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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세이205

05. 왜 자꾸 선조를 인조라고 말씀하셨어요? (마지막 회) 면접에 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기도 전에 다음 날에 예정된 수업 실연을 준비해야 했다. 부산의 경우, 어느 단원에 있는 내용을 어떤 형태의 수업을 할지, 관련된 조건이 함께 담긴 문제를 보고 60분 동안 지도안을 작성해야 한다. 그리고 20분의 구상 후 20분 동안 수업 실연을 진행해야 한다. 수업 실연에는 한국사 부분만 나온다고 알려져 있었기에, 한국사의 고대부터 근현대사까지, 어느 시대에서 어떤 내용이 나올지 모르니 한국사 전 시대의 지식을 머릿속에 담고 있어야 했다. 우선 고대부터 근현대까지 전 단원을 다시 한 번 모두 떠올려 보고 싶었다. 전 단원을 차근차근 판서하며 설명한다고 가정하고 시뮬레이션을 하기 시작했다. 딱 고려까지 해보고 나니 까마득히 남은 단원들마저 이런 식으로 하다가는 현대사는 건.. 2022. 1. 23.
02. 아내와 함께하기 위해서는 아내를 만나기 이전에 했던 연애는 과정도 결과도 그리 좋지 않았다. 난 상대방이 힘들 때 기대어 쉴 수 있는 넓은 어깨를 가져야 했다. 남들은 무심코 지나치는 장점을 볼 수 있는 눈과 무엇이든 공감하면서 들어줄 수 있는 귀, 듣기 좋은 달콤한 말을 해 주는 입을 가져야 했다. 이상적인 연인 사이가 되기 위해서는 내 능력을 뛰어넘는 너무나도 많은 것들을 갖추어야 했다. 상대방이 나에게 그런 능력을 요구한 것도 아닌데, 그냥 스스로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언제나 둘의 관계에서 든든한 울타리이고 싶었다. 이런 생각이 빚어낸 배려심과 이타심이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 그러기엔 내 그릇이 너무 작았다. 대가를 바라는 행동은 채권자의 마음이 되어 언젠가 나에게 갚아.. 2022. 1. 21.
04. 퇴근하면 나는 여전히 수험생이었다. 4개월의 짧은 기간제 교사에 합격 연락을 받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중에 설렘과 두려움이 몰려왔다. 꿈꾸던 그 자리에 다가가는 순간이었지만, 교사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내가 잘해낼 수 있을지, ‘공부’와 ‘일’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면접관으로 들어와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셨던 선생님 한 분이 나를 맞아주셨고, 짧은 이야기를 나누며 인수인계를 받았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노트를 펼쳤다. 사람 인생 한 치 앞을 모른다고, 1년 동안 지옥 같은 수험 생활을 할 것이라는 예상과 다르게,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을 걷게 되었다. 수많은 생각과 걱정을 누르고 앞으로의 공부 계획과 4개월 동안 내가 해야 할 일을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일과 공부 모두 잘하고 싶은 마음.. 2022. 1. 21.
01. 나의 꿈은 가정주부가 되는 거야 이제는 내가 먼저 어차피 잡힐 손을 아내에게 내어준다. 마지막 출근을 했다. 연차가 남아있어서 실제 퇴직일은 아직 며칠이 남았지만 출근은 이걸로 끝이다. 20년 가까이 일을 했고, 그 기간 동안 여러 회사를 옮겨 다니다가 마지막으로 정착한 이 회사에서 12년 넘게 있었다. 퇴사를 처리하는 담당자와 마지막 면담을 했다. 담당자는 별로 궁금할 것도 없는 질문 몇 가지를 했다. 형식적이긴 하지만 회사에 아쉬웠던 점을 말해 달라기에 희망퇴직 제도가 없는 게 가장 아쉬웠다고 얘기했다. 면담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팀별, 파트별, 프로젝트별로 나뉜 단톡방에 마지막 퇴사 인사를 했다. 아쉬워하는 사람들의 인사말을 뒤로하고 단톡방을 나왔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울어 대던 장애 알림톡방도 탈출했다. 쓰던 장비와 사원증을.. 2022. 1. 20.
03. 나는 들러리였구나 네 번째 시험을 치렀다. 이번 해만큼은 앞선 두 번의 시험보다 더 노력했다고 확신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새벽기도에 다녀온 후 간단히 밥을 먹고 7시쯤 도서관으로 향했다. 열람실에 1등으로 도착해 창문을 열고 사물함에서 책을 꺼내 착석하면 보통 7시 30분. 그렇게 남들보다 이르게 하루를 시작했다. 앞의 두해보다 더 노력했고, 사람들도 덜 만났다. 천재가 아닌 내가 할 수 있는 건 시간 싸움, 엉덩이 싸움이라고 생각했고, 그 정도로 노력하면 당연히 될 거라 확신했다. 1차 합격자 발표 날. 애써 찾아보기를 미루던 그때 1차 합격을 축하한다는 교육청의 문자를 받았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고, 그때가 돼서야 안심한 채 합격자 조회 사이트에서 결과를 확인했다. 결과는 불합격.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부랴부랴 .. 2022. 1. 20.
00. <조금 이른 은퇴를 했습니다> 연재 예고 불확실한 미래와 실패가 두려운 당신께 전하는 공감 에세이 거북이, 고양이, 그리고 아내... 나를 행복하게 하고 끌어당기는 것들의 힘 40대 ‘조금 이른’ 은퇴를 결심하게 된 계기와 과정, 그리고 은퇴 이후의 소박한 일상이 이 책의 중심축이다. 버티는 것만으로도 벅찼던 직장 생활 이야기와 아내와 함께 구상한 은퇴 계획은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해 봤을 법한 이야기들이다. 은퇴 이후 저자는 가고 싶었던 카페를 간다거나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며 일상을 채워나간다. 그렇게 쌓이는 시간은, 하루하루 버텨낸 것만으로 만족하던 때의 시간과는 분명히 다를 거라고 기대한다. 저자는 회사에 얽매이지 않아 자유분방한 일상이 쌓이게 되면, 그 긴 시간 속에서 만들어지는 무언가가 분명 있을 거라고 믿는다. 저자는 어릴 때부터 .. 2022. 1. 19.
04. 제공된 정자로 태어난 아이들에게 비밀이란? 불임 치료 현장에서는 의료진과 커플 모두가, 임신하여 아이를 탄생시키는 것에만 관심이 있고, 그 아이가 성장하여 10대가 되었을 때 DI를 이용한 사실을 전해야 할지, 전한다면 어떻게 전하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아기를 팔에 안는 순간 치료에 대한 모든 것은 잊어버리세요.”라고 말하는 의사도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당사자인 커플과 그 아이에게 있어서 현실에서 눈을 돌리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자신이 게이오대학에서 DI로 태어난 것을 실명으로 공개한 남성은 DI의 가장 큰 문제는 태어난 아이가 커다란 정신적 부담을 강요당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유전상의 루트를 알지 못하는 것, 그리고 부모가 아이에게 이 사실을 숨기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이죠.(.. 2022. 1. 19.
02. 잃어버린 생일 코로나 시국에서 떼놓을 수 없는 자가격리. 살면서 자가격리라는 단어를 이렇게나 자주 사용하게 될지는 몰랐지만, 생각해 보면 나의 수험기간이 곧 자가격리 기간이기도 했다. 어찌 되었든 자발적으로 타인으로부터 혹은 세상으로부터 스스로 고립되고 격리되었던, 슬프고도 암울했던 기간이었다. 공부를 시작하기 직전인 2015년은 최고로 바쁘게 보냈던 한해였다. 모교의 한 연구소에서 보조 연구원으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고, 교회 청년부 임원이자 대외활동 동아리 부대표이기도 했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랐던 시기였다. 거기다 대학 졸업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슬슬 임용공부도 시작했다. 여러 역할을 맡으면서 챙겨야 할 사람이 많아졌고, 해야 할 일도 많았다. 그것들을 반증해준 것이 바로 생일이었다. 나서기를 좋아하는 성격도.. 2022. 1. 19.
01. 취업열차 마지막 탑승객 학창 시절엔 보통 같은 반 친구들끼리 친하기 마련이지만, 나는 고1, 고2 때 한 번도 같은 반이 된 적 없는 친구들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했다. 당시 우리는 각 반의 반장으로서 학생회 활동을 하며 희로애락을 공유해서인지 고등학교 졸업 후에도 우리의 인연은 생각보다 오래되었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우리 여섯 명은 우연히도 문과 세 명, 이과 세 명이다. 대학도 서울, 진주, 통영, 부산으로 뿔뿔이 흩어졌고, 졸업 후 타지에 취업하면서 자주 만나기 어려워졌다. 그럼에도 인연이 끊어지지 않고 오래가고 있다는 사실에 우리도 종종 놀라곤 한다. 당연하게도 이과 출신 친구들이 취업 스타트를 끊었다. 이과 출신인 만큼 전공도 기계, 임상병리, 건축 등 다양했고,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순서대로 취업 소식을 전해왔다... 2022. 1. 18.
03. 정자은행이 저출산을 막는다? 과거에는 여성이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는 것은 사회적으로 허용되기 어려운 풍조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여성도 고학력이 되었고, 커리어를 쌓아 경제적으로 안정되면 ‘결혼은 하고 싶지 않은데 아이는 갖고 싶다’는 사람이 꽤 있습니다. 또는 일로 성공한 우수한 여성이 ‘결혼하고 싶지는 않지만, 나의 뛰어난 유전자를 남기고 싶다’거나 ‘아이는 갖고 싶지만, 그렇다고 결혼에 한평생 매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여성도 있습니다.(남성도 그런 경우가 있음) 그중에는 가족은 필요한데 남자는 믿을 수 없다고 하는 여성이 정자은행의 도너라는 ‘완벽한 연인’(배신하지 않으므로)과의 사이에서 아이 낳기를 희망하는 경우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선진국 중에서 출산율 저하를 멈출 수 있었던 나라는 모두 혼외자의 출생률이 높은 나.. 2022. 1. 18.
00. <이번에는 붙을 수 있을까> 연재 예고 “우리는 모두 각자만의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시험을 준비하고 있을 당신에게 건네는 자그마한 위로 ‘선생님’은 우리에게 친숙하게 다가오는 직업 중 하나다. 우리가 가족이 아닌 누군가와 처음 관계를 맺을 때 그곳엔 대부분 ‘선생님’이 있었다. 우리는 선생님의 지도하에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크고 작은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다. 선생님에 대한 기억이 희미하기도 하고 뚜렷하기도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선생님이라는 직업이 우리에게 친숙하면서도 개개인의 삶에 많은 영향을 주는 만큼, 선생님을 꿈꾸는 사람들도 그만큼 많다. 아이들을 좋아하거나, 학생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고 싶은 등 그 이유는 다양하지만, 꿈꾸는 사람이 많다는 건 한편으론 경쟁이 치열하다는 의미이기.. 2022. 1. 17.
02. 낳을 수 있는 날이 올 때까지 냉동해 두고 싶다. 난자의 노화는 아이를 소망하는 부부만이 아니라 독신 여성에게 있어서도 절실한 문제입니다. NHK 클로즈업 현대 (2012년 2월 14일)에는 난자가 노화된다는 것을 인터넷에서 우연히 알았다는 33세의 독신 여성이 등장합니다. “몸이 떨렸어요. 생각하면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그녀가 사회에 나왔을 때는 취직빙하기. 파견 등의 비정규직 사원으로 일했는데 30세를 넘기자 파견 근무처는 서서히 줄었고, 현재는 자격증을 따기 위해 일하는 시간 외에는 공부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교제하고 있는 남성도 없고 결혼 상대를 찾을 여유도 없습니다. 그녀는 작년에 큰 결단을 내렸습니다. 난자 냉동입니다. 도쿄(東京) 도내에 있는 병원에서 액체 질소로 자신의 난자를 냉동보존하고 ‘언젠가 낳을 수 있는 날이 올 때까지’ 난.. 2022. 1. 17.
01. 50세 넘은 여성이 아이를 낳아도 될까? 뉴욕에 사는 30대 독신 변호사 미란다는 산부인과에 검진을 받으러 갔습니다. 검사 결과, 오른쪽 난소의 배란이 멈춰 있다는 말에 충격을 받은 그녀는 불쑥 의사에게 묻습니다. “난소가 파업을 일으킨 건가요?!” 그날 밤 미란다는 세 명의 절친들 앞에서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말합니다. “원인은 하나야. 오른쪽 난소가, 내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일 따윈 없다며 스스로 포기한 거야. 내가 승산도 없는 사건을 던져버리는 것과 같은 셈이지.” “하지만 왼쪽은 나오잖아?”라고 묻는 캐리에게 미란다는 한숨을 쉬면서 말합니다. “나는 생물학적으로는 낙제야. 참 아이러니하지. 하버드까지 나온 여자의 난소가 말이야….” 그때까지 남자친구와 사귀고 있었고, 피임약을 먹으며 조심하던 미란다였지만 결국 그와 헤어졌습니다. 더욱이.. 2022. 1. 14.
00. <결혼은 안 해도 아이는 갖고 싶어> 연재 예고 정자은행과 생식의료에 관한 이야기 여성의 경제활동이 많아지고, 사회가 복잡다단해지면서 결혼의 적령기가 늦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비혼'이 하나의 트렌드로 떠오르며 결혼은 부담스럽지만 아이는 하나쯤 낳아 기르고 싶다고 생각하는 여성이 늘고 있다. “아이를 낳아서 양육하는 건 해보고 싶었는데, 결혼 제도에 묶이는 건 싫다. 우리나라에서 결혼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가족과 가족 간의 결합이라는 인식이 강하고, 실제로도 그렇다 보니 결혼제도 외에 자발적 비혼모가 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라는 것이 비혼모를 생각하는 여성들의 생각이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방송인 사유리 씨가 외국에서 정자 기증을 받아 고향 일본에서 아기를 출산했다고 알려지면서 비혼 여성의 선택적 임신과 출산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 하지.. 2022. 1. 12.
10. 색의 의미, Green (마지막 회) 노란색과 파란색을 혼합하면 녹색이 된다. 중용의 색으로 조용하고 평온하게 보이는 녹색의 배후에는 확고한 신념을 드러내고 있다. 부드러움과 엄격함을 가진 두 색이 혼합된 녹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부드러움을 가지면서도 절제된 행동으로 자신에게 엄격한 성향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녹색은 편안함, 자연, 순수한 에너지를 상징한다. 녹색은 자연을 바라보듯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감정의 안식을 허락하는 색으로 위로와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몬드리안의 그림에는 초록이 없다. 이유는 무엇일까? 선물 받은 튤립의 초록색 잎을 흰색으로 칠하는 파격적인 행동을 할 정도로 그는 자연을 닮은 색인 초록색을 싫어했다. 초록은 자연을 환기하는 색으로 생각했고 그가 탈피하고자 했던 변덕스럽고 무질서한 자연의 외형을 상징하는 초록색을 .. 2020. 6. 18.
09. 마르셀 뒤샹-이것이 예술인가? 뒤샹의 초기 작품으로 카메라 기술의 발달로 동시적인 촬영을 이용한 작품이다. 속도감과 운동감을 회화로 표현한 그의 그림에 대해 입체파 화가들은 정숙하지 못한 우스꽝스러운 그림이라고 혹평했다. “예술가란 말은 화가가 개성적인 존재가 되면서 생겨났다. 회화는 끝났다. 누가 이 프로펠러보다 더 나은 것을 만들 수 있단 말인가?” ‐ 마르셀 뒤샹 뒤샹은 현대사회에 팽배한 상업주의와 회화의 상품화에 대한 반발로 회화를 버리게 되었다. 그러면서 병을 말리는 기구를 사서 〈병걸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하며, “색을 칠하거나 구성을 할 수도 있지만 단지 선택만 할 수도 있다.”는 궤변을 펼치기 시작한다. 이렇게 선택한 작품에 레디메이드라는 용어를 붙였다. 1917년 4월 10일, 파리의 〈앙데팡당〉 전시를 모델로 한 독립.. 2020. 6. 18.
08. 고다이바-전설이 된, 숭고한 나체 시위 코번트리 마을의 영주였던 레오프릭 백작의 부인이 레이디 고다이바이다. 그녀는 남편에게 과중한 세금 정책에 대해 언급하며 소작농들에게 받는 세금을 낮춰줄 것을 요청했다. 레오프릭 백작은 고다이바의 간청을 귓등으로 흘려들었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숭고한 마음을 비웃으며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제안을 했다. 그녀가 하지 않을, 아니할 수 없을 거라 확신하는 제안이었다. “당신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벌거벗은 몸으로 말을 타고 마을을 한 바퀴 돈다면 당신이 그토록 호소하는 세금 감면에 대해 고려해보겠소.” “뭐라고요? 벗은 몸으로 마을을 한 바퀴 돌라고요? 그래요. 그렇게 하겠어요.” 레오프릭 백작이 자신의 아내 고다이바가 절대 하지 못할 거라 생각하고 던진 말이었다. 당시 11세기의 지극히 보수적인 영국.. 2020. 6. 17.
07. 젠틸레스키-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 젠틸레스키는 ‘유디트’를 작품에 등장시켰는데, 이는 페미니즘을 이야기할 때 자주 언급되는 부분이다. 특히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 그림은 젠틸레스키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 당시 사람들은 인간과 사회에 대해 상당히 보수적이었다. 여자 화가가 여성의 모습을 과감하게 표현하는 것도 결코 바람직하거나 옳은 일이 아니었다. 그녀는 재판 이후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억압되고 억눌려 있던 분노를 회화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이 직접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를 차용해 아고스티노를 벌하기로 마음먹었다. 유디트는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여자 주인공으로, 그녀는 적국의 진영에 잠입해 아시리아의 장군인 홀로페르네스를 유혹하고 목을 잘라 살해해서 마을을 구한다. 사랑과 죽음이라는 .. 2020. 6. 17.
06. 고갱-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천국이라 할 수 있는 이상적인 곳은 고갱의 그림 속에서만 존재했다. 현실은 냉혹했으며 처절한 외로움 그 자체였다. 고갱은 타히티에서 그린이 작품 등으로 개인전을 열었지만 예상과 달리 결과는 참담했다. 그림이 싼값에 팔리거나 팔리지 않았다. 그는 엄청난 좌절감을 느끼고 자살을 생각하다 죽기 전에 마지막 유작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때 그린 작품이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이다. 그는 친구 몽프레에게 쓴 편지에서 이 작품을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오른쪽 아래에는 잠든 아기와 쪼그려 앉은 세 여인이 있다. 주홍색 옷을 입은 두 인물은 머리를 맞대고 무언가를 의논하고 있다. 원근법을 무시하고 의도적.. 2020. 6. 17.
05. 색의 의미, Black 서양에서는 죽음과 슬픔을 상징하는 색으로 빛을 거부하는 색이다. 자신의 내부의 빛을 거부하면서 타인과의 의견에 동요하지 않는다. 사회체제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검정색 옷을 즐겨 입는다. 그래서 검정색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감출 수 있어 신비로운 색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스페인의 작고 평화로웠던 게르니카 마을에 4시간 동안 50톤의 폭탄이 떨어지고 영문도 모른 체 죽어간 사람들을 그린 〈게르니카〉 그림이다. 나치의 무기테스트를 이유로 시작된 폭격은 게르니카 인구 7천여 명 중 약 6천여 명이 사망하고 가옥 80% 이상 폭격 당하는 대학살의 결과를 냈다. 피카소는 정치적 비판과 정의를 바로 세우고자 〈게르니카〉를 그려 전 세계 사람들에게 알렸고 많은 사람들은 그날을 기억한다. 〈게르니카〉에 나타난 검정색은 .. 2020. 6. 17.
04. 마네-캔버스 속의 여인 마네의 그림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는 누구나 쉽게 눈치챘을 것이다. 그의 많은 작품에 등장하는 여인이 바로 ‘빅토린 뫼랑’이다. 그녀와의 만남은 지금으로 치면 길거리 캐스팅과도 같다. 마네는 기타를 들고 있는 빅토린에게 반해 자신의 그림 모델이 되어주길 요청했고, 그렇게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마네가 언제나 “나에게는 빅토린이 있어.”라고 말한 것에서 알 수 있듯 그녀가 그의 작품에서 얼마나 중요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후 그녀는 마네의 그림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로 깊숙이 자리 잡았다. 빅토린은 16살 때부터 모델 일을 시작했다. 기능인 집안에서 태어난 그녀는 기타와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노래도 잘하는 다재다능한 인물이었다. 마네의 절대적인 모델이었던 빅토린 뫼랑은 1860년대 돌연 프랑스를 떠나.. 2020. 6. 17.
03. 요하네스 베르메르-실존했던 인물이었을까? 책 표지의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는 몸을 드러내지 않고 누군가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있다. 반쯤 벌린 입술 사이로 무슨 말인가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만약 말을 하려 했다면,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비평가들은 베르메르의 그림에는 이야기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내게는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살짝 벌린 입술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의 그림에 어떤 대단한 이야기가 숨어 있을 거라며 괜한 기대를 해본다. 많은 사람이 이 작품의 주인공인 소녀 모델에 대해 궁금해한다. 소설에서는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가 하녀로 등장한다. 실제로도 소설과 같이 모델이 하녀였다는 설과 첫째 딸 ‘마리아’라는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베 메르가 이 그림을 그릴 당시 그의 딸은 11세였고, 그 이후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인들의 모습에서도.. 2020. 6. 16.
02. 샤갈-사랑하는 여인을 위하여 “나는 태양이 밤에도 빛날 수 있다면 색채에 물들어 잠을 자겠네.” ‐ 샤갈의 시 중에서 그의 그림에서 노랑은 희망, 파랑은 평화를 상징한다. 빨강은 초기 작품에 많이 등장한다. 그는 톤이 밝은 노랑, 파랑, 빨강 색조의 그림을 그 렸다. 행복했던 상상 속의 찰나를 그렸던 샤갈의 그림에는 사랑이 가득하다. 이것이 바로 상상력의 힘이다. 오늘은 당신의 생일입니다. 움직이지 말고 거기 그냥 있어요. 나는 아직 꽃을 들고 있습니다. 당신은 손 밑에서 흔들리는 캔버스로 몸을 돌립니다. 당신의 붓으로 물감을 찍습니다. 빨간색, 파란색, 하얀색, 검은색이 튀어나옵니다. 당신은 나를 색채의 물결 속으로 인도합니다. 갑자기 당신은 나를 땅에서 끌어올리고 당신 자신도 뛰어오릅니다. 마치 이 작은 방이 너무나 좁다는 듯이.. 2020. 6. 16.
01. 모딜리아니-사랑과 죽음 그리고 인생의 완성 모딜리아니의 초상화는 목과 얼굴이 기다랗다는 특징이 있다. 자신에게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죽음의 그림자를 직감하고 있었던 그는 말년에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목과 얼굴이 길어진 초상화를 무수히 그렸다. 그 모델의 주인공은 바로 아내 잔느 에뷔테른(1898~1920)이다. 보수적이고 엄격한 가톨릭 가정에서 자란 그녀도 그림을 사랑하는 화가였다. 모딜리아니와 잔느 에뷔테른은 아카데미에서 처음 만나 숙명처럼 사랑에 빠지고 만다. 유대인에 반감을 가지고 있던 잔느의 부모는 14살 연상의 유대인 무명 화가에 병약했고 알코올중독자인 모딜리아니를 탐탁지 않아 했다.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연인에서 부부의 연을 맺었다. 그때 잔느 에뷔테른이 19세였고 모딜리아니는 33세였다. 운명은 그 두 사람의 사랑을 잠.. 2020. 6. 16.
00. <그림에 끌리다> 연재 예고 모든 순간이 그림이 되는 삶에 대해 우리가 만날 그림은 어떤 계절일까…. 마음이 기억하는 그림에는 분위기가 있다. 그림은 모든 순간에 함께 있다. 굳이 미술관에 들르지 않더라도 미디어를 통해 누구나 명화를 접할 수 있는 세상이다. 무수히 접했던 많은 그림 중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눈에 밟혔던 그림이 있을 것이다. 그림 속의 모델에게 강렬한 끌림이나 감정적 동요가 일어나기도 한다. 모딜리아니의 영원한 모델, 잔느의 긴 목과 텅 빈 눈에서 슬픔을 느낀다. 샤갈이 사랑하고 추억했던 날아다니는 벨라에게서 사랑의 설렘을 느낀다. 존 밀레이가 그린 눈먼 소녀의 평온한 미소에서 현실이 힘들 때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는 희망을 느낀다. 존 클리어의 가냘픈 선으로 묘사된 고다이바의 누드화에서 애처로움을 넘어선 숭.. 2020. 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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