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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세이205

05. 한 남자의 이력서, 당신이라면 채용했을까? 나이 : 31세 경력 : 트럭운전수 학력 : 대학교 중퇴 특징 : 학창시절 왕따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옹색한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그의 프로필에 표현하지 못했던 그의 또 다른 모습이 있습니다. 영화광, 천부적인 놀라운 상상력, 타고난 예술 감각, 멈추지 않는 열정…. 이러한 잠재력을 가졌던 그의 꿈은 영화감독이었습니다.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꾸준히 시나리오를 쓰던 그는 서른이 넘은 나이에 작은 영화 제작소에 취직하게 되고, 그가 틈틈이 적어서 완성한 첫 시나리오 가격으로 단돈 1달러를 요청했고, 옵션으로 청한 것이 “내가 그 영화의 감독을 하겠소”였습니다. 1984년에 그렇게 만들어진 저예산 영화가 였고, 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사람들은 그에게 주목하기 시작했으며, 그는 계속해서 불후.. 2022. 4. 27.
04.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유일의 것 “타인은 지옥이다.”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말했습니다. 당신이 만나고 있는 누군가는 당신에게 어떤 세상을 만들어주고 있는지요? 상대와의 관계가 진흙탕 같이 암담할 수도 있지만 진흙 속에서 피는 연꽃처럼 아름답고 향기로울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를 만나는 일은 자신을 만나는 일과 같습니다. 친밀하거나 밀접한 관계일수록 더욱더 그렇습니다. 내 마음이 맑고 향기롭다면, 상대방이 그렇게 보일 것입니다. 내 삶이 지옥 같고 처참하다면, 누구를 만나든 좋을 리 없습니다. 지옥에서 살지, 꽃동산에서 뛰어놀지는 자기 자신에게 달려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사랑받기를 원합니다. 마음이 평온한 상대방이 나를 보듬어주고 아껴주면 좋겠지만, 그것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유일의 것은 나.. 2022. 4. 27.
04. 최고 중의 최고, 축구 선수 '호날두'의 반전있는 과거 나는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가난이 너무 싫었지만 도망치고 또 도망쳐도 도망칠 수 없었다.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이었다. 아버지가 술을 마시면 나는 너무나 무서웠다. 형은 마약 중독자였고 약에 취해서 꿈꾸며 현실에서 도망쳐버렸다. 우리 가족의 유일한 생명줄은 청소부 일을 하는 어머니였다. 그렇지만 그 무렵 나는 청소부인 어머니가 너무 부끄러웠다. 나는 빈민가 놀이터에서 혼자 흙장난을 하면서 동네 친구들이 축구하는 것을 구경하곤 했다. 그들은 내가 가난한 그들보다 더 가난하다는 이유로 나를 축구팀에 넣어주지 않았지만 괜찮았다. 내 쪽으로 우연히 날아온 축구공을 찼을 때 나는 처음으로 희열이란 것을 느꼈다. “어머니, 저도 축구가 하고 싶어요. 저를 축구팀에 넣어주실 수 있나요?” 철없는 아들의 부탁에 어머니는.. 2022. 4. 26.
03. 늘 변화하는 관계, 그대로 받아들이세요. 변화무쌍한 날씨만큼 우리의 마음은 늘 바뀝니다. 이랬다저랬다 하는 마음의 변화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마음도 계속 변하는데, 사람과의 관계는 어떠할까요? 늘 변하는 마음은 예측할 수 없는 관계의 변화를 만듭니다. 게다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갑작스러운 상황과 사건이 있습니다. 이 역시 변덕스러운 마음이 화근입니다. 어제는 그 사람이 좋아서 만나자고 약속했는데, 오늘은 그냥 짜증이 나고 불편해서 만나기 싫어지기도 합니다. 나에게 심한 욕을 하고 손가락질한 사람이 있나요? 처음에는 그 사람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밉고, 원망스럽지요. 시간은 독기를 가라앉히는 힘이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싫은 감정이 희석되고, 상대방을 용서하게 됩니다. 선입견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맑은 정신을 유지하세요. ‘있는 그대.. 2022. 4. 26.
03. 링컨, 오프라 윈프리, 오바마의 고백? 고백의 조건 “자네 같은 사람이 어디 자네뿐인가! 이 나라 모든 사람들이 가족을 잃은 슬픔으로 가슴이 무너지고 있지만 모두 참고 있는 것이네. 자네 상관이 허락하지 않으면 그냥 참게나. 이런 문제로 내게까지 오는 것은 위계질서를 어기는 것일세. 내가 할 일 없이 노는 사람처럼 보이나? 그깟 휴가문제 따위로 낭비할 시간이 없네. 지금은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니 그만 돌아가게.”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무렵 워싱턴 방어를 맡고 있던 자신을 면회하러 왔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아내의 장례식에 참석하려던 스콧 대령에게 매정하게 대한 링컨 대통령은 다음 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곧장 스콧 대령을 찾아갔습니다. “어제 나는 심신이 많이 지쳐 있었네. 그렇다 해도 국가에 헌신하면서 아내를 잃어 실의에 빠진 사.. 2022. 4. 25.
02. 모든 갈등과 마찰의 원인은 결국 내 안에 있습니다. 맹자는 말했습니다. “남을 예우해도 답례가 없으면, 자기의 공경하는 태도를 돌아보고 남을 사랑해도 친해지지 않으면, 자기의 인자함을 돌아보고 남을 다스려도 다스려지지 않으면, 자기의 지혜를 돌아보라.” 누군가와 분쟁이 생겼을 때 자기 생각만을 고수하면 일이 커지지요.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고려하면 웬만한 문제들은 쉽게 사라지고 다툴 일이 없습니다. 상대방은 나의 거울입니다. 상대방의 표정과 태도를 보면 내가 그를 대하는 방식과 정서가 드러납니다. 남이 나를 무시하거나 무가치하게 여기는 것을 불평하기 전에 그에게 어떤 마음으로, 무엇을 해주었는지 돌아보기 바랍니다. 모든 갈등과 마찰의 원인은 결국 내 안에 있습니다. 언뜻 봤을 때는 상대에게 있는 것 같지만요. 결국 나의 부정적인 감정과 고.. 2022. 4. 25.
02. 허드슨 강의 기적과 휴브리스 수에즈 운하는 홍해와 지중해를 관통하여 세계의 항로를 바꾼 대역사(大役事)입니다. 이 프로젝트를 처음 제안한 것은 나폴레옹이었고, 총감독을 맡아 완공한 것은 토목기사이며 외교관이었던 페르디낭 드 레셉스(Ferdinand de Lesseps, 1805~1894)였습니다. 그는 첫 삽을 뜬 후 무려 10년 동안 불굴의 의지로 흙을 파내어 대역사를 완공했습니다. 그 성공은 그에게 커다란 자부심을 주면서 그를 일약 운하계의 대스타로 부상시켰고, 그로부터 12년 후 파나마 운하 공사에 전격 기용되게 했습니다. 수에즈 운하에 투자하고 그 이용료를 받아 대박을 터트린 금융업자들이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하는 파나마 운하를 건설하기로 했고, 그 공사의 책임자로 레셉스를 지목한 것입니다. 레셉스는 또 한 번 자신의 존재가.. 2022. 4. 24.
01. 대통령의 추도사 미국 대통령 오바마의 개인 트위터 계정에는 지금도 모욕적인 악플이 범람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검은 원숭이’, ‘원숭이 우리로 돌아가라’는 흑인 비하 댓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겨냥한 저급한 비방글을 하나도 지우지 않았습니다. ‘사이버 침’이 SNS상에서 저절로 마르도록 그냥 내버려둔 것 입니다. ‘타면자건(唾面自乾)’의 지혜를 실천한 것입니다. 오바마의 놀라운 포용의 태도를 보여주는 또 한 가지 사례가 있습니다. 2015년 6월 26일 백인 청년의 총기난사로 숨진 흑인 목사의 장례식에 참석하여 추모사를 읽던 오바마는 잠시 고개를 숙이고 침묵하더니 찬송가 ‘Amazing grace(놀라운 은총)’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놀라운 은혜 이 얼마나 감미로운가… 나 같은 비참한 사람을 구해주셨네... 2022. 4. 23.
01.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친구 사는 게 지치고 힘들 때 짜증이 나고 화가 날 때 억울하고 답답할 때 자존심에 흠이 날 때 내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에게 이야기해보세요.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친구가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곁에 고통을 함께할 친구가 없다면 자존감이 무너지거나 자기혐오에 빠져 무척 힘이 들 거예요. 곁에 친구가 있다는 것은 나도 그러한 사람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누군가가 힘들 때 그 얘기를 찬찬히 듣고 공감해보세요. 내 얘기만 하고, 친구의 이야기를 진정으로 듣지 않는다면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친구는 없을 것입니다. 2022. 4. 23.
00. <세상은 가만히 있는데 내 마음이 흔들릴 때> 연재 예고 지친 마음을 포근히 안아주는 이야기 섬에서 잠시 쉬었다 가세요! 딱딱한 하루가 말랑해지는 100가지 이야기. 저자가 따뜻한 호흡을 담아 여러 현장의 오프라인 게시판과 온라인 게시판, 저널지, 웹진, SNS 공간 등에 게시했던 수많은 글 중에서 선별하여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괜스레 울적하고 마음이 헛헛할 때, 우연히 마주친 글귀에서 기대치 않은 위로를 받을 때가 있고, 심란한 마음으로 SNS를 보다가 눈에 드는 사진 한 장, 이야기 한 자락에 마음이 정렬되는 순간도 있다. “세상은 가만히 있는데 내 마음이 흔들릴 때”는 이런 뜻밖의 조우를 통한 기쁨을 온전하게 맛볼 수 있는 도서로, 저자가 따뜻한 호흡을 담아 여러 현장의 오프라인 게시판과 온라인 게시판, 저널지, 웹진, SNS 공간 등에 게시했던 수많.. 2022. 4. 22.
00. <내 마음에 글로 붙이는 반창고> 연재 예고 마음의 편안을 원하는 영혼에게 건네는 따뜻한 글 한 스푼 젊은 수도승 도연 스님의 섬세하고 따뜻한 성찰, 그리고 인생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살아내고 있는 당신에게 희망이 좌절되고 불안이 일상화된 상실의 시대에 지친 당신을 위로하고, 상처받은 마음에 새살을 돋게 해줄 카이스트 출신 수도승 도연 스님의 상처 치유 에세이가 출간되었다. 『내 마음에 글로 붙이는 반창고』는 인간의 삶을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사계절의 흐름 속에서 조망하며, 가장 나다운 삶을 꿈꾸는 지친 현대인에게 따듯한 조언을 건넨다. 도연 스님은 날카로운 온기를 담은 시선으로 속도경쟁에 지친 직장인, 보이지 않는 미래에 갈피를 잃은 젊은 세대의 내면을 직시한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주변 상황을 과도하게 의식하거나 경쟁에.. 2022. 4. 22.
09. 지금은 진분홍 시간이에요. (마지막 회) 누군가는 ‘뫼르소의 시간’이니 ‘니체의 시간’이니 하지만, 나는 언제부턴가 꽃 뒤에 시간을 붙이는 습관이 생겼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봄까치꽃의 시간, 찔레꽃의 시간, 인동초의 시간, 모란꽃의 시간, 으아리꽃의 시간, 수수꽃다리의 시간, 도라지꽃의 시간, 지칭개의 시간, 분꽃의 시간, 산국의 시간. 한창 아름답게 피어있는 절정 속의 꽃에 시간을 붙여 잠깐이나마 그 꽃으로 인해 쉼의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그렇다고 한창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모든 꽃에 시간을 붙이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아무 꽃에나 붙이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마음이 직관적으로 하는 일인데, 찬찬히 살펴보면 기준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대충의 기준이 이러하다. 흔한 듯 하지만 조금이라도 마음을 기울여야 눈에 들어오는, 그래서 .. 2022. 3. 24.
05. 글을 팝니다. (마지막 회) 회의를 위해 출판사에 가는 날이었다. 출판사 앞에 도착했는데 선뜻 들어가는 게 내키지 않았다. 회의 시간보다 일찍 도착하기도 했지만, 현재 내 모습이 어딘지 불편했다. ‘나, 왜 여기 이러고 있는 걸까?’ 무거운 마음이 내게 이렇게 묻고 있었다. 작가와 기획자로서 경험이 쌓이면서 일면식도 없던 출판사에서 연락이 오는 경우가 늘었다. 하지만 출판사에서 먼저 연락을 했다고 해서 일이 바로 성사되는 건 아니다. 회의과정에서 구체적인 논의를 하고, 나의 가치를 충분히 보여주지 못하면 결론적으로 일은 성사되지 않는다. 출판사 입구에 선 나는 ‘나’를 팔아야 하는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던 거다. 작가는 자영업자이면서 프리랜서다. 자영업자처럼 자신의 글쓰기를 스스로 결정하고 운영해야 한다. 원활한 글쓰기를 위해서는 어.. 2022. 3. 24.
08. 나의 비밀 나무 도서관 가는 길에 ‘나의 비밀 나무’라 부르는 보물 나무가 한 그루 있다. 가든형 숯불갈비집 너른 정원에 있는 나무인데, 주인의 허락도 없이 내 나무라 정했으니 비밀인 것이다. 내 가슴께 높이의 담장 옆에 있어 정원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나무와 가까이서 눈맞춤할 수 있어 다행이다. 도서관 문턱이 닳도록 10년 넘게 다녔으니 나무 옆을 10년은 족히 스쳤을 텐데 나무를 알아본 건 최근의 일이다. 귀한 나무는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고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는 아니므로 귀한 나무라 해야겠다. 이 나무를 처음 만난 건 책벗들과 함께 북촌 한옥마을 골목길을 걷다가 우연히 들어선 중앙고등학교 교정에서였다. 나뭇잎도 다 떨군 11월 즈음이었을까. 특이한 열매를 매달고 있는 이 나무 아래서 정체 모를 나무에 .. 2022. 3. 23.
04. 넘어질 기회 아들은 1월생이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당시에는 1월생, 2월생인 일곱 살짜리가 입학할 수 있었다. 우리 부부는 아이의 성장 속도가 빠르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 몇 년 지나면 나아질 거라고 믿고 입학을 결정했다. 다만 아이가 또래보다 어리니 세심히 돌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릴 때는 몇 개월만 늦게 태어나도 앞서 태어난 아이와 성장 정도 차가 크고, 그만큼 손이 가는 일이 많다. 또래보다 아직 어린아이가 학교를 다니게 되었으니 집에 있을 때보다 신경 써야 할 일이 훨씬 많았다. 그러면서 나는 내가 어떤 일이건 척척 도와주는 엄마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스케이트 장에 갔을 때의 일이다. 난 스케이트를 잘 타지 못한다. 걱정이 많은 성격 그대로 어릴 때부터 스케.. 2022. 3. 23.
03. 무서운 사람 열심히 잡지 기획안을 만들어 출판사로 향했다. 미팅에 가기 전 내 기분은 떨리면서도 마치 전장에 나서는 장수처럼 비장했다. 내 기획안을 출판사 편집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알 수 없었다. 총포가 날아오듯 공격이 들어와 너덜너덜해지면 그간의 노력은 수포가 되어 난 기획안을 다시 짜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내게 무기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내가 왜 그런 기획을 짰는지, 왜 그런 내용과 형식이 필요한지 설명할 내용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과 달리 막상 회의 현장에서는 주장을 강하게 펼칠 수 없었다. 내가 초짜인 게 티가 날까 걱정이 되었다. 나 자신도 우려하고 있는 초짜 작가라는 불안 요소를 상대에게 인지시켜 득이 될 건 하나도 없었다. 한편 내가 출판사로부터 외주 일을 맡은 기획자 ‘을’이었다.. 2022. 3. 22.
07. 애도의 선물로 찾아온 인연 아카시꽃 향기가 흥건하던 더없이 좋은 날에 아버지를 영원히 떠나보내고 나는 골방에 처박혀 보냈다. 보냈다기보다는 견디는 시간이었다. 죽음과 애도에 관한 책을 수없이 읽었지만 막상 내 앞에 닥치고 보니 속수무책이었다. 더디게 가는 시간을 견디며 아버지 사십구재까지 지내고 나서 오랜만에 아래층에 사는 언니를 만났다. 이미 늦었지만 더 늦어지면 서운해할까 봐, 그동안 아버지 장례를 치렀노라고 했다. 순간 언니의 큰 눈이 촉촉해지더니 의자를 가까이 끌어당기며 두 손으로 내 손을 가만히 감싸 안았다. “…….” “그리 큰일을 치렀구나.” “…….” 볼 일을 마치고 밥때가 되어 점심을 먹고 났을 때 언니는 별일 없으면 함께 갈 데가 있다고 했다. 사고 싶은 식물이 하나 있는데 수형을 좀 봐달라며 바람도 쐴 겸 화원.. 2022. 3. 22.
02. 쏟아진 한 끼, 쏟아진 눈물 아기와의 시간은 행복하면서도 힘든 시간의 연속이었다. 갓난아기는 삼시 세끼만 먹는 게 아니다. 서너 시간 간격으로 분유를 먹여야 하고, 수시로 기저귀도 살펴 갈아줘야 한다. 그러니 엄마인 내가 밤잠을 이어서 잔다는 건 생각할 수 없다. 하루하루가 쪽잠이고 선잠이다. 게다가 집안일은 얼마나 서툰지 하루 24시간이 서툰 일과의 사투였다. 저녁은 퇴근한 남편이랑 먹느라 어떻게 준비한다고 해도, 나머지 시간에 나를 위한 식사를 따로 준비한다는 건 생각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뱃속이 이런 사정을 헤아려줄 리 없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배가 고프다는 신호가 강하게 온다. 그런 날이 반복되던 어느 날이었다. 내게도 밥을 줘야 하는데 집에 마땅히 먹을 것이 없었다. 나는 컵라면 하나를 꺼내 들었다. 아기가 자는 틈에 .. 2022. 3. 21.
06. 비켜나 있음의 쓸모 오늘은 어떤 아이에게 물을 줄까? 눈과 귀를 활짝 열고 조심조심 베란다 식물들 사이를 돌아보는데 이번에는 찔레꽃이 말을 걸어온다. 자신은 사고파는 상품이 아니라서 사진 한 번 찍어 주지 않느냐고. 오, 미안 미안해. 서둘러 찔레꽃을 포토존(고등학생 딸이 졸릴 때 서서 공부하는 하얀 스탠딩 책상인데, 가끔 식물을 올려놓고 사진 찍는 포토존으로 이용하고 있다)에 올려놓고 찬찬히 들여다본다. 찔레꽃, 너는 어디서 왔더라? 아, 맞다! 벌써 십 년이 족히 넘었겠구나. 친정집에 갔을 때 일이다. 아침밥 드시라고 밭일하는 아버지를 모시러 논두렁 사잇길을 설렁설렁 걸었다. 마침 아버지가 일하는 밭 옆에는 하얀 찔레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아직 이슬도 채 가시지 않은 살짝 이른 아침, 새소리로 가득한 산골짝에서 .. 2022. 3. 21.
05. 나의 친애하는 나무에게 전하는 말 도시에 살면서 나는 자작나무와 사랑에 확 빠졌다. ‘도시에 살면서’라는 말은 내가 살던 시골에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는 뜻이다. 있었다 해도 그때는 관심 밖이었을 것이다. 잔가지 없이 곧게 뻗은 몸통을 감싼 하얀 수피, 잎자루가 길어 여린 바람에도 파샤샤파샤샤 팔랑이는 연초록 이파리들, 그리고 무엇보다 이파리 뒷면에 살짝 숨겨둔 은빛의 찰랑거림. 자작나무는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품이었다. 처음 본 순간부터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나무는 단연코 자작나무였다. 누군가를 천천히 알아갈 무렵 자작나무를 좋아한다는 사실에 그 사람이 확 좋아졌고, 우리는 자작나무에 대해 길고 긴 수다를 떨기도 했다. 강원도 인제의 자작나무숲을 다녀와서는 나중에 꼭 함께 걷자는 약속도 했다. 누군가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봤다던가,.. 2022. 3. 19.
04. 뒷모습을 보는 일 영화 을 보고 나는 꽤 오랫동안 열병을 앓듯 얼이 빠져 있었다. 영화가 너무 아름다워서 쉬이 잠들지 못하고, 도무지 알 수 없는 물음들이 장대비처럼 쏟아져 난감했다. 영화가 끝난 지 오래건만 여전히 선연한 이미지가 시도 때도 없이 눈앞에 펼쳐졌고, 어느 날은 주인공 유미코가 되어 비바람이 몰아치는 바닷가에서 미친 여자처럼 울부짖듯 울고 있는 나를 만나기도 했다. 유미코와 남편 이쿠오의 행복한 일상이 봄날처럼 흘러간다. 갓 태어난 아기의 옹알이와 함께. 오늘 아침도 이쿠오는 여느 때와 같이 아내 유미코의 다정한 배웅을 받으며 출근한다. 유미코는 집 앞에서 남편이 주택가 골목길을 빠져나갈 때까지 남편의 뒷모습을 좇는다. 남편은 한 번인가 아내를 향해 돌아보고는 아침의 밝은 빛 속으로 사라져 간다. 그리고 그.. 2022. 3. 18.
01. 연봉 200입니다만 지나고 나면 부끄러운 일이 어디 한두 가지일까?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부끄러운 사건들이 여러 상황에서 생겨났다. 우선 의욕적으로 시작했던 글쓰기는 턱없는 글쓰기 실력 탓에 제대로 앞으로 나가지 못하기 일쑤였다. 게다가 임신과 출산이 이어지면서 점점 더 글을 쓰기 힘들었다.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었다. 임신과 출산을 경험한 사람들은 알 거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입덧과 자도 자도 밀려오는 졸음, 나중에는 잠을 제대로 자기 힘든 괴로움을. 아기의 탄생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기쁨이었지만 퇴원 후 집에 들어선 순간부터 전쟁 같은 하루하루가 이어졌다. 힘들어서 직장은 그만두었지만 글쓰기는 이어가고 싶었다. 성실하게 글을 쓰겠다는 다짐도 여전히 유효했다. 아쉬운 것은 마음속 다짐과 달리 결과가 너무 미미하다는.. 2022. 3. 18.
00. <너 오랫동안 이런 걸 원하고 있었구나> 연재 예고 꼬꾸라져도 그 순간 나를 잡아주는 것이 있다면 “어른이 되면 나아질 거야.” “언제 어른이 되는 걸까?” “어른이란 어떤 사람을 말하는 걸까?” 어른이지만, 여전히 성장 중인 우리에게 작가는 ‘나 또한 그러하다’고 자신의 지난 이야기와 지금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가정과 사회에서 온전히 한 사람 몫을 하며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우리에게 따뜻한 응원과 격려를 보낸다. 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부딪히기도 하고, 상처를 주거나 받기도 한다. 가족처럼 너무 가깝거나 잘 알아서 그러고, 때론 너무 뭘 몰라서 그런다. 상황과 상대를 원망하고, 자신을 자책하기도 하다 ‘어른이 되면 나아질 거야’라고 마음속으로 자신을 다독여본다. 하지만 쉽사리 어른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어른이 된다는 건 무엇이며, 어른은 완벽.. 2022. 3. 17.
03. 죽은 화분에 3년 동안 물을 주다. 꽃집에서 화분에 자라는 오죽을 보고 한눈에 반해버렸다. 거죽이 까만 가느다란 대나무가 그저 국숫가락마냥 몇 가닥 서 있는데 어찌 그리 우아하고 기품이 있던지! 머리로는 빈약하기 짝이 없다 생각하는데 마음으로는 독특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왔다. 안도현 시인의 시집 『외롭고 높고 쓸쓸한』의 제목 같은 그런 이미지라면 좀 설명이 될까? 그런데 선뜻 사지 못하고 아쉬움만 가득 안고 돌아왔다. 빠듯한 살림으로 가격이 만만치 않은 화분에 큰돈을 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이미 마음을 홀딱 빼앗긴 터라 포기할 수도 없었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린 끝에 생일선물로 오죽을 데려오게 되었으니 아침저녁으로 가까이 살피고 오래도록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았다. 바람이라도 불면 검은 대나무가 몸을 흔드는 소리인가 싶어 귀.. 2022. 3. 17.
02. 시간을 가장 우아하게 잃어버리는 방법 우리 집 현관을 나서면 1분 만에 도착하는 오솔길. 아파트가 아니라면 우리 집 마당이나 다름없는 곳.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볼 만큼 높이 자란 나무들이 아치를 이루어 내가 나무 터널이라 부르는 곳. 이 숲길을 매일 걷고 또 걷는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감사의 마음이 쌓인다. 자연이 누구의 소유가 아니라서, 시간을 내어 눈길을 주는 누구에게나 공평한 자연이라서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자연에 대해 각별히 놀라워할 줄 아는 눈을 가진 나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나는 오늘도 자연에 깃든 하늘, 바람, 나무, 풀, 새들, 고양이와 눈 맞춤 하느라 느릿느릿 걷는다. 느린 걷기는 내가 시간을 가장 우아하게 잃어버리는 방법이다. 햇살 좋은 날에는 그림자와 함께 걸었고 눈이 오는 날에는 설렘으로 걸었다. .. 2022. 3. 16.
10. 파리_상젤리제 거리에서 죽다. (마지막 회) 어디에서든 벤치에 앉아 상념에 잠길 때면 나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몇 가지 장면이 있다. 하나는 스페인 영화 . 매혹적인 미망인에게 빠져 자기만을 바라보는 여인을 죽일 마음을 품게 되는 남자. 오래된 연인이 앉은 벤치 아래로 하나둘 떨어지는 핏방울. 붉게 번져가던 치명적인 욕망의 끝. 다음으로 고독하기 이를 데 없는 대만 영화 . 그 마지막처럼 벤치에 앉아 울었던 적이 있다. 그들도 나도 언제나 홀로 남겨지던 삶.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장면. 눈 내리는 공원 벤치에 앉아 ‘마치 대단한 밤이 다가오는 것처럼’ 하품을 하고 또 하는 남자. “그래, 돌아갈 시간이야. 안 그러면 문이 닫힐 거야.” 천천히 밤이 오고, 그는 그 자리에서 눈사람이 되어 죽음을 맞는다. 외덴 폰호르바트의 소설 『우리 시대의 아이』는 .. 2022. 3. 16.
01. 창이 있는 부엌으로의 여행 내 집은 없지만 나만의 풍경을 품은 부엌 창이 있다. 오늘 표정은 햇살을 가득 머금고 무꽃처럼 방긋 웃고 있다. 눈 내리는 표정도 좋고 비가 내리는 날엔 비가 내려서 좋고 바람이 몰아치는 날이면 바다의 파랑 같은 나무의 출렁거림이 좋다. 감각할 수 있어서 좋다. 창턱에는 단아한 옹기 항아리와 보랏빛 나팔꽃과 다섯 살 딸이 빚은 고양이 도자기와 바닷가에서 주워온 조개껍데기와 돌멩이, 메타세쿼이아 열매로 만든 줄 커튼. 창 너머로는 버드나무, 아그배나무, 벚나무, 메타세쿼이아, 얼마 전에 이사한 건물 옥상 위의 고양이 가족. 저 멀리 자그마한 숲. 내 집이 아니어도 부엌 창이 있는 집이라면 그런대로 괜찮다. 1794년에 쓰인 드 메스트르의 『내 방 여행하는 법』은 지금 읽어도 흥미롭다. 아니, 어쩌면 여행과.. 2022. 3. 15.
09. 오베르 쉬르 우아즈_까마귀 나는 언덕 걸어서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작고 다정한 오베르의 오후. 고흐의 그림 속 배경이 되었던 오베르 성당은 공사 중이고, 시청사는 12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림과 똑같은 모습으로 라부 여관 앞에 서 있다. 관광안내소 옆에선 주말장터가 한창이고, 소박한 집들의 마당엔 들꽃 향기 가득하고, 마주치는 주민들은 수줍고도 상냥하다. 파리에선 이렇게 조용히 얘기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었다. 이슬비 왔다 간 잿빛 거리. 추위에 오스스 떨며 바람 속을 걸어 오른 언덕. 묘지 앞에 한참을 앉아 있다 고흐의 마지막 그림으로 알려진 의 배경 앞에 섰다. 황금빛 밀밭 대신 잡초뿐인 들판이 펼쳐져 있고, 맞은편의 옥수수밭은 수확도 하지 않은 채 까마귀들이 쪼아 먹은 흔적만 남아 있다. 그 속에 외롭게 서 있는 고흐의 그림 안.. 2022. 3. 15.
00. <겨우 존재하는 아름다운 것들> 연재 예고 제님 식물 에세이 책 모임에서 떠난 1박 2일 모꼬지에서 한 후배가 말했다. “나도 제님 언니처럼 한들한들 도서관 다니고 그림책 보며 여유롭게 살고 싶어.” 뜻밖이었다. ‘사람들에게 내가 그리 보였구나.’ 나는 할 말을 잃고 그저 빙그레 웃었다. 그 당시 나는 불행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었으니까. 나의 속내를 얘기하자면 1박 2일이 아니라 며칠 밤으로도 모자랄 테니까. 아이와 그림책으로 더없이 행복한 시절을 보내고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그즈음부터 나는 내내 불행하기 시작했다. 더 정확히는 생각 속에서 온통 불행했다. 육아를 핑계로 잠깐 미뤄두었던 나의 꿈은 어찌해볼 도리 없이 멀리 달아나 있었고, 동시에 엄습하듯 찾아온 공허와 불안은 얄팍한 자존감마저 추락시켰다. 하루하루 열심히 성실하게 살면 지.. 2022. 3. 14.
08. 베네치아_물 위의 도시에서 어느 날과 그 다음날. 그 둘이 완벽하게 다른 날이 되기도 한다. 가까이 존재하던 이가 갑자기 세상에서 사라졌을 때, 나는 이전의 나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래도 삶은 계속되고, 그래서 나는, 달라진 나인 채로 여행을 떠났다. 1년 전에 숙소를 예약해 둔 곳이 두 번째 찾는 베네치아였고, 하필 찬 바람부는 가을이었고, 늦은 오후 산타 루치아 역에 도착해 어두운 호텔 방에서 불면의 밤을 보내고 나니 도시가 바닷물에 잠겨 있었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아쿠아 알타(Acqua alta)인가. 전날의 베네치아와 완전히 다른 베네치아에서, 나는 어디로 향하든 막힌 길을 돌아 오래도록 걸어야 했고, 무엇을 하든 물 위에 서 있어야만 했다. 그래도 삶이 계속되었던 것처럼, 그래도 어딘가에 길이 있었다. 이러다.. 2022.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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