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기지 않을 용기, 우아하고 당당하게
우린 아름다웠고 아름답고 더 아름다워질 것이다
코로나가 뭔지도 몰랐던 2018년 가을, 일상에 지친 친구와 나는 둘이서 훌쩍 세부로 떠났다. 거기서 만난 38살 미영 씨는 대담하게도 혼자 여행을 왔다고 했다. 여행 첫날 밤, 저녁을 먹고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모래사장 위에 앉아 깔깔거리며 밤공기에 취해갈 때쯤, 미영 씨는 또르르 눈물을 흘렸다.
“언니, 저 38살인데 조기 폐경이래요. 인생이 왜 이런지 몰라요. 열심히 일만 하고 살았는데…. 5년 동안 사귄 남자 친구랑 이 일로 헤어졌어요. 앞으론 결혼 안 하고 혼자 살 거예요.”
딱했다.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렇게 처음 보는 사람과 마음의 바닥을 나누고 우린 헤어졌다. 내 나이 45살 이른 폐경이 왔다. 하염없이 바닥으로 추락하던 날 문득 미영 씨가 떠올랐고 그녀 위로 내가 겹쳐 보였다. 그동안 남편과 아이들만 생각하며 살았다. 누구보다 아이들을 잘 키우고 싶었고,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며 살았기에 나 자신을 돌볼 시간 따위는 없었다. 이른 폐경은 앞으로 여자로는 살 수 없을 거란 두려움과 상실감을 주었고, 혹시나 누가 그 사실을 알까 봐 숨기기에만 급급했다. 내 몸을 돌보지 않았던 탓에 갱년기 증상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고, 마음마저 만신창이가 되었다.
그러던 중 찾아온 코로나는 나를 더 우울하게 만들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건강 검진에서 발견된 유방의 종양이 유방암일 수도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조직 검사 후 결과를 기다리던 암흑 같은 일주일. 혼자 방에 틀어박혀 시름시름 앓고 있던 날 위해 자매들이 나섰다. “금서야, 우리 제주도 가자. 가서 좋은 것도 보고 사진도 찍고 맛있는 것도 먹으며 기분 전환하고 오자. 너 이렇게 우울하게 있는 거 보니까 우리도 같이 속상해.” 그렇게 네 자매는 제주도로 떠났다. 갑갑한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었고, 행복한 여행이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길에 이름 모를 확진자와 같은 비행기를 타버렸고, ‘밀접 접촉자’가 되어 자가 격리자 신세가 되었다. 세상은 나를 2평짜리 방으로 14일 동안 강제 감금시켜버렸다.
첫 일주일은 하루가 1년 같이 느껴지는 감옥 생활이었다. 방에 갇혀서 주는 밥만 먹으며 온종일 천장을 바라보며 내 인생을 한탄했다. 모든 생활은 마비되었고, 2주 동안 나의 모습은 독 안에 든 쥐나 다름없었다. 전화기만 붙들고 신세 한탄만 하던 내게 여동생은 이렇게 말했다.
“언니야, <슬기로운 감빵 생활>이란 드라마 봐봐. 재밌어서 시간 가는지 모를 거야.”
TV 보는 걸 딱히 좋아하지 않았지만 할 일도 없었고 시간이 빨리 간다는 말에 리모컨을 들었다. 드라마는 ‘감옥 같은 격리 기간’을 ‘슬기로운 격리 기간’으로 바꿔주었다. 잘나가는 월드 스타였던 주인공은 성폭행당하는 동생을 구하려다 억울하게 감옥살이하게 된다. 온갖 시련이 감방에서 일어났지만 굴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를 보며 세상은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마음을 바꿔 먹는 순간, 14년 같던 격리 기간이 오히려 부족하게 느껴졌다. 바쁘게만 살았던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주어졌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이 생겨났다. 평소 연락을 잘 하지 않던 아빠에게 안부 전화를 드릴 수 있는 여유가 생겼고, 날 위해 맛있는 요리를 했다. 하고 싶었던 공부, 읽고 싶었던 책을 읽었고, 미뤘던 잠도 실컷 잤다. 나라에서 주는 자가 격리 지원금을 휴가 보너스라 생각하며 공식적인 휴가를 선포했다. 14일의 격리 기간은 7일간의 감옥 생활과 7일간의 호텔 생활이었다. 환경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지만 마음먹기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졌다.
마음이 바뀌니 갱년기가 달리 보였다. 마냥 힘들다며 우울해할 필요가 없었다. 갱년기는 인생 전반을 열심히 달려온 날 위한 재충전의 시간이다. 내 몸에 부족했던 에너지를 가득 채우고, 내 몸을 점검하며 인생 후반을 위해 필요한 준비를 할 수 있다. 나처럼 힘든 갱년기를 겪는 세상 모든 여성과 이 터닝 포인트를 공유하고 싶었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던 속 이야기를 시원하게 털어내고 싶었다.
내가 먼저 갱년기의 고충을 털어놓자 주위의 언니, 동생 할 것 없이 자신들의 갱년기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인터뷰를 했다. 많은 여성이 갱년기를 겪으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다들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한 채 혼자 끙끙 앓고 있었다. 갱년기를 향한 부정적인 시선을 바꾸고 싶었다. 갱년기는 더 이상 두려워할 일이 아니다. 사춘기를 맞이하듯 시간이 흘러 자연스럽게 갱년기를 맞이한 것뿐이다. 나와 그녀들이 자신의 갱년기를 어떻게 마주하고 있는지 기록하며, 그 기간의 우여곡절을 책에 담았다.
첫 생리를 축하해 주는 것처럼 생리가 끝나는 완경도 새 인생의 출발로 축하해 주자. 이제는 뜨겁게 나를 사랑할 시간이다. 갱년기를 함께 극복하고자 럽마셀(Love Myself) 독서 모임을 만들었다. 아직도 갱년기 앞에 움츠러드는 나 자신을 일으켜 세우고, 갱년기 여성들의 성장을 돕는 리더로 새롭게 시작하고자 이 책을 쓴다. 갱년기 여성들이 행복을 찾고 리셋 되어가는 과정에 함께하고 싶다. 누구나 겪게 되는 갱년기 이젠 숨기지 않겠다. 당당하게 갱년기의 친구가 되어 오늘을 잘 이겨내는 방법을 알려줄 것이다. 성격 급한 당신이라면 2장을 먼저 읽어도 좋을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여자와 똘똘 뭉쳐 우아하고 아름답게 우리의 인생 후반기를 준비할 수 있길 바란다. 무엇보다 당신이 혼자라는 생각을 하지 않길 바란다. 우리는 아름다웠고 아름답고 더 아름다워질 것이다.
저자 l 윤금서
20년 동안 내 아이들의 꿈을 응원하는 엄마로, 그리고 학생들의 꿈을 응원하는 선생님으로 살면서 작가를 꿈꿨다. 불혹의 나이를 훌쩍 넘은 이제야 스무 살의 나의 꿈에 도전을 한다. ‘나비의 미세한 날개짓 한번이 지구 반대편에선 태풍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한다. 부족하지만 진정성 있는 글이 지닌 힘을 믿으며 나와 주변 여성들의 이야기로 많은 사람에게 위로와 응원을 건네려 한다.
- 한국 여성 리더 연구소, 갱년기 여성의 성장을 돕는 리더
- MKYU 514챌린지 ‘갱년기 여자 리셋’ 미니 챌린지 리더
- 거버넌스 시민문화 썰방 ‘갱년기 여자 리셋’ 진행
- 갱년기 여성의 휴식처 ‘따숨이네’ 운영 예정
- 4050 Love Myself 독서 모임 리더
- ‘뜨신 편지’ 따숨 대표
- 경남대 교육대학원 평생교육 석사
[연재 목차]
01. 설마 했던 일이 일어났다.
02. 마음 리셋 : 똥 빼기 한번 해보실래요?
03. 습관 리셋 : 미모가 좀 되는 여자
04. 건강 리셋 : 사막에서 살아남는 방법?
05. 쉼 리셋 :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
06. 지혜 리셋 : 아는 만큼 행복에 가까워진다.
07. 관계 리셋 : 봄날을 선물 받다.
08. 생각 리셋 : 슬기로운 격리 생활
09. 봉사 리셋 : 봉사하다 빛을 본 사람
10. 마치며 : 갱년기 여성의 행복을 찾아주는 리더로 다시 태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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