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시·에세이205 10. 펫로스 증후군으로 아파하는 이들에게 (마지막 회) 곁에서 펫로스를 지켜보는 마음 보기 좋은 풍경은 계속될 것 같았다. 인생의 호시절은 어쩐지 영원할 것 같고, 호시절의 끝은 비현실적인 느낌마저 든다. 11살 별이는 13살이 됐고 매일 심장약을 먹었으며 몸 상태가 심상치 않으면 병원에서 케어를 받으며 지냈다. 견주 입장에선 아픈 강아지를 노심초사 바라보면서도 하루라도 더 살릴 수 있다는 희망으로 가득 찬 시기였으리라. 그러나 산책을 잘 다녀온 어느 저녁부터 별이는 숨이 가빠지기 시작해 이틀 만에 무지개다리를 향해 발걸음을 뗐다. 15년 전 아득하게 강아지를 떠나보낸 내가 가까운 곳에서 타인의 펫로스를 지켜보기는 처음이었다. 마치 슬픔이 전염되듯 동생의 소식에 덩달아 가슴팍이 조여왔다. 직접 별이를 키운 적이 없는데도 몸 일부가 떨어져 나간 듯 상실감이 밀.. 2022. 2. 16. 02. 너와 나의 평행이론 할머니와 나 어렸을 때 나는 할머니와 같이 방을 썼다. 젊어서 혼자가 된 할머니는 서울의 큰아들 집과 순천의 작은아들 집을 육 개월에서 일 년씩, 여행하듯 번갈아 다니시며 노후를 보냈다. 희고 고운 얼굴을 가진 할머니와 나를 보면서 사람들은 둘이 많이 닮았다고 했다. 그땐 그 말을 잘 이해할 수 없었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무슨 말인지 알아갔다. 거울 속 어딘가에는 돌아가신 그의 얼굴이 어렴풋이 함께 있다. 할머니는 기다란 곰방대에 봉초 담배를 다져 넣어 피웠는데, 담배 찌꺼기와 냄새에 불평하는 어린 손자와 티격태격도 꽤 했다. 손자들이 말을 듣지 않을 때면 가끔 곰방대를 들어 “이 망할 놈!” 하셨지만 진짜로 때린 적은 없다. 할머니는 한쪽 다리가 불편했다. 지팡이는 외출의 필수품이었고, 막둥이인 내가 그.. 2022. 2. 16. 09. 언젠가는 떠나보내야만 하는 반려동물 이별의 순간까지 최고로 행복할 것 언젠가 먼 훗날, 나의 반려견도 질병이나 노화로 인해 세상을 뜨게 되면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할지 머릿속에 순서를 그려봤다.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순간에 곁을 지키고, 사망이 확인되면 미리 선택한 장례식장에 연락해 예약을 하고, 그때까지 깨끗한 수건으로 감싸 시신을 보호하고, 시간 맞춰 품에 꼭 안고 가 헤어짐의 단계를 하나씩 밟아갈 터였다. 그야말로 십수 년 후에 벌어질 이별은 구체적으로 상상하니 더욱 아팠다. 내 곁에 등을 붙이고 앉아있던 모카를 꼭 끌어안았다. “모카야, 안 죽고 엄마처럼 오래 살면 안 될까?” 자신의 수명이 얼마쯤인지,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아무것도 모르는 모카는 그저 등을 부비고 혀를 할짝대기만 했다. 그날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남편에게 내가 상상하.. 2022. 2. 15. 01. 미국아빠 판타지 미국 영화에서 종종 발견되는 클리셰 하나. 아빠와 캐치볼 또는 플라이낚시를 하던 아이가 얼굴을 바로 쪼는 햇볕에 눈을 찡그리며 질문을 던진다. 배경이 미국이고 영화의 한 장면인 만큼 “나 오늘 학원 안 가면 안 돼요?” 같은 질문이 아니다. 눈치 빠른 관객이라면 여기가 바로 작가나 연출자가 힘주고 있는 대목임을 감지한다. 영화의 도입부 어딘가에는 관객에게 의미심장한 동기나 암시를 주려고 고심한 흔적이 꼭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건넨 질문은 아마도 그 물음 자체로도 다양한 상상을 유발할 수 있고, 적당히 추상적이면서 복합적일 확률이 높다. 미국 아빠들은 이때를 허투루 낭비하지 않는다. 마치 이 순간을 기다려 왔다는 듯 나긋한 목소리, 온화한 눈빛으로 필요한 대답을 들려준다. 절묘한 은유와 심오한 함축의 언.. 2022. 2. 15. 00. <아빠의 비밀일기> 연재 예고 싱글대디 좌충우돌 성장에세이 ‘이 미숙한 것들한테 어떻게 세상을 맡기나?’ 걱정이 태산 같을지 모르나 천만의 말씀이다. 자고이래 세상은 늘 젊은이들의 것이었다. 깔고 앉은 자리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새로운 임자에게 제때 비켜주지 못하는 자를 일컬어 세상은 꼰대라고 부른다. 변화의 흐름에 올라타지 못하면 자기만 외롭고 힘들다. 시간을 조금이라도 붙잡고 늦추고자 한다면 끊임없이 학습하고 적응하는 방법밖에 없다. 내게 미래란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다. 꿈꾸는 내일임과 동시에 받아들이고 적응해야 하는 숙제이기도 하다. - 본문 「꼰대의 시간은 흐른다」 중에서 ‘아이라는 선물’을 받은 젊은 아빠의 한없이 신기하고 벅찬 감정으로 책은 시작된다. 그러다 어느새 사춘기 아이들의 질풍노도에 하릴없이 나부끼는 고단한 중년.. 2022. 2. 14. 08. 파양에 꽃길은 없다. 그건 동물유기, 동물 살해 계획입니다 모카를 데려와서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거나, 1분 1초도 빠짐없이 행복했다고 말할 순 없다. 입양 후 몇 개월간 기본적인 배변훈련과 어린 강아지의 안전과 건강을 살피느라 나는 2시간 넘게 외출한 일이 손에 꼽을 정도다. 솔직히 말하자면 간혹 모카가 오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날도 있었다. 강아지를 키우면서 그 정도의 불평 없이 단 1초도 후회 없었다고 말하는 사람에 겐 오히려 신뢰가 가지 않는달까. 어쩌다 그런 감정이 들었어도 모카를 파양하지 않은 건 몹시 당연한 판단이었다. 강아지를 키우기로 마음먹고 데려올 땐 어떤 모진 시간이 닥쳐도 견디고 책임질 각오가 필요하다. 배변훈련이 힘들어서 손의 피부가 다 벗겨지고, 하루에 몇 번씩 놀아주고 밥을 먹이느라 생활 패.. 2022. 2. 14. 05. 아프로디테에게 바친 도시 (마지막 회) 도시의 수호신인 아프로디테를 위한 신전은 이 도시에서 가장 성스럽게 여긴 건물이다. 하지만 지금은 안내판이 없다면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는 유적지다. 12세기의 지진으로 폐허가 된 곳에 지금은 높은 기둥이 14개 늘어서 있지만,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떠올릴 만한 그 어떤 흔적도 남아 있지 않다. 4세기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이면서 아프로디테 신전은 철저히 파괴되고, 5세기 말에는 교회로 전용되고 관련 유적이나 유물은 전부 말살된다. 기독교가 우상숭배라는 차원에서 그리스 신화 속의 유적들도 파괴한 일이다. 신전의 서쪽에는 나르텍스 고대 기독교 교회에서 본당 입구에 짓는 넓은 홀, 동쪽에는 기독교 성화가 그려진 아프시스(교회당 동쪽 끝에 튀어나온 반원형 부분)가 지어졌고, 신전 정원에는 무덤이 만들.. 2022. 2. 12. 07. 만약 내가 키우지 않았더라면 강아지가 안 죽었을까? ‘만약’의 블랙홀 만약,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뜻밖의 경우. 만약은 가벼우면서 무겁다. 만약은 재미있고 긍정적인 상상이 될 수 있고, 어떤 결과를 누군가의 탓으로 돌릴 핑계를 만들기도 한다. 중요한 선택을 앞두고 신중에 무게를 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나온 사건이나 사고에 만약을 붙이면 어떻게 되는지 나는 아주 잘 알고 있다. 그것은 끝없는 자책과 아픔, 하찮은 자존감, 번번이 찾아오는 우울함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되는 일이다. 나의 가장 간절한 만약은 여름이의 죽음이었다. 그날의 상황은 지금도 생생하다. 여름이의 사고가 있기 전날, 친구들과 약속을 마치고 늦은 시간 택시를 탔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택시에 지갑을 흘리고 내린 것을 알게 됐다. 없어진 지갑을 찾고 있을 때 .. 2022. 2. 11. 04. 신들의 전쟁에서 인간의 역사로 드디어 일찍부터 반드시 오기를 기대했던 트로이에 왔다. 내가 트로이를 꿈꾸며 동경했던 때가 언제부터였을까? 50여 년도 더 되는 옛날에 일리아드 오디세이를 처음에는 소설로 읽었을 때, 이 이야기가 실제 역사의 현장을 호머가 대서사시로 썼고, 슐리이만에 의해 트로이가 발굴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언젠가는 꼭 트로이를 내 눈으로 볼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제야 트로이를 오게 되었다. 저번에 터키 일대를 여행할 때 트로이를 보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아쉬웠기에 이번 여행을 계획하면서 꼭 트로이를 가자고 아들에게 말했다. 아들이 일정을 짜 보고는 좀 어렵다고 했지만 내가 강권하여 트로이를 보는 여정으로 바꾸었다. 여기에는 아들도 트로이가 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카파도키아에서 버스로 약 5시간을 걸려서 앙.. 2022. 2. 11. 06. 1년짜리 견생에게 배우는 사과와 용서 반려동물의 화해 대개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 때 반려동물을 키우는 입장은 항상 용서하고 반려동물이 용서를 받게 될 거라 생각한다. 이 가정이 너무나 당연한 이유는 반려인은 자신의 반려동물에게 말썽을 부릴 목적이나 계기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모카는 거실 러그에 배변을 해서 내게 혼났지만, 내가 모카의 방석 위에 배변을 할 리는 없다(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모카는 밥투정을 해서 내 속을 썩이지만, 내가 식음을 전폐해도 모카는 아랑곳하지 않는다(생각만 해도 너무 서운하다). 모카가 내 옷의 장식을 물어뜯어 망가뜨린 일은 있지만, 내가 모카의 옷을 물어뜯어 망가뜨릴 필요는 없다(생각만 해도 너무 싫다). 그래서 당연히 나는 반려동물을 용서하는 존재, 모카는 용서받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또 이 관계는.. 2022. 2. 10. 03. 고대 올림픽의 발상지 올림피아의 발굴이 모범적인 것은 이곳에서 발굴되어 수습된 유물은 모두 그리스에 귀속시켜야 한다는 조건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독일의 베를린박물관이나 영국이나 프랑스의 박물관이 아니라 올림피아의 박물관에서 올림피아의 유물을 볼 수 있다. 1928∼43년과 최근에도 발굴이 계속된 결과 스타디움도 발굴되고, B.C. 457년의 금상아제(金象牙製) 제우스상을 만든 조각가 페이디아스의 작업장 및 사용한 도구 등도 출토되었다. 1989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기차를 타고 올림피아 역에 도착하니 내리는 사람이라고는 나와 아들뿐이다. 그리고 비가 오기 시작한다. 오랜 여행의 경험으로 비가 올 경우를 대비하여 조그만 우산을 가지고 다녔기에 우산을 펴고 올림피아 거리를 걸어가서 먼저.. 2022. 2. 10. 05. 강아지의 목줄이란(feat. 우리 개는 안 물어요) 너와 나의 안전거리 산책이란 게 슬리퍼 꿰어 신고 당장에라도 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추운 날은 옷을 걸쳐주고 겨울을 제외한 모든 날엔 해충 방지 스프레이를 몸에 구석구석 뿌려준다. 그리고 모카와 나를 연결하고 사고로부터 구원해줄 하네스를 걸어준다. 하네스는 반려동물을 제어하는 벨트와 끈 등으로 구성된 물건이다. 보통 ‘목줄’이란 말로 통칭한다. 이 줄의 길이가 모카와 나 사이의 안전거리다. 줄을 절대 놓치지 않도록 꽉 붙들어야 하므로 손잡이를 손목에 걸고 한 바퀴 휘감아 줄을 잡는다. 내가 사용하는 목줄의 길이는 2m다. 하지만 도시에 사는 이상 2m의 줄을 자유롭게 풀어두긴 어려워서 한 손에는 손잡이를 걸고, 나머지 한 손으로 줄의 중간쯤을 잡아 다른 보행자들과 거리를 둬야 한다. 보행자 외에도 .. 2022. 2. 9. 02. 세상의 중심 델포이 아테네에 머물면서 고대 그리스인들이 신성한 땅으로 여기는 델피 델포이를 다녀왔다. 어느 날, 제우스는 독수리 혹은 비둘기 두 마리를 날려 세상의 중심을 찾았다. 서로 반대편으로 날려 보낸 독수리가 만나는 곳을 세상의 중심으로 정하고 그곳에 원추형 돌 옴팔로스 을 땅속에 묻었는데 그곳이 바로 델포이로 현재는 델피로 불린다. 델피(Delphi)는 그리스 중부지방의 고대도시로 그리스 제2의 고봉 파르나소스 남쪽 산허리, 파이드리아데스 암벽을 배경으로 멀리 코린토스만의 바다를 바라보는 절경에 있는 아폴론의 성지로 옛날에는 여신 가이아(Gaia, 대지)를 모셨으며, 지금도 그 성스러운 사적이 남아 있다. B.C. 6세기 무렵 아폴론의 신탁을 들을 수 있는 델피신전(sanctuary of Delphi)은 그리스뿐만.. 2022. 2. 9. 01. 고대 그리스의 심장 파르테논신전에 올라가기 전에 옆으로 잠시 발길을 돌려 간 곳은 ‘헤로데스 아티쿠스 음악당’이다. 이 음악당은 아티쿠스가 세상을 떠난 자신의 아내를 추모하며 세운 극장인데 6,000석 규모의 실내 극장이었다 한다. 지금도 객석과 무대를 복원해 야외 원형극장으로 재탄생시켜 아테네 페스티벌 기간에는 각종 연극과 음악을 연주하는 장소로 사용하고 있는 객석이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있는 아주 호화로운 극장이라고 한다. 헤로데스 아티쿠스 음악당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디오니소스극장이 보인다. 오늘날 서양연극의 탄생지로 불리는 디오니소스 극장은 유적으로만 남아 아크로폴리스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기원전 6세기 때 지어진 고대 아테네의 극장으로서 드라마 예술의 근원지였으며, 소실되었다가 로마시대에 이르러 예술가이자 집정관인.. 2022. 2. 8. 04. 개헤엄을 못 치는 강아지 체육학사전에 ‘개헤엄’이란 용어가 있다. 배를 아래쪽으로 향하고 머리는 물 밖으로 내밀고 발과 팔을 저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원시적인 헤엄의 일종을 말하는데, 개가 수영을 할 때 모습과 닮아 개헤엄이라고 한다. 그러니 개헤엄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개는 수영을 할 수 있다는 게 너무나 당연한 인식이었다. 모카의 견종은 푸들이다. 푸들은 과거 오리 수렵견이었다고 한다. 푸들 특유의 미용법이 몸털은 짧은 대신 다리털을 길게 남기는 이유가 물속에서 긴 다리털이 지느러미 역할을 하기 때문이었다. 다리털을 이용해 빠르게 수영해서 야생오리를 잡아 오는 게 과거 푸들의 역할이었다. 다시 말하건대 이 정보에서 알 수 있듯이 개는 수영을 할 수 있고, 푸들은 당연히 수영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리고 모카가 1살이 .. 2022. 2. 8. 00. <아들과 함께 그리스문명 산책> 연재 예고 그리스문명의 자취를 찾아 떠난 길고도 짧은 기록! "나의 여행은 항상 걷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여행을 떠나는 순간의 기억은 강렬하다. 일상을 벗어나 낯선 곳으로 떠나는 설렘, 새로운 만남에 대한 기대, 상상했던 여행지를 마주했을 때의 흥분. 평소에는 맛보지 못하는 그러한 감정들이 우리를 공항으로, 먼 나라로, 오래된 유적지나 유명 관광지로 이끈다. 하지만 여행이 끝난 후에는 어떨까? 설렘과 흥분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희미해지고, 나중에는 카메라에 담긴 사진 몇 장으로 당시의 감정을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저자가 자신의 여행을 글로 쓰기 시작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는 오래전부터 그리스문명을 동경해왔다고 말한다. 그리고 아들과 함께 그리스에서 터키까지 고대 문명의 자취를 따라가는 여행을 계획한다. 저.. 2022. 2. 7. 03. 강아지 독박육아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다짐에는 유자녀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가 육아를 서로에게 미루는 모습이 큰 영향을 끼쳤다. 공동행위로 생긴 자녀의 육아를 조금이나마 회피하기 위해 배우자에게 미루는 사람들이 딱하게 느껴졌다. 내 생애 결코 겪고 싶지 않은 모습, 육아로 인해 자신을 잃어가는 살풍경이었다. 그런데 모카를 데려오면서 내가 이 살풍경을 간과했음을 단 하루 만에 알아차렸다. 당시 지방에서 장기출장 중이던 남편과 주말부부로 지낼 때였다. 남편이 월요일 새벽 출장지로 떠나고 평일에 홀로 모카를 돌봐야 하는 상황이 되자 예상치 못한 ‘돌봄 노동’의 서막이 열렸다. 일단 모카의 배변훈련이 끝날 때까지 하루에 열 번 이상 걸레질을 해야 한다. 아주 어린 강아지는 하루에 소변을 8~10번쯤 보고 콩알만 한 대변도 3~4.. 2022. 2. 7. 02. 다시 강아지를 키우기로 했습니다. 모카와의 첫 만남 : 강아지가 좀 커요 드디어 무명의 여아 5, 모카를 만났다. 연한 갈색 털을 지닌 모카는 주먹치고는 많이 컸다. 굳이 주먹이라면 거인의 주먹이랄까. ‘크다고 미리 말씀하신 게 빈말은 아니었구나.’ 자세히 보니 주먹 크기에 비할 것도 아니고 통 식빵 두 개를 붙여놓은 정도로 컸다. 이미 입양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강아지의 크기나 몸무게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큼직한 몸집을 보니 당황스럽긴 했다. 또 현실적인 이유로 당황했는데, 우리가 사 가지고 간 켄넬이 강아지의 몸집에 비해 썩 넓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 사 두면 다 성장하기 전까지 6개월쯤 쓰겠다 싶어 펫숍에서 가장 큰 것으로 샀는데 실제로 넣어 보니 강아지가 일어서면 머리를 곧게 펴지 못할 정도였다. 슬픈 예감은.. 2022. 2. 6. 01. 펫로스 증후군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후의 상실감 내가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본가에서는 항상 개를 키웠다. 생애 첫 반려견 아심이, 부모님 지인에게 입양한 흰둥이, 임시 보호를 맡았던 초롱이, 길에서 데려온 유기견 짐보 등 많은 개가 우리 집에서 살았는데 가장 마지막에 키운 개는 여름이었다. 다른 개들은 성견으로 왔다면 여름이는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우리 집에 온 갓난쟁이였다. 그동안의 반려견들은 성견으로 우리 집에 와서 마당에서 살았기 때문에 전혀 몰랐던 개의 성장 과정을 여름이를 통해 하나씩 알게 됐다. 개도 사람처럼 이갈이를 하고 배변을 ‘훈련’ 한다는 점, 사람이 먹는 음식이라고 아무거나 입에 넣으면 안 되고 사람처럼 예방접종을 한다는 것. 잘 때는 꼭 내 방으로 찾아와 내 팔을 베고 한이불을 덮고 잤고, 아침이.. 2022. 2. 4. 10. 다시, 제주살이의 시작 (마지막 회) 아침 9시. 제주행 배편이 있는 완도의 하늘은 맑았고, 바람은 잔잔했다. 숙소를 나와 두 달 치의 짐이 가득 실린 차를 몰아 완도항으로 갔다. 평온한 바다 위로 우리가 타고 갈 여객선의 모습이 보였다. 안내자의 수신호에 따라 차량을 선적하는 배 밑 후미로 이동했다. 배 안쪽엔 이미 우리와 함께 제주로 갈 차량이 줄지어 있었다. 이제 채워지고 있는 줄을 따라 뒤쪽에 차를 세웠다. 차량을 통제하던 사람들은 능숙하게 차바퀴에 줄을 묶어 배 바닥에 단단히 고정시켰다. “이제 배 타고 조금만 가면 제주야.” 6년 만의 제주였고, 결혼 이후 처음 가는 제주였다. 집을 나와 첫 독립생활을 하고, 아내를 만나고, 곳곳을 다니며 연애를 하고, 평생 함께할 결심을 했던 곳. 아내와 술이라도 한잔할 때, 어느 정도 취기가 .. 2022. 2. 4. 00. <다시 쓰는 반려일기> 연재 예고 펫로스에서 벗어나 다시 시작하는 너와의 사계절 언젠가 떠나보내야만 하는 반려동물, 그 이야기는 해피엔딩이 될 수 있게 《다시 쓰는 반려일기》는 반려견을 갑작스레 떠나보내고 ‘펫로스 증후군’을 겪던 저자가 다시 반려생활을 하며 이별의 아픔을 갈무리하는 이야기이다. 1장에서는 저자가 긴 세월 앓던 펫로스의 아픔을 이겨내고 다시 반려생활을 시작하는 과정을 기록했다. 고심 끝에 반려견 ‘모카’를 입양한 후 서로를 알아가고 훈련하는 등 가족으로서 첫발을 내딛는 이야기로 구성된다. 2장은 좀 더 가까워진 모카와의 일상을 그린다. 수영 훈련, 산책, 반려견 SNS 계정 운영 등 평범한 반려생활 속 에피소드를 들려주며 저자도, 모카도 더욱 성장하는 모습을 담아냈다. 3장은 저자에게 큰 고통을 안겨준 펫로스 증후군과 반.. 2022. 2. 3. 09. 낯선 동네에서 살아보기 남들보다 조금은 느려도 괜찮다. 우리가 살아갈 앞으로의 날들이 궁금해진다. 은퇴를 몇 달 남긴 작년 봄. 퇴직일을 기다리는 시간은 더뎠다. 은퇴까지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하루하루가 한없이 느리게 흘러갔다. 회사 생활하는 내내 프로젝트의 마감 일정에 쫓겼다. 부족한 시간을 야근으로 채워가며 업무와 씨름하다 마침내 끝날 것 같지 않던 프로젝트를 털어내면, 그새 두어 개의 계절이 훌쩍 지나 있었다. 이런 시간을 20년 가까이 보냈다. 시간이 더디게 흐르는 건, 전엔 미처 겪어보지 못한 경험이었다. 퇴근 시간만을 기다리는 늦은 오후, 다시 한번 달력을 열어 은퇴하기까지의 일수를 셌다. 64일이 남았다. “아. 오전에도 64일 남았었는데. 그대로네.” 그즈음 은퇴 후의 하루하루를 무엇으로 채워나.. 2022. 2. 3. 08. 돈 문제는 명확해야 한다. “이번 달에 얼마나 썼어?” 아내가 가계부를 적는 스프레드시트를 열어 월초부터 사용한 금액을 살핀다. 식사 시간이 다 되어서 공연히 생활비를 물어보는 이유를 아내도 잘 알고 있다. 식사 준비가 귀찮으니 외식을 하면 어떨까 했지만, 이번 달 쓴 비용을 확인한 아내는 단호했다. “벌써 100만 원이 넘었어.” 한여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면서 부엌에 들어가는 게 내키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밖에서 사 먹자 했다. 전달보다 외식을 많이 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리 비싸지 않은 것들로만 먹었으니 아직은 생활비 여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주말에 마트에서 장 한 번 보면 끝이야. 오늘은 외식 안 돼. 뭐 당신이 사는 거면 나가서 먹어도 되고.” 한 달 용돈으로 10만 원밖에 주지 않으면서 밥을 사라니. 인심은 넉넉.. 2022. 2. 2. 06. 디자이너 베이비와 남녀 선별 출산 (마지막 회) 착상 전 진단은 디자이너 베이비(맞춤아기)와 남녀 선별 출산에도 이용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수정란을 조사하여, 병 때문에 이식을 필요로 하는 아이와 HLA형(백혈구 표면항원형. 한국에서는 조직적합성항원형)이 일치하는 배아 즉, 수정란을 자궁에 다시 넣어 탄생시키면 병이 있는 아이를 구할 수 있는 ‘도너 베이비’-도너가 되는 아기를 낳을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형과 누나・언니와 오빠를 돕는 ‘구세주 형제’(남매)를 탄생시킬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사례는 윤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이미 몇몇 나라에서 실시되고 있습니다.(영화 에서도 다루어지고 있음/한국어 제목 ) 또 착상 전 진단에 대한 법규제가 존재하지 않는 미국과 규제가 느슨한 타이 등지에서는 여자아이를 낳고 싶다든가 이번에는 남자아이였으면 좋겠다.. 2022. 1. 28. 07. 평생 해 줄 수 있는 것만 할래 모두 내가 앞으로도 평생 할 수 있는 것들이다. 관심을 갖는 것, 지켜보는 것, 집중하는 것, 함께하는 것. 아내와 난 결혼기념일을 챙기지 않는다. 그날은 보통의 여느 날과 다르지 않다. 결혼 후 처음 맞았던 결혼기념일 날, 나는 회식이었고 아내는 야근을 했다. 지금까지 5번의 결혼기념일을 보냈는데, 기억으로는 저녁을 딱 한 번 함께했다. 동네 고깃집에서 삼겹살을 먹었고, ‘그래도 기념일이니까’ 하며 소주를 곁들었다. 기념은 하지 않지만, 그 날짜를 그냥 버려두기는 뭐해서 집 현관문의 비번으로 살려두었다. 크리스마스도 큰 의미를 두지 않고 흘려보낸다. 우린 그날을 사람이 너무 많아 거리가 붐비는 날, 밖에 나가면 고생하는 날, 그냥 동네 산책하는 게 나은 날로 여긴다. “이번 크리스마스 때 어떤 이벤트를.. 2022. 1. 28. 05. 착상 전 진단이란? 착상 전 진단이란, 수정란의 단계에서 아이의 병과 성별, 백혈구의 모양 등을 진단할 수 있는 기술입니다. 진단에 근거하여 자궁에 이식하는 배아(수정란)를 선택하면 중증 유전성 질환을 가진 아이의 출생을 피하거나, 남녀선별 출산의 희망을 이루거나, 이식에 필요한 장자(長子) 도너가 될 수 있는 아이를 탄생시킬 수 있습니다. 수정란 진단이라고 불리고, 영어로는 Pre-implantation Genetic Diagnosis, 국제적으로는 PGD라는 통칭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2012년 ‘신형’ 착상 전 진단으로 보도된 PGS ‘착상 전 유전자 스크리닝(pre-implantation genetic screening)’도 있습니다. 착상 전 진단은 체외수정 기술과 유전자 해석기술이 결합된 것입니다. 구체적으로는 .. 2022. 1. 27. 06. 이른 은퇴 준비, 부모님이란 큰 산을 넘다. 은퇴 후 살아갈 모습이 구체적으로 그려지면서, 언젠가 술자리의 친구들에게 처음으로 은퇴 계획을 말했다. “은퇴라고?” 2년 가까이 아내와 함께 치열하게 고민하고 준비했던 이슈였다. 가지고 있는 집을 파는 거로 10년을 벌었고, 10년이 지난 후부터는 든든한 연금이 있었다. 은퇴 이후 살아갈 모습은 아내와 이미 그렸다가 지우고, 다시 그리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다. 형태가 보이기 시작하는 은퇴 후 모습은 제법 괜찮아 보였다. 쏟아지는 질문을 받을 준비가 됐다. 기자 회견장에서 경쟁하듯 손을 드는 기자들에게 질문의 순서를 정해 주는 주인공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도 요즘 은퇴하고 싶다. 네가 먼저 해 보고 어떤지 알려줘.” 음? 그게 끝이야? 궁금한 건 없어? 질문을 안 하니 덧붙일 게 없었다. 친구들은 내 .. 2022. 1. 27. 05. 돈 못 버는 10년, 집을 팔기로 했다. 앞으로 살아갈 매일매일이 여행 같은 삶이 될 것 같았다. 밥벌이가 될,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건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다. 짧은 호흡으로 서둘러 찾으면 지금까지 했던 일과 비슷한 일들만 눈에 보일 것 같았다. 당장 돈이 되는 일이 아니더라도, 이를테면 운동을 한다든가 책을 읽는다든가 여행을 다닌다거나 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져보기로 했다. 그렇게 쌓이는 시간은, 하루하루 버텨낸 것만으로 만족하던 때의 시간과는 분명히 다를 거라고 기대했다. 회사에 얽매이지 않아 자유분방한 일상이 5년, 10년 쌓이게 되면, 지금은 잘 알 수 없지만, 그 긴 시간에서 만들어지는 무언가가 분명히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가는 건 모든 게 다 비용이다. 우리가 가진 돈으로 최대 몇년까지 버틸 수 있을지 궁금했다. 2인 가구.. 2022. 1. 26. 04. 결혼 후, 아내가 변했다. 결혼하기 전에, 퇴사는 나를 한참이나 깎아내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저만치 아래로 내려가 버린, 그래서 더 이상 서로의 눈높이를 맞출 수 없는 나는, 더 이상 아내 앞에서 예전처럼 당당히 설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설령 용기를 내어 피하지 않고 고개를 들어 마주 선다고 하더라도, 그 모습이 뻔뻔함으로 보이지는 않을까 두려웠다. 아내는 그런 걱정이 나 혼자 불어 제껴 부풀어버린 풍선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깟 일 때문에 당신이 달라지는 건 없어.” 퇴사 시기를 잡기 전 돌아봐야 할 것이 많았다. 결혼을 하면서 새로운 가족이 늘었고, 가족은 내 선택과 결정을 일일이 설득하지 않아도 되는 친구나 지인들과는 달랐다. “너희 부모님은 어떻게 생각하실까?” 나의 퇴사를 망설임 없이 동의해 주던 아내.. 2022. 1. 25. 03. 내가 먹여 살리면 되잖아! 아내와 나는 스쿠버다이빙 어드밴스 자격증이 있다. 스쿠버다이빙 입문자가 따는 첫 번째 자격증이면서 최대 수심 18m까지 다이빙할 수 있는 오픈 워터 자격증은 2012년 제주도에서 취득했고, 그해 보라카이에서 오픈 워터 자격증보다 한 단계 위인 어드밴스 자격증을 취득했다. 수심 30m까지 다이빙할 수 있는 어드밴스 자격증까지만 있어도 거의 대부분의 세계적으로 유명한 다이빙 포인트 접근이 허용된다. 2012년 이후로 1년에 한 번, 적어도 2년에 한 번 정도는 아내와 함께 스쿠버다이빙 여행을 떠났다. 보라카이, 보홀 발리카삭은 결혼 전에 다녀왔고, 호주의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 태국의 시밀란은 결혼 후에 다녀왔다. 아내는 다음 다이빙 포인트로 몰디브를 가고 싶다고 했는데, 일단 코로나가 진정돼야 한다. 사실.. 2022. 1. 24. 이전 1 ··· 3 4 5 6 7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