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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책추천41

06. 선생도 아이가 있다면 알겠지만, 그 애만 괜찮으면 난 아무런 걱정이 없어요. “개인 상담을 할 수는 있습니다.” 에릭은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말했다. 사실 새 환자가 필요하지는 않았다. “맥스가 원한다면 시간을 내보지요.” “정말요?” 티크너 부인의 쌍꺼풀 없는 눈에 희망이 가득했다. “그래줄 수 있겠어요?” “네. 맥스가 원하면요.” “정말 고마워요!” “별말씀을요.” 티크너 부인이 안도하는 모습을 보자 에릭의 마음도 편해졌다. “하지만 심리 치료는 아주 만만찮은 일이고, 환자 본인이 원해야만 도움이 된다는 건 알고 계실 겁니다. 제가 맥스에게 제안은 해보겠지만 모든 건 당사자한테 달렸어요.” “그 애도 받아들일 거예요. 선생님이 내 무거운 짐을 덜어줬네요.” 티크너 부인이 휴지를 꼭 쥔 채 관절염으로 울퉁불퉁한 손을 맞잡았다. “이 세상에 그 애보다 더 소중한 건 없다오. 맥.. 2022. 5. 16.
05. 우리 손자는 내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해요. “어째서 맥스에게 도움이 필요한 건지 말씀해주시죠.” “그 애는 내가 잘 먹으면 좀 더 오래 살거나 괜찮을 거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난 죽어가고 있으니까. 맥스는 그 사실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어요.” 티크너 부인은 눈도 깜빡하지 않은 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난 영양 보급관을 달고 싶지 않아요. 아흔 살이면 충분히 오래 살았지. 진통제 약효가 떨어지면 온몸이 아프다오. 난 집에서 자연스럽게 떠나고 싶어요.” “이해합니다.” 에릭은 자신도 이처럼 용감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는 더 이상의 검사는 필요 없다고 결정했다. 티크너 부인은 아무런 이상이 없었고, 본인이 치료를 거부했다. 이런 상황이면 부인의 손자에 대한 걱정을 들어주는 것이 합당했다. “맥스의 부모님은 어디 있습니까?.. 2022. 5. 14.
04. 내가 떠나면 그 애는 오롯이 혼자 남게 될 거예요. “자, 이제 부인의 상태에 대해 말씀해 주시죠. 우울증을 앓고 계십니까? 울적하거나 기운이 없나요?” “아뇨. 아무렇지 않아요.” 티크너 부인이 고개를 저었다. 짧은 백발 머리가 새끼 흰올빼미처럼 목 위에서 흔들렸다. “정말요? 우울하다고 해도 병세를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건데요.” “괜찮다고 했잖아요.” 티크너 부인이 코웃음을 쳤다. “내 머리는 검사할 필요 없어요. 그건 그렇고, 내가 두 번째 남편과 결혼할 때 선생님은 대체 어디에 있었던 건지!” 에릭은 미소를 지었다. “좋습니다. 그럼 몇 가지만 질문드릴게요. 오늘이 며칠이죠?” “날짜가 무슨 상관이지?” “부인을 진찰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질문에 대답을 해주셔야 합니다. 미국 대통령이 누구죠?” “누구든 상관있나? 정치인들은 전부 사기꾼인데.” 에.. 2022. 5. 12.
02. 죽음을 앞둔 환자 에릭 패리시 박사는 호출을 받고 응급실로 가고 있었다. 에릭은 병원 복도를 서둘러 지나갔다. 갑자기 확성기 시스템이 켜지면서 스피커를 통해 녹음된 자장가가 흘러나왔다. 병원에서는 출산 서비스의 일환으로 아기가 태어날 때마다 자장가를 틀어주었다. 하지만 에릭은 그 소리가 위층에 있는 정신질환자들에게 고통을 줄 것을 알기에 움찔했다. 그가 담당한 환자들 중에 아이를 사산한 뒤 우울증에 걸린 젊은 엄마가 있었는데, 간간이 그 자장가 소리를 들을 때마다 감정적인 기복이 커지곤 했다. 에릭은 관리실에 자장가 소리가 정신병동까지 들리지 않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그들은 항상 스피커 시스템을 바꾸는 데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고만 할 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에릭이 그 비용을 내겠다고 했지만 관리실에서는 안 된.. 2022. 5. 8.
10. 레이나는 어디든 갈 거야 (마지막 회) “다음은 어떻게 하고 싶어?” 이츠카짱이 묻는다. 보스턴 커먼 ― 호텔 앞에 있는 공원 이름이었다 ― 안을 산책하고 벤치에 앉은 참이다. 눈앞의 연못 물은 탁한 녹색이고 연못가에는 개구리 동상이 자리 잡고 있다. “이츠카짱은?” 벌써 10월인데 바지 자락을 걷어 올리고 그 얕은 못에 들어가 노는 아이가 있다. 그 곁에는 엄마로 보이는 여자도 있었는데 강아지 리드 줄 같은 것을 아들의 허리에 매고 그 한쪽 끝을 손으로 감아쥐고 있었다. 아이는 장난감 양동이와 물뿌리개를 들고 있다. 레이나는 남동생인 유즈루를 떠올렸다. 연못 안의 아이는 유즈루보다 어렸지만. “난 다 좋아, 뭘 하든 안 하든.” 이츠카짱이 말한다. “왜냐면, 아무것도 하지 않더라도 여행은 하고 있는 거니까.” 그건 그렇다고 레이나도 생각한다.. 2022. 2. 1.
09. 바다로 빨려 들어가 버릴까 무서워 마크 말에 따르면, 배는 11월까지만 운항하는 듯하다. 여름철에는 거의 확실하게 어떠한 종류의 고래가 보이는데 겨울이 가까워지면서 그 확률이 떨어진단다. 만약 고래를 보지 못하게 되면, 45달러를 주고 산 승선권은 다른 날 다시 배를 탈 수 있는 티켓으로 교환해 주는 모양이었다. 승선에서 하선까지 전체 여정은 4시간이 소요되었다. 객실은 난방이 되고 있었지만, 먼 바다로 나가자 맑은 하늘이 무색하게 갑판 위는 추웠고 롱패딩이 도움이 됐다. 다만 그것을 입은 이츠카는 사촌 여동생에게도 리비 일행에게도 큰 웃음을 사게 되었다. 매점에는 아동용과 성인용 두 종류뿐이었고 아동용은 레이나에게 딱 맞는 사이즈였는데 남녀공용인 성인용은 이츠카에게는 너무 커서 흡사 어린아이가 어른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 2022. 1. 31.
07. 고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몸이 차가워져 있던 터라 목욕을 하기로 한 건 아주 좋은 생각이었다. 욕조 물에 몸을 담근 채 향긋한 비누로 팔다리를 씻으면서 레이나는 그리 생각했다. 욕실은 넓고 청결하고 쾌적하다. 다만 방에 혼자 있다고 생각하니 불안하기도 했다. 산책 나간 사촌 언니가 얼른 돌아와 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아서 배가 엄청 고프지만, 좀 있다 레스토랑에 간다(리비 일행과 약속한 가게 이름은 ‘파이브 버거스’니까 아마도 햄버거를 먹게 되겠지)는 것을 알기에 배가 고픈 것도 이제는 즐거웠다. 게다가 고래! 고래를 볼 수 있다니 ‘굉장한 일’이다. 크고, 힘세고, 귀여운 얼굴에 정직하다는 것이 레이나가 생각하는 고래다. 정직에 관해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레이나 자신도 알 수 없었지만 어쩐지 그런.. 2022. 1. 29.
05. ‘본다’는 것은 유일한 ‘Yes’다. 장거리 버스의 뱃속에 짐들이 차곡차곡 실린다. 그러나 이츠카는 자신들의 차례가 되자 짐을 맡기길 거부했다. 다른 승객들의 짐에 비해 자신들의 짐은 훨씬 작기도 했고 이것저것 중요한 물건이 들어 있어서 손닿지 않는 곳에 놔두고 싶지 않았다. 수염을 기른 중년 직원이 목을 살짝 움츠리더니, 그럼 그냥 타라고 말하는 듯이 엄지로 어깨 뒤를 가리킨다. 30번 게이트는 지하 2층으로 밤처럼 형광등이 적막하게 비추고 있다. 바깥의 맑은 하늘이 거짓인 양. “먼지 냄새 나.” 차에 오르면서 레이나가 말한다. “그보단, 디젤 엔진 냄새 같은 걸.” 이츠카가 대답했다. 냄새는 코라기보다 입으로 들어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차 안 전체가 보이는 자리여야 안심이 될 것 같아서 맨 뒷자리에 나란히 앉는다. 저마다 배낭을 무릎 .. 2022. 1. 27.
04. 여행이 끝날 때까지는 절대 돌아가선 안 된다. 여덟 시에 일어날 예정이었는데 레이나가 눈을 떴을 때는 일곱 시도되기 전이었다. 블라인드 탓에 방 안은 어둡다. 그래도 사물의 형체가 전부 또렷이 보일 정도로는 밝았다. 옆 침대에서 자고 있는 이츠카짱이 깰세라 살그머니 창가로 간다. 블라인드 옆 틈새로 바깥을 보니 이미 해님이 떠올라 있었다. 화장실에 다녀온 후 욕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찬찬히 본다. 많이 큰 목욕 가운을 입고 선 것은 분명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자신인데 지금 집을 떠나 이런 장소에 있다는 것이 어쩐지 믿어지지 않았다. 레이나 방에서 수도 없이 작전 회의를 했을 때 ― 그 방! 바로 어제까지 그곳에 있었으면서 벌써 그리워진다 ―, 이츠카짱과 둘이서 이번 여행에 관한 여러 가지 규칙을 정했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이 밖에도 몇.. 2022. 1. 26.
03. 순수하고 착한 아이니까, 곧 돌아올 거예요. 어째서 옆집 부부가 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에드워드와 앨리스 벌링턴 부부는 선량한 사람들이지만, 이래서야 마치 옆집 사람이 달려와야만 할 만큼 심각한 사태가 이 집에서 일어난 것 같지 않은가. “언제 온 거야?” 그 사람들을 가리키며 아내 리오나에게 일본어로 슬며시 물었더니, “아까. 경찰차 왔을 때.”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기사카 우루우는 영 마뜩잖다. 에드워드가 어깨를 두드리며 위안의 말을 건네는 것도, 앨리스가 커피를 권하는 것도. 신고를 받고 바로 와 주었지만 30분도 안 돼 돌아간 경찰 둘이 하나같이 애들처럼 어려 보였던 것도, 현재로썬 사건성이 없다는 둥 의례적인 말만 했던 것도. 사건이 되고 나선 늦으니까 신고한 것인데―. “순찰 차량에는 연락을 해 두었으니까요.” 뚱뚱한 흑인 여성 경.. 2022. 1. 25.
<스카치캔디 할머니의 비밀주머니> 어른들의 성장 판타지 소설 어른들의 성장 판타지 소설 지도에 없는 기차역, 그 곳에서 시작된 특별한 만남 2022.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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