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기 덕분에 병원과 부쩍 친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수업을 빼야 하는 날이면 이런 사정을 얘기하며 죄송한 마음에 학부모님께 전화를 드려야 했다. 그럴 때마다 아무 걱정 하지 말라며, 애 수업은 며칠 빠져도 괜찮으니까 선생님 건강부터 챙기시라며 다 괜찮아질 거라고 응원해 주시는 학부모님이 계셨다. 며칠 몸을 추스르고 다시 수업을 시작하는 첫날 그 학부모님은 시집 한 권을 선물해 주셨다. 류시화 시인의 『마음 챙김의 시』였다. 책표지 앞에 ‘선생님 힘내세요. 다 좋아질 거예요. 화이팅!’이라는 글귀가 노란 포스트 지에 쓰여 있었다. 마음이 울컥했다. 시 한 편 한편이 나에겐 위로였고 감동이었다.
둘째 언니와 대학원 선배 언니에게 같은 시집을 선물했다. 그들에게도 내가 겪은 따스한 위로가 전해지길 바랐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책을 통해 위로받고, 위로를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책을 읽기 시작했다. 갱년기로 시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눈도 너무 건조해져 책을 읽는 게 많이 힘들었다. 안 읽던 책을 읽으려니 집중력은 부족했고, 속도도 느렸다. 더 큰 문제는 며칠 읽다 보면 앞부분이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앞으로 돌아가 다시 읽으면 한 번도 본 적 없는 책처럼 생소했다. 건망증일까? 기억력 감퇴라는 또 다른 시련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민 끝에 오디오북을 검색했다. 읽는 것에 비해 듣는 책은 감동이 작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줄긴 했지만, 눈의 건조증이 심하고, 노안으로 돋보기를 쓰고 장시간 책을 보는 게 쉽지 않았는데 오디오북은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 차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이나, 집안일을 할 때 자투리 시간의 활용으로 듣는 독서는 가성비가 좋아서 컨디션에 따라 병행하기로 했다.
김미경의 ‘북 드라마’를 통해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선정했다. 책의 내용을 간략히 요약해 주고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김미경의 책 이야기를 들으며, 책을 읽고 누군가와 생각을 나눌 수 있다면 좋겠다 싶었다. YWCA 인문학 독서 모임이 생각났다. 같은 책을 읽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듣는다는 것은 정말 흥분되고 좋았다. 하지만 내 생각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해야 하는 건 심장 떨리는 일이었고 피하고 싶기도 했다. 20년 넘게 아이들을 가르쳐왔지만. 모르는 사람 앞에서 말을 하려면 심장은 내려앉고, 목소리는 벌벌 떨리며 말은 속사포처럼 빨라졌다. 남의 이야기를 듣는 건 너무 행복한 일인데 발표할 생각만 하면 걱정이 앞섰다. 긴장을 하면 말의 두서가 사라지고, 횡설수설해지면서, 중요한 내용은 삼천포로 빠져버리니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치유의 글쓰기를 하는 동안 똥 작가님이 ‘우아한 금요일의 독서 모임’에 초대해 주셨다.
“책 안 읽고 오셔도 되니까 그냥 편안한 맘으로 한번 참석해 보세요!”
똥 작가님을 믿고 독서 모임에 참석했다. 낯선 환경과 사람들 속에서 많이 긴장되고 어색했지만, 너무도 따뜻하게 나를 맞아주시는 회원들 덕분에 이야기를 편안하게 할 수 있었다. 행복해 보이는 그분들의 긍정에너지와 자기 사랑은 숨어있던 에너지를 깨워주기에 충분했다. 독서 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나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다음 책이 궁금해졌다. ‘2주에 책 한 권을 어떻게 읽지?’ 걱정했던 내가 빨리 다음 책을 읽고 싶은 마음에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하자마자 인터넷으로 책을 주문하고 있었다. 그렇게 인연이 된 ‘우·금·독’은 나의 힐링이고, 행복이었다. 책을 읽는 즐거움에 좋은 사람들과의 행복한 시간을 보너스로 받은 느낌이었다. 독서와 그리고 좋은 사람들과의 소통을 통해 나는 서서히 변화되고 있었다. 생각이 성장하고, 마음의 여유를 찾고, 행복한 에너지 속에서 밝아지고 맑아지고 있었다.
‘책을 읽는다고 뭐가 변해?’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책은 나를 성장시키고, 잃어버린 나의 꿈을 찾아주며, 무한한 긍정에너지를 안겨주었다는 것이다. 한 권의 작은 시집은 힘든 시절, 날 온전히 위로해 주었다. 따뜻함으로 다가왔던 책들은 나를 설레게 하고 변화시켰다. 무엇보다 책을 읽는 동안 혼자라는 외로움을 잊어버릴 수 있었고, 책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었다. 고인돌 무덤을 처음 봤을 때가 기억난다. 산과 들에 널려있는 바위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알고 나니 감탄이 절로 나온다. 눈을 뗄 수가 없다. 바위는 그냥 돌이 아니었다. 숨어있는 문화유산을 찾으며 조상들의 지혜와 역사를 만나는 설렘이 가능했던 이유는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로 다 설명되었다. 어쩜 우리의 행복도 아는 만큼, 찾는 만큼 커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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