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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8

02. 요양병원에서 근무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은 언젠가요? 10년간 요양병원에서 근무하며 가장 행복했던 시간을 꼽으라면, 아이를 품었던 열 달의 기간이다. 많은 사람이 마흔 살 임산부의 노산을 걱정하였다. 허리를 굽혔다 펴는 일의 연속인 한 의사의 노동과 예민하고 고통스러운 입덧을 안쓰러워했다. 하지만 나는 임신 초기, 입덧으로 축 늘어져 있다가도 회진만 하러 가면 희한하게 힘이 났다. 밥을 못 먹어 위장이 꼬이고 기운이 없는 데도 환자 얼굴만 보면 생글생글 미소가 지어졌다. 체질상 요양병원의 한의사가 맞나 보다 생각했다. 입덧이 끝나고 태동의 시기가 왔다. 유산한 적이 있어서 산부인과 정기검진 때마다 초음파 모니터를 똑바로 보지 못했다. 쿵쿵. 아이의 힘찬 심장 소리를 들은 후에야 겨우 실눈을 뜨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어느 날, 작은 생명의 생존을 가슴 졸.. 2022. 11. 12.
01. 치열한 노년의 삶 아무리 가까이에서 늙음과 병듦, 죽음을 관찰해도 아직은 노년의 삶이 제삼자의 일처럼 느껴진다. 다만, 영원히 늙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하고 젊은 날을 조금 더 의미 있게 살아야 한다는 것과 늙고 병들고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에는 반드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요양병원에서 늙음을 관찰하며 한 가지 결론을 얻었다. 늙는다는 건 젊은 날을 살아냈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죽지 않고 살아남았기에 젊은 시절을 보내고 오늘날까지 늙을 수 있는 것이다. 다리가 불편해서 늘 휠체어에 앉아 계신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강제 징용되어 일본으로 끌려가셨다가 함께 간 사람 중 유일하게 살아남으신 그 옛날을 회상하신다. 또, 다섯 남매를 낳아 기르고 농사짓고 살림하느라 허리가 굽어 침상에 제대로 눕지 못하시는 할.. 2022. 11. 11.
00. <바람이 되어서라도 한 번만> 연재 예고 엄마의 몸이 한 줌의 재가 되어 자연으로 돌아가 버린 지 4년, 혼자 억누르던 이야기들을 세상으로 날려 보낸다 프롤로그 새가 노래한다 편안하다. 가슴 깊이 숨겨두었던 이야기가 세상 밖으로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혼자 오십 년을 넘게 그것들을 꼼짝 못하게 억누르고 있었다. 스멀스멀 고개를 들기라도 하는 날이면 왈칵 쏟아지는 눈물에 풀이 꺾여 다시 숨어버린 이야기들. 이제 가볍고 아름다운 날개를 달아 밝은 세상으로 날려 보내려 한다. 언제나처럼 따라다니던 엄마의 삶 그리고 그 일부가 되어버린 내 삶. 영원히 내 곁에 있을 것 같던 엄마가 아주 먼 길을 떠나고, 이젠 가끔 이기적인 삶을 살아가려 한다. 내 어깨를 두 팔로 살포시 보듬고 조용히 속삭여준다. 수고했다고, 이제 다 지난 .. 2022. 7. 13.
02. 가치 : 무엇으로도 측량, 대체할 수 없는 절댓값 미래는 여러 가지 이름을 가지고 있다. 약한 자들에게는 불가능이고, 겁 많은 자들에게는 미지이며, 용기 있는 자들에게는 기회이다. - 빅토르 위고 미혼인 20대 후반의 어느 초가을 날, 백화점에서 빨간색 닥스 트렌치코트를 샀다. 베이지와 레드 중에서 고민하다 더 화려해서 예쁘고 얼굴을 잘 살려줄 레드로 골랐다. 당시 새벽이면 즐겨 듣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딸에게 옷을 물려주는 엄마’ 이야기를 듣고 예측 불가한 미래의 내 딸에게 물려줄 요량으로 조금 센 금액을 주고 질렀던 것이다(천만다행으로 10년 이내에 딸이 두 명이나 태어났다!!). 얼마 전 엄마가 이제 당신은 입을 일 없다며 베이지 닥스 트렌치코트를 주셨다! 아, 인생이란 그런 것인가 보다. 대를 이은 물림! 엄마는 50대 중반에 사신 거라니 그땐.. 2022. 6. 30.
10. 린다 크랙넬 (마지막 회) 어떤 이야기든 그걸 쓰는 것은 대체로 다시 쓰는 것이다. … 나는 그것을 반복해서 하는 걷기로 생각한다. 모양이 다양하거나 방향이 바뀌는 고리 같은 것으로 본다. 우리의 기억을 다시 찾아가 보는 것도 이와 같다. 우리는 기억을 되짚어 보는 과정에서 그걸 미묘하게 재구성한다. 그래서 우리 인생의 이야기는 사진으로 찍은 것처럼 객관적인 현실이라기보다는 다시 만들고 또 만드는 상상의 연극과 더 비슷하다. - 린다 크랙넬, 《되돌아가다》 도로시 워즈워스, 낸 셰퍼드, 아나이스 닌, 린다 크랙넬을 포함해 걷는 여성들에게 같은 곳을 다시 걷는 행위는 현재의 자아와 미래를 연결해 준다. 인간의 짧은 수명이란 한계를 넘어서 존재하는 길의 힘 덕분에 우리는 과거의 자아와 같은 공간에 있을 수 있고, 앞으로 올 미래의 자.. 2022. 4. 30.
00. <알고나면 쉬워지는 해부학 이야기> 연재 예고 어서 와, 해부학은 처음이지? 해부학이 어렵다고? 이 책을 보고 나면 해부학 용어가 머리에 쏙쏙! 처음은 어렵지만, 알고 나면 쉬워지는 생활 속 해부학 이야기! 해부학(anatomy)은 ‘ana(up=위)’와 ‘tom(cut)’가 결합되어 인체를 위에서 잘라 내부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만화 주인공 아톰(atom)또한 a(아니다)와 tom(cut)이 합쳐져서 더 이상 자를 수 없는 최소의 단위라는 의미로 원자라는 뜻이다. 인체는 다양한 장기와 혈관, 근육, 신경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능과 위치에 따라 가슴 부위에는 심장과 폐가 있어 각각 순환계통과 호흡계통을 담당하고 있고, 배에는 소화계통의 장기들이 있다. 골반에는 비뇨 및 생식을 담당하는 장기들이 있고, 근골격계통에는 팔, 다리 그리.. 2022. 4. 1.
03. 죽은 화분에 3년 동안 물을 주다. 꽃집에서 화분에 자라는 오죽을 보고 한눈에 반해버렸다. 거죽이 까만 가느다란 대나무가 그저 국숫가락마냥 몇 가닥 서 있는데 어찌 그리 우아하고 기품이 있던지! 머리로는 빈약하기 짝이 없다 생각하는데 마음으로는 독특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왔다. 안도현 시인의 시집 『외롭고 높고 쓸쓸한』의 제목 같은 그런 이미지라면 좀 설명이 될까? 그런데 선뜻 사지 못하고 아쉬움만 가득 안고 돌아왔다. 빠듯한 살림으로 가격이 만만치 않은 화분에 큰돈을 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이미 마음을 홀딱 빼앗긴 터라 포기할 수도 없었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린 끝에 생일선물로 오죽을 데려오게 되었으니 아침저녁으로 가까이 살피고 오래도록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았다. 바람이라도 불면 검은 대나무가 몸을 흔드는 소리인가 싶어 귀.. 2022. 3. 17.
<생명 가격표> 각자 다른 생명의 값과 불공정성에 대하여 '인간 생명의 가치 측정'이라는 불편하지만 피할 수 없는 현대 사회의 핵심 이슈 2022.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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