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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여자 리셋>

01. 설마 했던 일이 일어났다.

by BOOKCAST 2022. 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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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여자가 생리를 반가워할까? 월요일에 생리가 터지면 ‘샐리의 법칙’ 같았고, 금요일에 터지면 ‘머피의 법칙’처럼 한 주 내내 나의 삭신을 아프게 했던 불청객이 서서히 보이지 않더니 3개월째 찾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양이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꼬박꼬박 나를 귀찮게 했었는데 갑자기 서운한 마음도 들었다. ‘하늘을 보지 않았으니 별을 딴 것’도 아닌데…. 다소 신경은 쓰였지만, 몸이 편하니 한두 달은 일부러 모르는 체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불안과 걱정이 쌓였다. 무슨 문제가 생긴 걸까? 이참에 자궁암 검사도 받아야겠다 싶어 산부인과를 찾았다. 의사 선생님은 자궁 내막도 얇은 편이고, 폐경에 가까운 것 같다고 호르몬 검사를 한번 해보자고 하셨다.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선생님이 말한 ‘폐경’이라는 단어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에이~, 설마 말도 안 돼! 내 나이가 몇인데 벌써 폐경이라니, 나 아직 40대 초반이야.’ 한 번도 폐경을 상상해 본 적 없었다. 나이 50이 넘어서 오는 게 폐경이 아니던가? 40대 초반에 폐경이라니 당치도 않았다. 이런 이야기는 들어본 적도 없기에 아닐 거라고 확신했다. 결과를 위한 예약을 일주일 뒤로 잡고 집으로 털레털레 돌아왔다. 7일이 마치 7년 같았다. 이유 없이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혹시나 하고 ‘홍 양’을 기다렸지만, 그녀는 끝내 나를 외면했다.

결과를 보러 병원에 가던 날, 옷매무새를 확인하고 집을 나서려는데 그날따라 유독 초라해 보이는 내가 거울 속에 있었다. 화장품을 다시 꺼내 들고 팩트를 덧발라도 소용이 없었다. 친구가 선물해 준 빨간 립스틱을 발라볼까 잠시 고민했지만, 어디에다 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급격하게 수척해진 얼굴을 하고 다시 의사 선생님을 만났다.

“호르몬 수치상 폐경이 맞는 것 같습니다. 짧게는 석 달, 길게는 1~2년 사이에 폐경이 될 것 같습니다.”

번개를 맞은 것 같았다. 이렇게 빨리 폐경이 된다니 실감이 나질 않았다. 아니길 바라는 일은 어김없이 당연한 일처럼 일어났다.

“폐경 후엔 골다공증이 올 수 있습니다. 멸치를 많이 드시고, 걷기 운동 많이 하셔야 합니다.”

의사 선생님의 말씀은 귀에서 심장으로 내려가 콕콕 가슴을 찔러댔고 순식간에 온몸으로 퍼졌고 눈으로 올라가더니 결국 터져버렸다. ‘내가 여자로서 벌써 끝이라고?’ 억울했다. 폐경은 여성성의 상실을 의미했고, ‘내 몸이 급속히 늙어 가겠구나!’ 싶었다. 50이 넘어도 폐경 소식 없는 언니들도 많은데 40대에 이런 걸 먼저 겪다니 암담했다. 아직도 꿈 많은 소녀 같은데, 예쁘고 사랑받고 싶은 여자인데 벌써 폐경이라니 믿고 싶지 않았다. 아직 생리가 완전히 끝난 건 아니니까 뭔가 방법이 있지 않겠냐고 의사 선생님께 여쭸지만 호르몬 주사는 권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서둘러 전화를 걸어 폐경을 먼저 겪은 주위 언니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석류, 칡, 달맞이 등 언니들은 에스트로겐 성분이 들어있는 식품을 섭취하면 다시 생리를 하기도 한다고 했다. 그길로 바로 석류즙, 칡즙을 왕창 주문했다. 보조 식품을 열심히 섭취하고 한 달쯤 지났을까 싶었는데 신기하게 생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너무도 정상적으로 생리가 나왔다.

‘그래, 내가 무슨 폐경이야? 그땐 잠깐 호르몬에 문제가 있었던 걸 거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건강 보조 식품을 끊자 다시 생리는 끊어졌다. 두 달이 지나도 여전히 생리는 나올 기미가 안 보였다. 병원에서는 나의 지병 때문에 호르몬 주사는 맞으면 안 되고, 콜라겐이나 건강 보조 식품도 많이 먹으면 안 된다고 했다.

호르몬이 이겼다. 패잔병의 마음으로 ‘폐경’을 받아들여야 했다. 더 이상 아니라고 혼자 발버둥 쳐도 소용없었다. 아무에게도 말하고 싶지도, 집 밖으로 나가고 싶지도 않았다. 지하로 몸이 꺼지는 듯 무기력해지고, 삶의 의욕은 한순간 다 사라졌다. 빛줄기 하나 들어오지 않는 컴컴한 독방에 나를 가둬버렸다.

얼마 안가 이대로 넋 놓고 있으면 정말 할머니가 될 것 같아 온라인 서점에서 갱년기 관련 책들을 구입해서 읽기 시작했다. 읽으며 읽을수록 폐경을 여성성의 상실과 노화의 시작으로 여겼던 잘못된 생각들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갱년기는 인생 전반을 열심히 달려온 나에게 후반의 재도약을 위해 잠시 휴식을 취하라는 시그널이었다. 전반전을 열심히 뛰었으니, 재정비의 시간이 필요한 건 당연하다. 인생 전반에는 아내와 엄마로서 삶이었다면, 인생 후반에는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가라고 나에게 좀 더 일찍 찾아온 것뿐이었다.

열심히 살아온 금서야!
이제 좀 멈춰!
잠시 쉬어가자!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해!
더 높게 더 멀리뛰기 위해선 잠시 움츠려도 돼!
이제부터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너야! 새로운 꿈을 꾸고 도약하자!
그래도 괜찮아.

내 몸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아마 예전에도 쉬지 않고 그렇게 메시지를 보냈을 테다. 주인이 말을 들어 먹질 않으니 통증으로 좀 더 강력한 시그널을 보내는 거였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지만 받아들이는 수밖에 별다른 방법이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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