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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푸른빛의 위대한 도약: 우주>

02. 푸른빛의 위대한 도약

by BOOKCAST 2022.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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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는 푸른빛이었다.”

이 말은 인류 최초로 우주로 나간 가가린이 우주에서 지구를 본 뒤에 한 말이다.

인공위성 분야에 이어 유인 우주탐사 분야에서도 미국은 구소련에 주도권을 빼앗기고 있었다. 이렇게 우주에서 구소련에 주도권을 빼앗긴 미국은 방향을 달로 돌렸다. 인류 최초의 달 착륙을 목표로 한 것이었다. 미국과 구소련은 모두 인간의 달 착륙을 목표로 온갖 노력을 했으나 꿈을 현실로 만드는 과정은 험난했고 모든 도전이 그렇듯이 처음에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1970년이 되기 전에 인간을 달에 보내겠다던 미국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말대로 1969년 7월 20일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했다. 아폴로 11호는 아폴로 계획의 다섯 번째 유인 우주 비행인 동시에 세 번째 유인 달 탐사이기도 했다. 아폴로 계획은 1961년부터 1972년까지 시행된, NASA의 유인 우주탐사 계획이다. 아폴로 계획의 목표는 인간을 달에 착륙시킨 후 무사히 지구로 귀환시키는 것이었다. 아폴로 11호에는 세 명의 우주인 닐 암스트롱, 마이클 콜린스, 버즈 올드린 타고 있었다.

2021년, 아폴로 11호의 사령선 조종사였던 마이클 콜린스가 암 투병 끝에 90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콜린스는 역사적인 아폴로 11호 임무에 동참했지만 달 지표면에 내린 암스트롱과 올드린만큼 세간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에게는 ‘잊힌 우주비행사’,‘ 기억되지 않는 세 번째 우주인’이라는 수식어가 달리곤 했다. 사령선에 타고 있던 콜린스는 암스트롱과 올드린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 21시간 넘게 사령선에 홀로 머무르면서 동료들의 임무를 도왔다. 그는 동료들이 달에 성조기를 꽂는 순간을 지켜보지는 못했지만, 인류 최초로 달의 뒷면을 관측한 사람이었다. 생전에 그는 아폴로 11호 임무에서 가장 강렬했던 기억으로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본 것을 꼽았다.

인류 최초의 우주인 유리 가가린과 그가 탔던 보스토크 1호 우주선. ⓒ위키피디아

 

“(지구가) 부서지기 쉬운 것 같았다. 세계의 정치 지도자들이 지구에서 10만 마일 떨어진 거리에서 그들의 행성을 볼 수 있다면, 그들의 관점은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다고 믿는다.” 이렇게 말한 그는 “우주탐사는 선택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라고 역설했다.

“한 인간에게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

이 말은 닐 암스트롱이 달 표면에 첫발을 디디고 한 말이다. 사실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성공은 지금까지 많은 사람이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의 척박한 우주기술로 어떻게 달에 사람을 보낼 수 있었는지 의심하기 때문이다. 현대 기술로도 우주에 사람을 보내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러나 힘들고 어려운 기술이라고 해도 목표가 분명하고 인적·물적 지원만 충분하다면 주어진 기한 안에 개발하는 것은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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