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시·에세이205

07. 그런 게 바보라면 나는 기꺼이 바보가 되겠어. 회사에서 일을 하는 동안, 그리고 회사를 운영하면서 나는 가끔 시험에 든다. 특히 내가 해외 생활을 시작할 당시에는 거래를 하는 사람에게 선물이나 사례금을 주는 것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지던 때였다. 그중 홍콩은 중국의 전통적 문화를 지키고 있으면서도 영국 문화의 영향을 받아 비즈니스 매너와 지역의 관행이 혼재되어 있었다. 이를 동과 서가 만났다 하여, 쭝시합빅(中西合璧)이라는 용어로 표현한다. 그러다 보니 붉은 봉투에 돈을 넣어 주는 문화가 있고, 오래 두고 쌓은 친분을 뜻하는 꽌시(系关) 문화도 강력하게 남아 있다. 회사에서 비즈니스로 만난 사이라도 기념일이나 특별한 날에 선물이나 상품권을 주고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한번은 내가 만난 거래처 직원이 작은 사례라며 봉투를 건넸다. 나는 으레 주고받는 .. 2022. 9. 5.
06. 우리가 널 기억하는 동안에는, 넌 살아 있는 거야 홍콩은 강아지 입양 절차가 까다롭다. 우리나라에서는 별다른 절차 없이 유기견을 데려올 수도 있지만, 홍콩에서는 유기견 입양을 위해 여러 서류를 제출해야 하며 절차도 복잡하다. 서류는 물론 인터뷰도 까다로워서 입양 희망자들의 인내심을 여러 번 테스트한다. 서류에서는 끊임없이 나를 테스트한다. “큰 개는 얼마나 키워 봤습니까?” “이 강아지가 살 집은 몇 평입니까?” “당신이 일을 하는데 강아지 산책은 누가 시킬 것인가요?” “하루 몇 번이나 산책을 시킬 수 있나요?” “당신의 가족 모두 강아지 입양에 찬성합니까?” 까다롭다 싶었지만 요는 ‘당신이 얼마나 이 강아지를 간절하게 원하는가’를 묻는 것이다. 홍콩은 강아지 봉사와 입양에 있어 꽤 엄격한 편이다. 다행히 코코는 큰 어려움 없이 우리 가족의 품으로 왔.. 2022. 9. 4.
05. 우리는 언제 죽을까? 우리는 언제 죽을까? 심장이 멈출 때? 혹은 뇌사에 빠질 때? 아니면 사회에서 내 존재가 잊힐 때? 어떤 순간을 죽음으로 보는가 하는 문제는 우리가 삶을 무엇으로 보는가 하는 문제와 연결된다. 나는 단순히 육체 기능의 멈춤을 죽음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몸은 없어지더라도 우리는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계속 살 수 있다고 믿는다. 어쩌면 그렇게 믿어야만 내가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견딜 수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삶은 덧없지만 죽음 후는 다를 거라는 말에 기대어 본다. 디즈니, 픽사의 애니메이션 〈코코〉는 ‘죽은 자의 날’을 배경으로 이루어진다. 죽은 자의 날이라고 하면 우리나라의 제사가 생각나지만, 경건한 우리나라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멕시코의 그것은 명절이자 축제다. 화려한 색으로 장식한 해골과 촛불로 무덤을.. 2022. 9. 2.
04. 대개 행복하게 지내는 사람들은 게으름뱅이보다는 노력가다. 신입 사원 때 나는 여자로서는 유일하게 중국으로 발령을 받았다. 나만큼 중국어에 능통한 사람이 많지 않은 덕분이었다. 나는 신입 사원 때부터 공장이 좋았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재료들이 조합되어 가방도 되고 인형도 되는 것이 퍽 신기했다. 그래서인지 나만큼 공장에 자주 드나드는 사원도 없었다. 한번은 거래처에 제품을 확인하러 갔다. 거래처에는 한국 사람들이 있었고, 나는 오랜만에 본 한국인들이 반갑고 믿음직스러웠다. 게다가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중년의 아저씨들이었기에, 나는 막연히 그들에 대한 믿음을 가졌다. ‘어른이니까. 거짓말을 하지는 않겠지.’ 제품의 품질을 확인하는 자리였기에, 나는 공장 제품 창고에서 랜덤으로 제품 24개가 들어간 포장 박스 하나를 집어 들어 제품을 확인했다. 품질에 특별한 이상이.. 2022. 8. 28.
03. 즐기는 사람은 더 오래 더 멀리까지 갈 수 있다. 내가 어릴 적에 아버지는 해외 출장이 잦았다. 집을 비우는 게 미안하셨는지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나를 위해 인형이나 장난감을 사 오곤 하셨다. 미키 마우스와 미니 마우스 인형, 톰과 제리가 그려진 필통, 뽀빠이 아저씨 가방, 걸을 때마다 삑삑 소리가 나곤 했던 도날드 덕 신발 같은 것이 기억난다. 당시에는 해외 캐릭터가 우리나라에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나는 각각의 캐릭터에 입혀진 내용을 알지 못했다. 대신 내 마음대로 상상력을 발휘해 이야기를 만들고, 인형을 가지고 놀았다. 미키와 미니는 항상 다정하게 함께 있으니 좋은 친구 사이일 거야. 우리 엄마 아빠처럼 부부인가? 어른이 되고 나서야 어릴 때 내가 가지고 놀던 캐릭터들에 저마다의 스토리가 있다는 걸 알았다. 1918년에 탄생한 영리하고 호기심 많고 .. 2022. 8. 26.
02. 이방인으로서의 삶이, 이제 시작되었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은 엄격하고 보수적이었다. ‘넌 잘난 부모님을 닮아야지.’, ‘넌 말 잘 듣는 착한 아이잖아.’ 처음엔 칭찬을 받는 게 좋아서, 그다음에는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그다음에는 잘하지 않으면 사랑받지 못할 것 같아서 열심히 했다. 공부도 잘하면서 부모 속 썩이지 않는 눈치 빠른 아이가 되었다. 어른의 눈을 가진 아이에게는 상처가 보인다. 부모님이 다른 사람에게 나를 자랑할수록, 나는 우쭐하면서도 짓눌렸다. 앞으로도 잘해야 하니까. 나는 그 흔하다는 사춘기도 겪지 않았다. 그렇게 자라다 보니 마음속에는 부모님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갈망이 생겼다. 대학에 가는 건 그런 내가 자유로운 세상으로 나가는 첫 발자국이었다. 그런데 집이 이렇게 된 이상, 대학에 갈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었다. 지.. 2022. 8. 24.
01. 그날은 여느 날과 다르지 않았다. 고등학생 때였다. 그날은 여느 날과 다르지 않았다. 학교에 갔고, 단짝 친구와 매점에서 보름달 빵과 초코 우유를 사 먹었고, 화학 선생님 수업은 여전히 지루했고, 대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틀에 박힌 잔소리를 들었다. 그러니까 우리 삶에서 불행한 일이 일어날 때 드라마에서 보여 주는 그런 조짐은 없었다. 까마귀가 날아가지도 않았고, 등굣길에 검은 고양이를 본 것도 아니었으며, 컵을 깨뜨리지도 않았다. 지독히 평범한 일상이 오히려 답답하게 느껴지는 하루였다. 수업이 끝나 집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다녀왔습니다.” 집 문을 열었을 때 어지러운 집 안에서 먼저 보인 건 곳곳에 붙은 빨간 딱지였다. 빚을 갚지 않았을 때 소유자의 재산에 대한 가압류를 표시하는 빨간 딱지. 그걸 실제로 본 건 처음이었다. 하루아침.. 2022. 8. 22.
00. <같은 파도는 다시 오지 않아> 연재 예고 오늘 치는 파도는 내가 인생에서 만날 수 있는 딱 한 번의 파도니까 오늘 치는 파도는 내가 인생에서 만날 수 있는 딱 한 번의 파도니까 인생의 대부분은 일을 하는 시간으로 채워진다. 우리의 시간에서 일을 떼어 내기란 어렵다. 삶에서 일을 분리할 수 없다면 중요한 건 그 시간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보내느냐이다. 일을 할 때 즐거움을 느낀다면 우리의 시간은 즐거움으로 가득 차지만, 일을 부정적인 마음으로 대한다면 많은 시간이 부정적인 감정으로 채워진다. 『같은 파도는 다시 오지 않아』의 저자 김은정은 일을 할 때 행복을 느낀다고 말한다. 『같은 파도는 다시 오지 않아』의 저자는 아버지가 출장을 갔다가 사 온 캐릭터 상품들로 가족 역할 놀이를 하던 소녀였다. 저자는 어릴 적 친구였던 캐릭터들과 함께 나이를 먹으.. 2022. 8. 19.
10. 모성에 대한 당위성 (마지막 회) “아기는 누가 돌봐?” 많은 심리이론에서 엄마의 역할을 강조하고, 최근에는 그것을 엄마든 아빠든 할머니든 ‘주양육자’로 바꾸어 이야기하려는 움직임이 있기도 하나 여전히 우리는 그것이 엄마를 이야기함을 알고 있습니다. ‘엄마의 양육 태도가 아이의 성격과 발달에 영향을 준다, 엄마가 어떻게 그런 말을? 엄마라면 할 수 있지!’라는 말들은 그 엄마가 내가 되고 보니 무겁고 나를 속박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더 괴로운 것은 그 이론들이 없는 말을 하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제가 현장에서 보고, 듣고, 배우며 경험한 것은 부모의 양육 태도가 중요함을 드러냈습니다. 기질 등 선천적 특성과 다른 환경적 요인을 배제할 수 없으나, 주 양육자와의 양적인 시간과 질적인 상호작용 모두 무척 중요합니다. 그러면 어쩌.. 2022. 8. 19.
09. 산후우울을 사회문화적으로 이해하기 여성과 엄마됨 - 우리는 왜 엄마가 되려 하는가 엄마가 되기 전에 엄마가 되고자 하는 이유를 충분히 생각해 보셨나요? 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나이가 차니 결혼하고, 남들이 낳으니 낳고 싶었습니다. 엄마가 된다는 것이 내 남은 인생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지, 엄마로서의 24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구체적으로 알아볼 생각도 못 했습니다. 육아서적을 읽는 동안에 육아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면 좋았을 텐데요. 물론, 미리 듣고 아예 출산을 단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각자의 선택이지요. 오나 도나스는 저서 《엄마됨을 후회함》을 통해, 충분한 고민 없이 엄마가 되기로 하는 것을 ‘수동적 결정’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엄마가 되기를 바라는지, 엄마가 되면 자신에게 어떤 결과가 올지를 생각해 보지 않은 상태에서 .. 2022. 8. 18.
08. 경력 단절, 엄마라면 감수해야 하나요? 우리는 무엇을 잃었나 임신하자마자 직장에서 재계약이 배제됩니다. 연 단위 계약직이었기에 육아 휴직을 바라지도 않았지만, 재계약에서 배제된 일은 사회에서 여성의 임신이 어떻게 다루어지는지 알게 된 경험이었습니다. 돌아갈 곳도, 나를 기다리는 곳도, 나를 필요로 하는 곳도 잃는 기분입니다. “엄마가 되기 전에 상담 공부를 시작해서 좋겠어. 젊으니까 교수도 될 수 있을 거야”라는 말은 기대감과 함께 부담감을 주는 말이었습니다. 상담사로서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을 정도의 자격을 취득하려면 수백 시간 이상의 수련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과정은 대부분 주말이나 저녁에 이루어지고 한 번에 장시간 진행됩니다. 주말에 아이를 맡기고 공부하러 간다? 최소한 10년 후에 가능할 것처럼 요원하게 느껴집니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2022. 8. 17.
07. 나의 감정을 명확히 바라보는 법: 알아차림 출산 후 감정에 귀 기울이기 감정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시나요? ‘넌 너무 감정적이야’ 혹은 ‘감정적으로 대해서는 안 돼’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우리는 이성보다 감정을 부정적이고 통제해야 할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감정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을 미성숙한 사람으로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칭찬받았을 때 ‘뿌듯해하면서도 민망해하고, 칭찬받지 못한 다른 이를 신경 쓰는 개’나 ‘아름다운 것을 보고 황홀함을 느끼면서도 이것이 또 사라지겠구나 싶어 씁쓸해하는 원숭이’를 보신 적이 있나요? 고도로 발달한 감정은 인간의 전유물입니다. 물론, 동물에게도 감정이 있습니다. 혐오, 공포, 기쁨, 불안과 같은 원초적 감정입니다. 감정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현상이나 일에 대해 일어나는 마음이나 느끼는 기분’입니다. 억.. 2022. 8. 16.
06. 우울한 사람들의 공통점? 산후 우울증을 심리적으로 이해하기 ■ 역기능적 신념과 산후 우울 벡(Beck)의 ‘인지 이론’은 우울증을 설명하는 가장 대표적인 이론입니다. 그에 따르면 우울한 사람들은 ‘자기, 미래, 세상’의 세 가지 주제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지닙니다. 첫째, 자기에 대해서 결점이 많고 부적절하며, 무가치하고 사랑받지 못할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둘째, 미래에 대해서는 비관적이고 현재의 어려움이 지속될 것으로 여깁니다. 셋째, 세상에 대해서는 세상과 타인이 자신에게 적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산후 우울증에서는 ‘나는 모성애가 부족하고 엄마의 역할을 해내지 못하는 게으른 엄마, 자유가 제한적인 나날이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생각, 다른 사람은 다 잘하는데 나는 어딘가 부족하다고 평가받을 것 같은 두려움’이 벡의 우울에 .. 2022. 8. 15.
05. 산후 우울증에는 무조건적 000 00이 필요하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보건소에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있다는 말에 문의 후, 난생처음으로 아이를 안고 버스에 올랐습니다. 상담까지 어떻게 기다렸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희망을 품고 그 간극을 버티며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버스에 올랐을 것입니다. 상담 시간이 되어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질끈 묶고 뒤돌아보니 아이가 엎드려 “엄마, 나 뒤집기 한 거 봤어요” 하듯이 아주 귀엽고 해맑은 얼굴로 고개를 세웁니다. 시간은 그렇게 흐르고 있었습니다. 죽을 것 같이 무너지는 시간에도 나는 아이를 키우고, 아이는 자라고 있었습니다. 낯선 공간에 들어서 낯선 사람을 만나자 아이는 여지없이 울기 시작합니다. 엄마도 울고, 아이도 울고. 아기 띠를 한 상태로 아이를 달래며 푸근한 인상의 남자 선생님께.. 2022. 8. 14.
04. 대상관계 이론으로 바라보는 부모와 자녀 사이 이만하면 충분한 엄마 노릇이라고? 결혼 전 인간의 심리적 어려움과 성장을 이야기하는 여러 가지 심리치료 이론 중 좋아했던 것은 ‘대상관계 이론’이었습니다. 조금이라도 심리학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프로이트를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개인의 내적 욕동에 관심을 가졌던 프로이트 이론을 ‘한 사람 심리학’이라고 부른다면, 대상관계 이론은 ‘두 사람 심리학’이라고 부릅니다. 모든 인간이 선천적으로 지닌 관계 욕구를 기본으로 가정하고, 유아가 태어난 이후 주 양육자와 관계를 맺으며 세상에 대한 이미지, 관계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해 나간다는 이론입니다. 제가 이 이론을 좋아한 이유는 유아의 출생 시점부터 내면에서 일어나는 단계적 변화와 관계 속에서의 경험을 매우 섬세하고 신비롭게 그려내고,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 많은 점.. 2022. 8. 13.
03. 출퇴근 시간도, 연차도, 복지혜택도 없는 풀타임 직업? 수습 기간 없이 담당자가 되다 회사에 신입으로 들어가면 수습 기간이 있습니다. 이 기간에 선배들이 하는 일을 지켜보며 쉬운 일들을 하나씩 시작하고, 점점 맡는 일의 비중이 커지며 한 사람의 몫을 해내게 됩니다. 경력직으로 새 직장에 입사해도 인수인계를 받는 기간이 있습니다. 직전 담당자가 당일에 말도 없이 퇴사하는 어처구니없는 경우가 아니고서는 짧게라도 거치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일에 적응할 마음의 준비운동을 합니다. 제 육아에 그런 시기가 있었나 돌이켜봅니다. 없던 것 같습니다. 모자동실을 쓰며 바로 담당자가 되었지요. 조리원이든 도우미든 가족이든 누군가의 도움을 받던 조리 기간이 수습 기간이 될지 모르겠으나 저에게는 모자동실을 경험한 충격이 수습 기간 없이 담당자가 된 걸로 느껴지게 합니.. 2022. 8. 12.
02. 초보 엄마들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이것? 잦은 상향 비교는 독이 된다 자신이 향상되고자 하는 욕구가 있을 때 하는 행동으로 ‘비교’가 있습니다. 그중 자신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사람과의 비교를 ‘상향 비교’라고 합니다. 그러나 연구에 따르면, 상향 비교는 타인과 자신의 차이점을 인식하게 해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기도 하지만, 비교를 자주 경험하는 사람은 우울감이 높고 행복 수준이 낮으며, 자신을 열등하게 여겨 부정적인 자아상 형성과 미래에 대한 절망으로 이어지게 한다고 합니다. 열등감은 남과 비교함으로써 자신을 부족하고 가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이므로 상향 비교가 자주 이루어질수록 상승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갑자기 연구 결과를 언급하는 이유는 위의 과정이 우울로 향하는 지름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갓 엄마가 되어 잘한다고 할 만한 .. 2022. 8. 11.
01. 우리가 우울한 이유: ‘자기불일치 이론’ 엄마 되기를 책으로 공부하다 심리학에서 우울을 설명하는 이론 중 ‘자기불일치 이론’이 있습니다. 실제 자기와 당위적(의무적) 자기의 차이가 크면 불안이, 실제 자기와 이상적 자기의 차이가 크면 우울함이 생긴다는 이론입니다. 저는 실제로 어떤 육아를 하게 될지 객관적 인식과 정보가 없는 상태로 이상적 자기와 당위적 자기를 형성해 나갔습니다. 그때부터 우울과 불안이 예고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이 균열은 임신 기간에도 일어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임신하며 사회활동이 줄고 집 안에서 핸드폰으로 타인의 SNS를 훑는 시간이 늘었습니다. 부른 배를 비스듬히 누이고 그것들을 보며 저의 순간을 초라하게 여겼고, 또 어떤 날은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과 불안이 엄습해 남편에게 “기저귀는 어떻게 가는 거지? 나 하나도 모르.. 2022. 8. 10.
00. <저 산후 우울증인 것 같아요> 연재 예고 좋은 엄마를 꿈꾸던 어느 심리 상담사의 산후 우울 극복기 예고 없이 찾아온 산후 우울증,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까? 임신, 출산, 육아로 낯선 시간을 경험하고 있는 엄마들을 위한 위로 산후 우울증은 주산기(周産期, 출산 전후 기간), 즉 임신이 모든 기간에서 출산 후 4주 이내에 발생한 우울증을 말한다. 우울감, 심한 불안감, 불면, 의욕 저하 등의 증상을 경험하며, 심각할 경우 자살이나 죽음에 대한 생각으로도 이어진다. 산모 10명 중 2명은 명확한 원인조차 밝혀지지 않은 산후 우울증으로 고통받고 있다. 전문적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질병임에도, 여전히 사회적인 인식은 부족하다. ‘엄마라면 응당 감내해야 하는 고통’ 정도로 여겨졌고 그 사이 엄마들은 외롭게 우울감에 잠식당하고 있다. 《저 산후 우울.. 2022. 8. 9.
05. 국대, 그 남자들의 모든 것 (마지막 회) 선수들은 늘 TV와 온라인에 등장하고 팬들은 이를 통해 선수들을 본다. 누군가는 경기장에서 만나기도 한다. 경기장과 관중석, 모니터와 경기장, 딱 그 정도만큼의 거리감이 선수들과 대중 사이에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선수들은 자신이 가진 모든 모습을 다 보여줄 수 없고, 팬들도 선수들의 진면목을 발견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래서 한 번쯤 내가 본 그들의 모습을 가감 없이 담아보고 싶었다. 비록 내가 사람을 보는 안목이 부족하지만 대중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면모를 전할 수 있다면 팬들이 선수들에게 관심과 애정을 갖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에서다. 선수단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선수들이 모인다. 이들은 팀을 위해 한 몸으로 움직이지만, 각자의 개성과 생각으로 호흡하고 있다. 그들과 함께하면서 팀이라는 이름으로는.. 2022. 8. 2.
04. 대표팀이 소집됐을 때 선수들은 어떻게 시간을 보낼까? 대표팀이 소집됐을 때 선수들은 어떤 활동을 하면서 시간을 보낼까. 스케줄표를 보면 딱 두 단어만 보인다. 밥과 훈련. 생각보다 꽤 단조롭고 여유 있게 보이겠지만, 행간에 숨어 있는 스케줄은 빼곡하다. 밥과 밥 사이에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아도 선수들은 나름의 훈련과 공부로 시간을 채워나간다. 그들의 자기관리는 무서울 정도다. 선수들마다 생활습관, 훈련법 등은 차이가 있다. 회복 훈련 때 아이스 배스(Ice Bath), 얼음통에 들어가는 훈련을 하는 선수와 하지 않는 선수, 훈련 전에 테이핑(Taping)을 하는 선수와 하지 않는 선수, 훈련 전 간식을 먹는 선수와 먹지 않는 선수, 휴식시간에 낮잠을 자는 선수와 자지 않는 선수 등등 개인별로 자기만의 루틴이 명확하다. 그래서 훈련과 체력 단련에서 선수들의.. 2022. 7. 30.
03. 음지에서 일하며 양지를 지향한다? “동일 쌤, 방호복 소매 끝에 있는 고리를 엄지손가락에 걸어주셔야 해요.” “아 그렇군요. 이게 참 익숙하지가 않아서….” 신동일 조리사는 내 말대로 소매 끝의 고리를 잡아서 엄지손가락에 끼웠다. 그의 얼굴에 벌써 땀이 하나둘씩 맺혔다. 그는 나와 함께 방호복과 보호장구를 착용하는 순서를 하나하나 사진 찍는 중이었다. 내가 단계별로 방법을 설명하면 그에 맞춰서 신동일 조리사가 실행해 주고 나는 그 모습을 찍었다. 오스트리아 원정 때 귀국을 앞두고 선수들과 스태프들에게 방호복과 보호장구를 착용하는 방법을 설명해야 하는데, 이 방법이 제법 복잡해서 말보다는 사진을 찍기로 한 것이다. 신동일 조리사는 내 부탁을 받고 기꺼이 이 과정에 참여해 주었다. 1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땀을 뻘뻘 흘리면서 속장갑을 끼고,.. 2022. 7. 28.
02. 속마음이 따뜻한 원칙주의자 _파울루 벤투 감독 “아니, 도대체 어떻게 관리를 하는 거죠?” 내가 벤투 감독을 처음으로 진료하고 나서 한 말이다. 그동안 몸 관리를 꽤 잘하는 선수들을 만나봤지만 모든 수치가 그처럼 표준에 가까운 사람이 있을까 싶었다. FM(Field Manual)의 약자. 군대에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현장 매뉴얼처럼 원칙 그 자체라는 의미, 표준 중에서 진짜 표준. 벤투 감독에 대한 첫 정보는 이렇게 내 머릿속으로 파고들었다. 그와 내가 진료실에서 만난 이유는 감독 부인의 진료 때문이었는데, 2020년 6월경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세브란스 병원은 2019년 10월에 KFA와 협력병원 협약을 체결했으며, 이에 따라 KFA에서 의뢰한 KFA 관계자들의 진료를 담당하고 있다. 윤영설 당시 의무분과위원장을 통해 벤투 감.. 2022. 7. 27.
01. 007 작전보다 은밀한 소변 작전 “어제도 환자가 많았는데, 오늘도 마찬가지라 힘드시겠어요.” “괜찮습니다. 휴가 때문이니까요.” “이왕 가시는 휴가인데 푹 쉬다 오세요.” 간호사는 내가 쉬려고 휴가를 낸 것이라 알고 있으나, 굳이 정정하지 않았다. 어차피 밝힐 수 없는 비밀 일정이므로. DCO는 축구 경기 일정에 따라 도핑 테스트를 위한 출장을 간다. 도핑은 AFC와 FIFA 주관 경기, A매치, 프로팀 경기 등 모든 경기에서 실시될 수 있는데, 매번 하진 않고 경기의 중요도를 고려해서 실시 여부가 결정된다. 갑작스러운 제보를 통해 테스트가 결정될 때도 있다. 출장지는 그야말로 전 세계다. DCO가 언제, 어디에서, 누구의 도핑 테스트를 하는지는 비밀에 부치는 게 원칙이다. FIFA와 AFC는 출장 스케줄을 출발 2주 전쯤에 DCO에게.. 2022. 7. 26.
00. <로드 투 카타르> 연재 예고 축구 국가대표 팀닥터의 Goal! 때리는 좌충우돌 분투기 연세대학교 신촌세브란스병원 노년내과 교수이자 FIFA/AFC의 메디컬 오피서/도핑 컨트롤 오피서, 남자 축구 A 대표팀 팀닥터. 저자의 이력은 대략 이러한데 한마디로 정리하면 바로 이것이다. 축구를 좋아하는 열혈남아. 환자를 치료하고 의과대학생들을 가르치는 본업에만 충실해도 일신에 크나큰 어려움이 없으련만 축구를 너무나 좋아해서, 자기가 좋아하는 세상에 눈곱만큼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서 동분서주하였다. 이 책은 그에 대한 기록이다. 일인다역으로 고군분투하는 한 인간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는 것도 흥미롭지만 그 외에도 읽을거리가 풍부하다. 노년내과 교수로 일하던 저자가 축구 세상에 발을 디디게 된 계기, 열정 하나로 좌충우돌하면서 ‘오지라퍼’ ‘또라이.. 2022. 7. 25.
05. 비늘구름 뜨는 오후 (마지막 회) 엄마, 잘 지내고 있죠? 그렇게 보고 싶어 하던 할머니랑 이모 만나 방방곡곡 여행 다니시느라 정신이 없겠어요. 언니들 만나서 엄마 계시는 곳에 갔더니 안 계시는지 “아이고, 우리 딸내미들 왔나?” 한마디 말이 없더군요. 그래도 우린 섭섭하지 않아요. 엄마가 놀러 갔다고 여기니까요. 엄마, 탁 트인 하늘 보니 속이 시원하지요? 생전에 아들 없어 말도 못 하시고, 울산 이모 묘를 그렇게 부러워하시는 모습에 참, 마음이 무거웠어요. 말로는 한 줌의 재로 만들어 흔적도 없이 새 모이가 되게 뿌려 달라고 하더니, 말씀하셨으면 될 걸 혼자 속앓이를 한 것 같아 마음이 아팠어요. 엄마가 아주 좋지 않을 때 엄마 갈 곳도 정해 뒀다는 말에 내 집도 마련해 뒀냐며 그리 반갑게 웃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마음에 드셨.. 2022. 7. 19.
04. D라인의 여유 온천천을 걸었다. 사람들이 갑자기 내리는 비 때문인지 모두 종종걸음으로 바쁘게 움직였다. 나는 그들 속에 스며들지 않고 천천히 걸었다. 걷다 물고기가 있으면 한참 동안 멍하니 보기도 하고, 한가로이 서 있는 왜가리의 눈길을 따라 그곳에 머무르기도 하며 시간 속을 걸었다. 한참을 걷다 아름다운 광경에 미소까지 머금고 눈길을 빼앗겼다. 뒤뚱거리는 걸음으로 유모차를 밀며 걷는 젊은 엄마였다. 비가 내려도 개의치 않는 여유로운 걸음이었다. 나도 유모차와 속도를 맞추며 한참을 따라갔다. 아기 엄마가 휙 뒤를 돌아보았다. “아이고, 놀랬죠? 너무 아름다운 모습이라 저기서부터 뒤따라왔어요.” 겸연쩍어 나도 모르게 슬그머니 우산을 받쳐주며 상황을 설명했다. “에고, 비가 와서 어쩌노. 아기가 놀라겠어요.” 유모차 안을.. 2022. 7. 18.
03. 반피와 반피가 만나면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 내비게이션에서 낭랑한 목소리로 길을 잘못 들어섰다고 말해준다. 분명 목적지가 코앞이었는데 잠깐 사이에 스쳐 지나가고 말았다. 가끔 있는 일이라 당황하는 기색조차 없다. “남의 동네 왔으면 한 번쯤은 헤매 주는 것이 예의다, 예의. 내 말이 맞나? 아이가?” 남편의 천연덕스러움에 할 말이 없다. “아, 예에. 맞습니다. 맞고요. 어련하시겠습니까.” 조금은 비꼬는 투로 답하고는 웃어넘긴다. 정말 우리는 답이 없다. 길을 몰라서도 헤매고, 둘이서 이야기하다 길을 놓치기도 한다. 아는 길도 그러기 일쑤니 우리는 남보다 30분 정도는 일찍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 약속 시간을 얼추 맞추어 갈 수 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면 친구들은 어서 오라는 인사보다 길을 헤매고 오지 않았는지를 먼저 .. 2022. 7. 16.
02. 사랑의 티켓 엉덩이가 들썩인다. 어깨도 덩달아 으쓱거리고 코 평수가 늘어난다. 평소에 잘 쓰지 않았던 성대가 조금씩 열리고 소리가 새어 나온다. 듣기만 하던 노래가 내 목에서 나오고 있다. 잔잔하고 때로는 흥겨운 소리다. 몇 번이고 아는 부분만 흥얼거리며 무한 재생을 하는 고장 난 테이프 같다. 고운 소리는 아니지만 나름 신이 난 소리에 집안 분위기가 밝아진 것은 사실이다. 사실 난 트로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남편이 운행 중에 신나는 트로트를 틀면 나도 모르게 짜증 섞인 목소리로 시끄럽다며 구박을 주기도 했다. 그런 내가 요즘엔 트로트에 푹 빠져있다. 젊은이들이 부르는 노래는 에너지가 담겨 있어 나를 끌어올려 주는 느낌이다. 한껏 밝아진 그들의 목소리로 전하는 노래 가사는 추억과 지나온 삶이 밝게 그려져 좋다... 2022. 7. 15.
01. 사랑의 온도 36.5도 12시 10분. 오늘도 어김없이 휴대폰이 울렸다. 보지 않아도 누군지 안다. 받을까 말까 잠시 망설이다 받았다. “밥은 먹었나? 난 국수 먹었다. 뭐 물 꺼고? 어여 먹어라.” 쩝쩝거리며 하는 말이다. 남편이다. 목소리에 힘이 없어 보였다. 아침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조금 걱정이 되었다. 일주일 정도 출장을 가야 한단다. 순간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한 톤 높아졌다. 들뜬 목소리가 탄로 날까 봐 깊이 숨을 한 번 쉬며 “하는 수 없지 않으냐”고 위로 아닌 위로를 했다. 혼자 있기 싫어 투덜거리던 내가 남편을 위로하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이젠 혼자의 시간을 차츰 즐겨보려 한다. 언제나 함께 움직여 왔기에 홀로 서는 연습이 필요하다. 오후 비행기로 출장길에 오른 남편을 배웅하고 오는 길에 먼저 친구들에게 .. 2022. 7. 14.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