대로 벼슬을 한 가문으로, 그 일가는 여러모로 조조와 인연이 깊었다. 젊은 시절 조조가 낙양북부위를 했는데, 이 벼슬을 하도록 추천한 사람이 바로 사마의의 아버지 사마방이었다. 그때 조조는 낙양 현령을 하고 싶었으나 상서우승이던 사마방이 현령 아래의 북부위로 추천하고, 상서 양곡이 그대로 임명했다. 그래서 몇십 년이 지나서도 조조는 사마방과 양곡에게 불만이 있었다.

위왕이 된 뒤 조조가 특별히 사마방을 업성으로 불러 즐겁게 술을 마시다가 농담 삼아 말했다.
오늘 내가 다시 위() 노릇을 할 만하겠소?”

그동안 장안을 다스리는 경조윤 같은 벼슬을 한 사마방이 재치 있게 대답했다.
옛날에 대왕을 추천할 때는 위 노릇을 할 만했습니다.”

조조는 껄껄 웃었다. 재치로 조조를 웃겼으나 사마방은 평소 대단히 엄숙해 아들 여덟 형제가 성인이 되어서도 아버지가 부르지 않으면 감히 가까이 가지 못하고, 앉으라는 말이 떨어지기 전에는 앉지 못했으며, 아버지가 손가락질하면서 묻지 않으면 절대 말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여덟 형제 가운데 사마의는 둘째고 맏이는 사마랑이다. 사마랑은 아홉 살 때 누가 자기 아버지의 자를 부르자 날카롭게 되받았다.
남의 어버이를 업신여기는 사람은 제 어버이를 존경하지 않는 자입니다.”

사마랑은 22세 때 조조의 부름을 받아 그 아래에 들어가 여러 현의 현령을 하면서 너그러운 정치로 백성의 존경을 받고, 다시 승상부의 주부가 되었다. 사마랑이 그처럼 대단한 인재였으나 그와 가까운 사이이자 사람 보는 안목으로 소문난 최염은 오히려 사마의를 더 칭찬했다.
그대 동생은 총명하고 공정하며, 강직하고 결단력이 있어 그대가 미칠 바가 아니오.”

진서 <사마의전> 의하면 사마의는 똑똑하고 박식해 젊은 시절 한나라의 운이 기울어졌음을 알았으나 조조를 섬기기 싫어 그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풍에 걸렸다는 핑계를 대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척했는데, 조조가 밤에 사람을 보내 습격했으나 누워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조조가 승상이 된 후 문학연으로 쓰려고 그를 부르면서 사자에게 일렀다.
또 핑계를 대면 묶어서 잡아 오너라.”

이렇게 해서 30세의 늦은 나이로 조조 밑에 들어가 그 집단의 가장 이름난 인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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