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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9

02. 요양병원에서 근무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은 언젠가요? 10년간 요양병원에서 근무하며 가장 행복했던 시간을 꼽으라면, 아이를 품었던 열 달의 기간이다. 많은 사람이 마흔 살 임산부의 노산을 걱정하였다. 허리를 굽혔다 펴는 일의 연속인 한 의사의 노동과 예민하고 고통스러운 입덧을 안쓰러워했다. 하지만 나는 임신 초기, 입덧으로 축 늘어져 있다가도 회진만 하러 가면 희한하게 힘이 났다. 밥을 못 먹어 위장이 꼬이고 기운이 없는 데도 환자 얼굴만 보면 생글생글 미소가 지어졌다. 체질상 요양병원의 한의사가 맞나 보다 생각했다. 입덧이 끝나고 태동의 시기가 왔다. 유산한 적이 있어서 산부인과 정기검진 때마다 초음파 모니터를 똑바로 보지 못했다. 쿵쿵. 아이의 힘찬 심장 소리를 들은 후에야 겨우 실눈을 뜨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어느 날, 작은 생명의 생존을 가슴 졸.. 2022. 11. 12.
02. 태아와 엄마는 한 몸 결혼식을 마친 부부는 일생의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하기 위하여 신혼여행을 떠난다. 신부는 사랑하는 새신랑과 함께 술잔을 들고 사랑의 언약을 속삭인다. 때로는 신랑 신부 친구들과 함께 술파티를 즐기며 과음을 하기도 한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후에도 신혼의 무드를 즐기려고 저녁식탁에서 자주 포도주를 마신다. 음주가 식사처럼 일상화된 시대에 살고 있다. 점심시간에 시내 식당에 들르면 테이블마다 소주나 맥주로 반주를 즐기는 모습을 자주 본다. 여성들만 모인 식탁에서도 소주병이 보인다. 평등을 중시하는 세상이지만 음주에서만은 평등을 외치고 싶지 않다. 특히 신혼이나 임신을 원하는 가임연령 여성에게는 남성과 달리 금주가 요구된다. 태아 알코올 증후군(fetal alcohol syndrome)은 임신 중에 어머니가 마.. 2022. 11. 6.
08. 경력 단절, 엄마라면 감수해야 하나요? 우리는 무엇을 잃었나 임신하자마자 직장에서 재계약이 배제됩니다. 연 단위 계약직이었기에 육아 휴직을 바라지도 않았지만, 재계약에서 배제된 일은 사회에서 여성의 임신이 어떻게 다루어지는지 알게 된 경험이었습니다. 돌아갈 곳도, 나를 기다리는 곳도, 나를 필요로 하는 곳도 잃는 기분입니다. “엄마가 되기 전에 상담 공부를 시작해서 좋겠어. 젊으니까 교수도 될 수 있을 거야”라는 말은 기대감과 함께 부담감을 주는 말이었습니다. 상담사로서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을 정도의 자격을 취득하려면 수백 시간 이상의 수련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과정은 대부분 주말이나 저녁에 이루어지고 한 번에 장시간 진행됩니다. 주말에 아이를 맡기고 공부하러 간다? 최소한 10년 후에 가능할 것처럼 요원하게 느껴집니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2022. 8. 17.
01. 우리가 우울한 이유: ‘자기불일치 이론’ 엄마 되기를 책으로 공부하다 심리학에서 우울을 설명하는 이론 중 ‘자기불일치 이론’이 있습니다. 실제 자기와 당위적(의무적) 자기의 차이가 크면 불안이, 실제 자기와 이상적 자기의 차이가 크면 우울함이 생긴다는 이론입니다. 저는 실제로 어떤 육아를 하게 될지 객관적 인식과 정보가 없는 상태로 이상적 자기와 당위적 자기를 형성해 나갔습니다. 그때부터 우울과 불안이 예고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이 균열은 임신 기간에도 일어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임신하며 사회활동이 줄고 집 안에서 핸드폰으로 타인의 SNS를 훑는 시간이 늘었습니다. 부른 배를 비스듬히 누이고 그것들을 보며 저의 순간을 초라하게 여겼고, 또 어떤 날은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과 불안이 엄습해 남편에게 “기저귀는 어떻게 가는 거지? 나 하나도 모르.. 2022. 8. 10.
04. D라인의 여유 온천천을 걸었다. 사람들이 갑자기 내리는 비 때문인지 모두 종종걸음으로 바쁘게 움직였다. 나는 그들 속에 스며들지 않고 천천히 걸었다. 걷다 물고기가 있으면 한참 동안 멍하니 보기도 하고, 한가로이 서 있는 왜가리의 눈길을 따라 그곳에 머무르기도 하며 시간 속을 걸었다. 한참을 걷다 아름다운 광경에 미소까지 머금고 눈길을 빼앗겼다. 뒤뚱거리는 걸음으로 유모차를 밀며 걷는 젊은 엄마였다. 비가 내려도 개의치 않는 여유로운 걸음이었다. 나도 유모차와 속도를 맞추며 한참을 따라갔다. 아기 엄마가 휙 뒤를 돌아보았다. “아이고, 놀랬죠? 너무 아름다운 모습이라 저기서부터 뒤따라왔어요.” 겸연쩍어 나도 모르게 슬그머니 우산을 받쳐주며 상황을 설명했다. “에고, 비가 와서 어쩌노. 아기가 놀라겠어요.” 유모차 안을.. 2022. 7. 18.
09. 가족은 만들어가는 거예요_ 결혼은 노동이다?! (마지막 회) 막냇동생의 결혼식 때 남편이 결혼식 축사를 맡았다. 남편은 결혼식 축사에서 “여러분, 결혼은 노동입니다.”라고 말했다. ‘노동’이란 단어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지만, 남편을 아는 사람은 왜 그 말이 나왔는지 당연한 말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보통 결혼식 하면 ‘노력’, ‘인내’ 이런 단어들을 많이 쓰는데 남편은 그보다 수위가 높은 ‘노동’이란 단어를 사용했다. 그는 어떤 일을 하건 신중하고 매사에 노력을 많이 하는 사람이기에 일뿐만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에도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노동’을 한다. 그래서 당연히 남편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와의 관계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예외는 없다. 결혼 생활에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는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노동’ 즉, 힘들지만 반드시 해.. 2022. 5. 13.
02. 쏟아진 한 끼, 쏟아진 눈물 아기와의 시간은 행복하면서도 힘든 시간의 연속이었다. 갓난아기는 삼시 세끼만 먹는 게 아니다. 서너 시간 간격으로 분유를 먹여야 하고, 수시로 기저귀도 살펴 갈아줘야 한다. 그러니 엄마인 내가 밤잠을 이어서 잔다는 건 생각할 수 없다. 하루하루가 쪽잠이고 선잠이다. 게다가 집안일은 얼마나 서툰지 하루 24시간이 서툰 일과의 사투였다. 저녁은 퇴근한 남편이랑 먹느라 어떻게 준비한다고 해도, 나머지 시간에 나를 위한 식사를 따로 준비한다는 건 생각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뱃속이 이런 사정을 헤아려줄 리 없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배가 고프다는 신호가 강하게 온다. 그런 날이 반복되던 어느 날이었다. 내게도 밥을 줘야 하는데 집에 마땅히 먹을 것이 없었다. 나는 컵라면 하나를 꺼내 들었다. 아기가 자는 틈에 .. 2022. 3. 21.
01. 연봉 200입니다만 지나고 나면 부끄러운 일이 어디 한두 가지일까?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부끄러운 사건들이 여러 상황에서 생겨났다. 우선 의욕적으로 시작했던 글쓰기는 턱없는 글쓰기 실력 탓에 제대로 앞으로 나가지 못하기 일쑤였다. 게다가 임신과 출산이 이어지면서 점점 더 글을 쓰기 힘들었다.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었다. 임신과 출산을 경험한 사람들은 알 거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입덧과 자도 자도 밀려오는 졸음, 나중에는 잠을 제대로 자기 힘든 괴로움을. 아기의 탄생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기쁨이었지만 퇴원 후 집에 들어선 순간부터 전쟁 같은 하루하루가 이어졌다. 힘들어서 직장은 그만두었지만 글쓰기는 이어가고 싶었다. 성실하게 글을 쓰겠다는 다짐도 여전히 유효했다. 아쉬운 것은 마음속 다짐과 달리 결과가 너무 미미하다는.. 2022. 3. 18.
01. 50세 넘은 여성이 아이를 낳아도 될까? 뉴욕에 사는 30대 독신 변호사 미란다는 산부인과에 검진을 받으러 갔습니다. 검사 결과, 오른쪽 난소의 배란이 멈춰 있다는 말에 충격을 받은 그녀는 불쑥 의사에게 묻습니다. “난소가 파업을 일으킨 건가요?!” 그날 밤 미란다는 세 명의 절친들 앞에서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말합니다. “원인은 하나야. 오른쪽 난소가, 내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일 따윈 없다며 스스로 포기한 거야. 내가 승산도 없는 사건을 던져버리는 것과 같은 셈이지.” “하지만 왼쪽은 나오잖아?”라고 묻는 캐리에게 미란다는 한숨을 쉬면서 말합니다. “나는 생물학적으로는 낙제야. 참 아이러니하지. 하버드까지 나온 여자의 난소가 말이야….” 그때까지 남자친구와 사귀고 있었고, 피임약을 먹으며 조심하던 미란다였지만 결국 그와 헤어졌습니다. 더욱이.. 2022.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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