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기계발/<엄마의 첫 SNS>

01. 엄마, N잡러가 되다.

by BOOKCAST 2022. 5. 10.
반응형

 


 

나는 아이 셋을 키우는 10년차 전업주부다. 뱃속에 생명이 들어설 때마다 사회와 한 걸음씩 멀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남편이 “나 오늘 회식이야”라든지 “야근해야 해. 일이 너무 많아”라고 할 때마다 불편한 감정이 생겼다. 처음엔 혼자 아이를 봐야 하는 고단함 때문인 줄 알았다. 차라리 그랬다면 덜 부끄러웠을지 모른다. 불편함의 정체는 사실, 질투였다. 자신의 업무에서 인정받고 있는 남편에 대한 부러움이었다.

나도 생산적이고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명을 키우는 위대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때때로 마주하는 초라함을 숨기기가 힘들었다. 독서지도사, 보육교사, 유치원 정교사 등 어떻게든 경력 단절을 극복하고 사회로 복귀하는 날을 꿈꾸며 자격증 공부를 했다.

진짜 일을 하려고 했던 건지, 공부를 할 때만큼은 불안함을 감출 수 있어서였던 건지, 아마도 둘 다 이유였겠지만 밤을 새워 공부하고 시험을 보며 위안으로 삼았다. 그랬던 내가 불과 몇 년도 지나지 않아 여러 개의 일을 하며 소소한 수익까지 얻고 있는, 흔히 말하는 N잡러가 되었다.

작가, 강연가, 독서와 글쓰기 등 각종 모임 리더에, 모임을 홍보하고 모객하는 업무까지 수많은 일을 하고 있다. 본업이었던,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도 놓치지 않았다. 대충 세어 봐도 대여섯 가지의 사회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나.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아닌데, 하나둘 쌓여 가는 프로젝트들은 어느새 나의 고정 수입이 되었다. 어느 틈에 나에게 ‘업’이 생긴 것이다.

‘그럼 소는 누가 키우나?’ 이 옛 유행어처럼, 초라함을 느끼면서도 선뜻 사회 활동을 시작하지 못했던 건 아이들 때문이었다. 아이를 맡아 줄 사람도 없었거니와, 아이를 맡길 마음도 없었던 고집불통 엄마. 마치 나의 모든 생산성을 아이 키우는 것에 올인 한 듯 자발적으로 ‘소를 키우는’ 엄마가 나였다.

그럼 지금은 아이들을 어딘가에 맡기고 있을까? 아니다. 여전히 아이들은 내가 키우고 있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대부분의 나의 일은 아이들이 학교와 어린이집에 가는 시간에 온라인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덮치면서 직장에 다니던 사람들도 일주일에 며칠씩 혹은 격일로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다. ‘집에서는 도저히 일을 할 수 없어. 애들이 한시도 나를 가만두지 않는다고!’ 재택근무를 시작한 주변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내저었다. 나도 그즈음 한 권의 책을 썼다. 6개월 동안 세 아이와 24시간을 붙어 있던 집에서 말이다. 책의 핵심 메시지는 ‘1미터 육아’였다. 엄마와 아이 사이의 1미터, 즉 한 집에 있어도 서로의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코로나19를 염두에 두고 쓴 것은 아니었다. 이미 그전부터 쓰고 있던 원고였다. 전업 맘으로 세 아이를 키우면서 깨달은 ‘건강한 거리 두기 육아’에 대한 생각을 풀어낸 육아 에세이였다. 나는 그 책에서 이야기한 대로 여전히 아이들과 함께 있지만, 나의 일을 한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없는 것처럼, 서로의 경계를 지켜 주는 것이 아이와 나 사이의 암묵적인 룰이다. 아이들이 놀 때 나도 웬만하면 끼어들지 않고, 아이들도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에 굳이 엄마를 부르지 않는다. 그래서 집에서도 충분히 일을 할 수 있다.

물론 ‘N잡러 엄마’ 타이틀의 숨은 공로자는 남편이다. 가끔 설거지가 산처럼 쌓여 있어도, 정리하지 않은 세탁물이 넘쳐나도, 때때로 주말에 홀로 세 아이를 봐야 해도 아내를 자랑스럽게 봐 주는 남편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여전히 “옵빠~”라고 부르면 대부분 고개를 끄덕여 주는 남편 덕에 나는 수많은 일을 도전하고, 해내고 있다. 가족의 지지와 동의하에 시작된 ‘엄마의 일’은 차근차근 그 범위를 넓혀 가고 있다.

집에서 아이만 키우던 엄마는 어떻게 경력 단절을 극복하고 일을 시작할 수 있었을까? 아이를 키우면서 어떻게 그렇게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었을까? 그 답은 모두 ‘SNS’에 있었다. 블로그에 기록하면서부터 일상은 책이 되었고, 취미 생활은 업(業)이 되었으며, 생각은 강연이 되었다.

가정주부라는 단어에 매몰되지 않고 나를 지키기 위해 시작했던 ‘기록 습관’은 새로운 엄마의 경력을 만들었다. 나라는 사람의 필터가 곧 돈이 되었다. 여러 사이드 프로젝트로 얻은 적은 수입을 꼬박꼬박 모아 놓은 통장은 어느새 천만 원이 되어 간다.

물론 나는 꼭 돈을 목적으로 SNS 활동을 하라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그래 봐야 지금 내 수익은 직장 일에 비하면 턱없이 소소하다.

하지만 전업주부, 경력 단절 같은, 어감도 별로인 수식어 뒤에 있던 나라는 존재가 ‘좋아하는 일’로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면서 생산성을 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돈은 +a처럼 따라올 뿐이다.

온라인에 기록을 하는 것만으로도 이런 일이 가능하다고? 나의 경우 그렇다. 평범한 10년차 전업주부가 N잡러의 삶을 살게 된 것은 딱 하나, SNS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비록 초라하지만 말하는 대로 꿈꾸는 대로 이루어지는 삶을 살아가는 과정을 적어 보겠다며 블로그를 시작했다. 물론 의욕만 넘쳐 꾸미기만 하다가 지치기도 했고, 몇 번 허세 가득한 글을 쓰다가 한동안 접속조차 하지 않았던 때도 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것은 ‘키친 테이블 노블’이라는 카테고리다. 김애리 작가의 여자에게 공부가 필요할 때라는 책을 읽고, 나도 늦은 밤 식탁 위에서 소설을 쓰는 기분으로 블로그를 쓰겠다며 카테고리를 만들었다. 분명 김애리 작가는 책에서 공부를 하라는 메시지를 줬는데, 나는 ‘키친 테이블 노블’이라는, 있어 보이는 명칭에만 꽂혔다. ‘나 책 좀 읽었다’ 느낌 가득한 카테고리에는 단 두 개의 글만 올리고 몇 년 동안 방치했다.

그럼에도 다시 시작했다. 멈추고 멈췄지만 또 시작했다. 세 아이 엄마인 나의 이야기를 블로그에, 인스타그램에 하나씩 꺼내 놓았다. 서툴지만 즐거운 취미 생활을 기록했고, 틈틈이 읽은 책에 대해 약간의 감상이라도 끼적였으며, 불안하거나 두려운 날들의 마음을 털어놓았고, 조금이라도 변화해 보고자 시도했던 습관을 남겼다. 그저 꿈틀거림이랄까, 뭐 하나 대단한 게 아니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느 분야에 관심이 있는지, 어떤 강점이 있는지 지속적으로 기록하면 알 수 있다. 그것은 내가 모르고 있던 나를 들여다보는 계기가 된다.

내가 그랬다. 누구나 세상에 ‘나의 기록’을 할 필요가 있지만, 특히 누구보다 사회적으로 고립되었다고 느끼는 엄마들이, 지금 당장 일을 시작하지 못하는 환경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 SNS를 하면 좋겠다.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많더라도, 해야만 하는 이유를 찾았으면 좋겠다.

그때마다 대답한다.
“나도 알아! 그런데 그게 무슨 상관이야? 나만 좋으면 됐지!”

관종이어서가 아니라, 나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만족이다. 중심은 나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