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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한의사로서의 삶, 간병인으로서의 삶 주말에 아버님의 생신이었다. 평소 좋아하시는 초밥과 잡채, 미역국, 새우구이를 준비했다. 생일 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아이와 함께 생신 축하 노래도 불렀다. 명절이나 생신 때마다 외동아들과 며느리만 축하하던 과거에는 잔칫상이 썰렁했는데 아기가 채워준 우리 집 공간은 참 크고 따뜻했다. 아버님은 센터에서 돌아오시면 저녁 시간 거실에서 아이와 놀이를 하신다. 아기가 갓난쟁이 때는 아버님이 주로 실내용 유모차를 밀어 주셨지만, 지금은 상호 작용이 가능할 만큼 자랐다. 아기는 할아버지가 방에서 나오시면 반가워서 “카! 카!”라고 외친다. 카드놀이를 하려는 것이다. 한 통에 50장의 카드가 들어있는데 한자리에 앉아 다 공부할 만큼 아이의 인내심이 늘었다. 아이는 할아버지와 카드놀이를 하면서 자신의 지식을 알려주는 .. 2022. 11. 18.
07. 이제는 만날 수 없는 할매에게 할매는 굳센 바위 같은 사람이었다. 모진 세월의 비바람을 맞고도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제자리에 서 있는 바위. 열아홉 살 전쟁미망인은 자신 앞에 놓인 운명을 받아들이고 어린 아들과 살아남기 위해 가장 단단한 바위가 되었다. 세상사 웬만한 일에 눈도 깜짝 안 하셨고 싸늘한 눈가에는 눈물이 말라 흐르지 않았다. 어느 날 그 바위틈에서 여린 풀이 자라났다. 차갑게 메말랐던 바위는 그 풀잎을 금지옥엽처럼 여기고 사랑했다. 나는 할매의 첫 손녀였고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성장했다. 우리는 25년을 한집에서 살았다. 25년째 되던 해 어느 여름날이었다. 영맘 할매! 할매! 엄마, 할매는? 엄마 할매 2층에 계신다. 요즘 자꾸 2층 소파에 누워만 계시네. 할매가 어느 날부터 2층 소파에 누워만 계셨다. 아픈 데는 없는데.. 2022. 11. 17.
06. 생로병사의 선생님께 배우는 삶과 죽음 영맘 어르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할머니 선생님도 새해 복 많이 받아요. 영맘 감사합니다. 할머니 나는 이제 받을 복은 죽을 복밖에 없소. 자식 고생 그만 시키고 내일이라도 자던 잠에 죽는 것이 소원이에요. 나의 의례적인 새해 인사에 할머니는 비장함을 가득 담아 답인사하신다. 생의 마지막 경계에 가까이 서있는 요양병원에서 ‘죽음’이라는 화두는 젊은 한의사에게 언제나 조심스럽다. 사람은 모두 언젠가 죽는다. 그러나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사는 이는 드물다. 잠자리에 누워 내일이 오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잠드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나 역시 요양병원이라는 직장에 다니지 않았다면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타인의 늙음, 병듦, 죽음을 지켜보면서야 ‘나의 죽음, 그 순간은 어떨까.. 2022. 11. 16.
06. 사랑하는 그대를 나 기억해요... 심금을 울린 <너를 만났다> 테마곡 사랑 사랑하는 그대를 나 기억해요 우리의 사랑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언젠가 모두 사라지겠죠 그래서 나 노래해요 영원히라 믿는 노래로 그대를 _강아솔 ‘Dear’ ‘어떻게 이런 음악과 가사가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하늘에 있는 가족을 가상현실에서 잠시 만난다는 이 프로젝트를 위해 기다린 노래 같았다. 우리 둘의 일을 아는 모든 사람이 사라진다는 것은, 시간이 흐르고 지금 이 지구의 모든 사람도 죽고 없어지는 것… 우주의 나이에 비하면 인간의 삶이 얼마나 짧은지, 이상하게도 기억에 관해 생각할수록 시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Dear’는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생각했던 시간과 기억에 대한 느낌을 너무나 짧은 가사로 잘 표현하고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너, 우리가 사랑한 너랑 나 둘의 기억만큼은 영.. 2022. 11. 11.
01. 치열한 노년의 삶 아무리 가까이에서 늙음과 병듦, 죽음을 관찰해도 아직은 노년의 삶이 제삼자의 일처럼 느껴진다. 다만, 영원히 늙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하고 젊은 날을 조금 더 의미 있게 살아야 한다는 것과 늙고 병들고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에는 반드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요양병원에서 늙음을 관찰하며 한 가지 결론을 얻었다. 늙는다는 건 젊은 날을 살아냈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죽지 않고 살아남았기에 젊은 시절을 보내고 오늘날까지 늙을 수 있는 것이다. 다리가 불편해서 늘 휠체어에 앉아 계신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강제 징용되어 일본으로 끌려가셨다가 함께 간 사람 중 유일하게 살아남으신 그 옛날을 회상하신다. 또, 다섯 남매를 낳아 기르고 농사짓고 살림하느라 허리가 굽어 침상에 제대로 눕지 못하시는 할.. 2022. 11. 11.
05. 나연이 버츄얼 휴먼에 도전, 모션캡처가 뭐에요? 나연이의 버츄얼 휴먼이 완성되고 있었다. 이제 모션 캡처를 할 차례다. 모션 캡처용 수트를 입은 배우의 동작을 따서 그 데이터로 캐릭터를 움직여야 한다. 이렇게 녹화된 동작 그대로 엄마와 만남이 이루어진다. 동작을 맡은 배우는 아이의 사진과 동영상을 연구하며 의욕적으로 참여해 주었다. 모션 캡처 전에 아이를 오랫동안 돌봐주셨던 유치원 선생님을 섭외해 아이의 동작을 세심히 물어보기도 했다. 아이가 어떻게 걷는지, 어떻게 뒤돌아보는지, 어떻게 웃는지 등을 배우가 시연하면 선생님이 수정하는 방식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닮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이다. 나연이의 유치원 선생님은 성심껏 모든 동작을 기억해 우리에게 도움을 주었다. 인터뷰는 한사코 사양했다. 속으로 내내 울고 계셨던 것 같다. 나연이가 달려와 안.. 2022. 11. 10.
00. <저는 부모님을 요양병원에 모시려고 합니다> 연재 예고 요양병원 한의사가 10년간 환자의 생로병사를 지켜본 삶의 기록! 지인들이 저에게 호기심 반, 두려움 반의 눈빛으로 하는 질문입니다. 그 지인이 2050세대라면 호기심의 마음이 조금 더 크게 느껴지고, 6080세대라면 두려움의 마음이 조금 더 크게 느껴집니다. 간혹 요양병원의 열악한 환경을 고발하는 뉴스를 보고는 “나는 늙고 병들어도 절대 요양병원에 가지 않겠다.”라며 애써 피하는 분도 계십니다. 그러나 이러한 호기심과 두려움, 회피하려는 마음은 아직 요양병원이라는 미지의 공간에 가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요양병원은 누군가에게 호기심의 대상이거나, 상상하기도 싫은 두려운 미래의 공간이지만, 그곳의 환자분들에게는 오늘을 살아가는 치열한 삶의 현장입니다. 그리고 저는 매일 그분들과 함께 현장을 누비는 요양병원.. 2022. 11. 9.
01. 삶이란 너랑 했던 일들의 기억 VR 기술을 어떻게 결합할 생각을 했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때마다 다른 대답을 한 것 같은데,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다만 ‘어떤 공간 안에서 헤어진 가족을 다시 만난다면’이라는 기획안을 쓰긴 했다. 자신은 별로 없었다. 기획을 꺼내면 접어야 할 이유가 할 이유보다 많은 법이다. 가장 구체적인 부정적 반응은 “HMD를 쓰고 있으면 표정이 안 보이는데 감정이 전달되겠냐”라는 반응이었다. 맞는 말이라 뭐라 하기도 어려웠다. 이런 말들을 들으면 “아무래도 그렇지” 하고 접을 생각부터 하게 된다. 그로부터 1년 후, 코로나가 막 유행하던 2020년 1월에 의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홍보 자료에 VR과 휴먼 스토리의 결합이라고 해서인지 많은 기자가 와주었다. 프로그램을 소개하는데 긴장해서 적어온 말들을.. 2022. 11. 6.
05. 사는(buying) 집이 아니라 사는(living) 집 (마지막 회) 최근 들어 ‘사는(buying) 집이 아니라 사는(living) 집’이어야 한다는 표현을 심심치 않게 듣는다. 집이 부동산시장에 지배받는 경제적인 생존수단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아파트 시세라는 객관적인 지표는 우리 사회에서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의 경제·사회적 상황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따라서 입지 좋은 곳에 아파트를 소유하는 것이 삶의 목표이고 우상이 된 지금, 사람들은 기꺼이 부담스러운 은행 대출을 받아서라도 아파트를 구매한다. 매달 감당해야 하는 대출금은 삶을 지속해야만 하는 이유 중 하나가 되지만, 결국 삶에서 가장 무거운 경제적인 짐이 된다. 집의 경제적 가치가 우선시되면서 투자 대상이 될 때 집의 본질적인 가치인 셸터, 즉 피난처의 의미는 점점 약해진다. 따라서.. 2022. 11. 3.
10. 소음을 줄이고 나 자신과 소통하라. (마지막 회) 중요한 것에 집중하라. 얼마 전 나는 깜깜한 밤에 해변에 앉아 부서지는 파도를 바라보며 다시금 바다의 엄청난 에너지에 감탄했다. 강렬한 힘을 뿜어내는 바다를 보고 있다 보면 바닷물이 멀고 먼 길을 여행한 끝에 그 파도가 목적지에 다다른다는 사실을 깨닫곤 한다. 반짝이는 별로 수놓아진 밤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나는 이러한 자연의 힘을 완벽히 이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세상 속의 아름답고 중요한 것들을 너무 쉽게 놓치고 만다. 필요한 양의 산소와 중력, 그리고 다른 자원과 에너지가 있어 지구 위에서 생명체가 살 수 있다는 사실은 정말 놀랍고 신기한 일이다. 지구는 엄청난 행성이다! 노을과 일출, 해변, 산, 바다, 강, 호수, 야생동물, 숲, 그리고 수천 년 동안 약속한 듯이 찾아오는 계.. 2022. 10. 26.
06. 가상의 세계에서 빠져나와라. “가상의 세계와 연결을 끊고 대신 우리의 진짜 모습에 더욱 가까워지도록 노력하라.” 가상의 세계에서 빠져나와라. 어느 날 오후, 나는 ‘핵심 믿음’과 ‘정체성’, 그리고 이 두 가지가 ‘신념’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와테고스 베이의 주차장에 도착한 나는 아침에 콘퍼런스에서 강연을 마친 후 오후에는 글을 쓰면서 아주 멋진 자연경관을 즐길 생각이었다. 호주 전역을 여행하는 일은 그 자체로 엄청난 기쁨이다. 삶을 살아가기에 호주는 너무나도 아름답고 훌륭한 곳이다. 한때 내가 이곳에 정착하리라고는 전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적도 있었지만, 어쨌든 나는 지금 이곳에서 살게 되었고 그러한 사실에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 나는 45분여간 호주의 동쪽 가장 끝부분인 등대에서 말없이 바다.. 2022. 10. 22.
00. <사람과 삶을 담는 공간, 건축> 연재 예고 건축은 사람과 삶을 담는 공간이며 건축가는 공간을 만드는 실천적인 예술가 사람은 결코 혼자 살 수 없으며, 서로 협력해야만 하는 존재다. 협력은 서로에 대한 이해이며,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해도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이다. 함께 살아야 하고, 함께 살아갈 길을 모색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건축은 단순히 건물이나 구조물 따위를 세우거나 쌓아 만드는 데에 머물지 않는다. 공존을 위한 물리적인 환경과 사회적인 환경을 고민하고 제안하며 가시화해야 한다. ‘사람이란 무엇인가’ 시리즈 중 아홉 번째 《사람과 삶을 담는 공간, 건축》은 사람과 삶을 담는 공간으로서 건축의 의미를 생각하고 우리 주거문화를 이야기한다. 1장은 프랑스 파리의 도시 근대화 과정에서 미처 해결하지 못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등 주거 문.. 2022. 10. 14.
05. 우리는 언제 죽을까? 우리는 언제 죽을까? 심장이 멈출 때? 혹은 뇌사에 빠질 때? 아니면 사회에서 내 존재가 잊힐 때? 어떤 순간을 죽음으로 보는가 하는 문제는 우리가 삶을 무엇으로 보는가 하는 문제와 연결된다. 나는 단순히 육체 기능의 멈춤을 죽음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몸은 없어지더라도 우리는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계속 살 수 있다고 믿는다. 어쩌면 그렇게 믿어야만 내가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견딜 수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삶은 덧없지만 죽음 후는 다를 거라는 말에 기대어 본다. 디즈니, 픽사의 애니메이션 〈코코〉는 ‘죽은 자의 날’을 배경으로 이루어진다. 죽은 자의 날이라고 하면 우리나라의 제사가 생각나지만, 경건한 우리나라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멕시코의 그것은 명절이자 축제다. 화려한 색으로 장식한 해골과 촛불로 무덤을.. 2022. 9. 2.
00. <같은 파도는 다시 오지 않아> 연재 예고 오늘 치는 파도는 내가 인생에서 만날 수 있는 딱 한 번의 파도니까 오늘 치는 파도는 내가 인생에서 만날 수 있는 딱 한 번의 파도니까 인생의 대부분은 일을 하는 시간으로 채워진다. 우리의 시간에서 일을 떼어 내기란 어렵다. 삶에서 일을 분리할 수 없다면 중요한 건 그 시간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보내느냐이다. 일을 할 때 즐거움을 느낀다면 우리의 시간은 즐거움으로 가득 차지만, 일을 부정적인 마음으로 대한다면 많은 시간이 부정적인 감정으로 채워진다. 『같은 파도는 다시 오지 않아』의 저자 김은정은 일을 할 때 행복을 느낀다고 말한다. 『같은 파도는 다시 오지 않아』의 저자는 아버지가 출장을 갔다가 사 온 캐릭터 상품들로 가족 역할 놀이를 하던 소녀였다. 저자는 어릴 적 친구였던 캐릭터들과 함께 나이를 먹으.. 2022. 8. 19.
07. 위기를 무시하는 것이 진정한 위기다. 삶아 죽은 청개구리 효과 19세기 말 미국 코넬대학교의 한 연구자는 일찍이 유명한 ‘개구리 실험’을 진행한 적이 있다. 먼저, 개구리 한 마리를 끓는 물에 던지자 개구리는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바로 튀어 올랐다. 그 후 다시 개구리를 찬물이 가득 담긴 큰 냄비에 넣고 천천히 냄비를 가열하자 개구리는 외부 온도 변화를 느끼면서도 타성에 젖어 밖으로 달아나지 않았다. 천천히 온도가 올라가 결국 견딜 수 없을 만큼 뜨거워지자 이미 튀어 오를 힘을 잃은 개구리는 그대로 삶겨 죽고 말았다. 1872년 헌츠먼은 해당 실험을 더 정밀하게 진행했다. 그는 90분 동안 물을 21도에서 37.5도까지 가열하며 평균적으로 분당 0.2도 미만으로 가열했는데 그사이에 개구리의 이상 행동은 관찰되지 않았다. 계속된 실험 끝에, .. 2022. 8. 17.
05. 비늘구름 뜨는 오후 (마지막 회) 엄마, 잘 지내고 있죠? 그렇게 보고 싶어 하던 할머니랑 이모 만나 방방곡곡 여행 다니시느라 정신이 없겠어요. 언니들 만나서 엄마 계시는 곳에 갔더니 안 계시는지 “아이고, 우리 딸내미들 왔나?” 한마디 말이 없더군요. 그래도 우린 섭섭하지 않아요. 엄마가 놀러 갔다고 여기니까요. 엄마, 탁 트인 하늘 보니 속이 시원하지요? 생전에 아들 없어 말도 못 하시고, 울산 이모 묘를 그렇게 부러워하시는 모습에 참, 마음이 무거웠어요. 말로는 한 줌의 재로 만들어 흔적도 없이 새 모이가 되게 뿌려 달라고 하더니, 말씀하셨으면 될 걸 혼자 속앓이를 한 것 같아 마음이 아팠어요. 엄마가 아주 좋지 않을 때 엄마 갈 곳도 정해 뒀다는 말에 내 집도 마련해 뒀냐며 그리 반갑게 웃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마음에 드셨.. 2022. 7. 19.
00. <그녀를 그리다> 연재 예고 박상천 시집 우리 인생엔 어느 날 느닷없이 생각지도 못한 어둠 속에 버려지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시인에겐 아내와의 사별이 그랬다. 급작스럽게 아내를 떠나보내고 시인은 ‘의미 없는 시간의 한구석’에 버려졌다고 느낀다. 아내의 부재는 모든 곳에서 왔다. 겨울이 깊어져도 바뀔 줄 모르는 여름 이불로, 단추가 떨어진 와이셔츠 소매로, 김치 얼룩이 지워지지 않는 도마로, 커피 머신으로 양치 컵으로 쑥갓으로, 아내는 ‘없음’의 모습으로 시인의 곁에 내내 머문다.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기 위해 시인은 삶 곳곳에 남아 있는 아내의 흔적들에 관한 시를 쓰기 시작했다. 아내에 대한 시를 쓰는 것이 오히려 마음을 안정시켰기 때문이다. 늘 있지만 늘 없는 아내를 생각하며 시를 쓰다가 시인은 아내의 웃음만이 아니라 도란거리는.. 2022. 6. 10.
07. 관계 리셋 : 봄날을 선물 받다. 대학 졸업 후, 20년 넘게 가족만 바라보는 엄마이자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만 살았다. 주위 사람들이라고는 가족, 학부모, 같은 일을 하시는 선생님들, 학생이 전부였다. 자식들은 성장해 하나둘 우물 밖으로 떠났지만 난 그럴 수 없었다. 안전한 우물 밖으로 나가야 할 이유도 용기도 없었다. 바깥세상은 뱀과 독수리 같은 위험천만한 일들이 도사리고 있다고 착각했다. 그랬던 내가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꿈을 찾아 모험을 떠났다. 혼자서 우물 밖으로 기어 나왔던 것이다. 포근하다고 생각했던 우물은 나오고 나니 지하 감옥이 따로 없었다. 바깥은 따뜻한 햇볕과 예쁜 꽃들과 푸른 나무가 가득한 아름다운 세상이었다. 우물 안에서 혼자 무섭고 우울했던 시간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듯 새로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2022. 6. 3.
04. 스파이더맨의 비애 아침에 일어나니 작은 아이가 큰아이 방에서 함께 자고 있었다. 밥을 먹으면서 물었다. 엄마 : 진아, 자다가 무서운 꿈 꿨니? 그래서 형 방에서 잤어? 진 : 엄마, 어제 진짜 무서웠어. 내가 스파이더맨이 된 거야. 엄마 : 스파이더맨? 진 : 어. 근데 엄청 높은 빌딩에서 형한테 뛰어내리라고 했거든. 내가 잡아 준다고. 엄마 : 그래서? 진 : 형을 놓쳤는데, 죽은 거야. 얼마나 무섭고 놀랐는지 몰라. 자다가 깨서 형 방에 갔잖아. 엄마 : (웃으며) 그래. 괜찮아. 개꿈이네. 두 아이가 학교에 갔다 오더니 학원 갈 준비를 한다. 큰아이가 큰소리로 나를 불렀다. 엄마 : 어. 왜? 형 : 엄마, 진이가 나한테 새 자전거를 준대. 엄마 : 진짜? 형 : 엉. 영원히 가지래. 어제 살려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2022. 5. 30.
00. <스파이더맨의 비애> 연재 예고 남다르게 평범한 여성의 가족과 책과 인생 책을 여는 말 아이들을 키우면서 마주이야기를 썼다. 어디 풀 곳도 없고 키우는 일은 만만치 않아서 엄마인 나를 늘 좌절하게 했다. 육아는 오롯이 혼자만의 몫이었고, 모순투성이 엄마는 항상 흔들리고 약해지고 답답했다. 그렇지만 아이들의 행복과 기쁨에 1순위를 두었던 것은 지금까지 했던 일 중 가장 잘한 일이다. 이제 20대를 살고 있는 아이들은 최소한 ‘자기 행복에 대해 아는 사람’이 되었다. 그 덕분에 엄마인 나는 조금 마음을 놓아 본다. 자기 행복을 아는 사람이 남의 행복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 그러면 따뜻한 사회 일원이 되리라 생각한다. 요즈음은 ‘혼자 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혼자 하는 말도 점점 늘겠지, 생각한다. 나이가 들수록 혼자 잘 노는.. 2022. 5. 25.
08. 괜찮아(No pasa nada) 힘들거나 난처한 크고 작은 일은 일상생활에서 생긴다. 괜찮다고 표현할 때 스페인어로는 이렇게 말한다. No importa. (노 임뽀르따) 중요하지 않아. No pasa nada. (노 빠사 나다) 아무 일도 아냐. 두 표현은 일상생활에서 정말 많이 쓰인다. 삶이라는 큰 쇠공은 계속 굴러간다. 그 길에 크고 작은 일들이 발생한다 하여도 공은 여전히 단단하다. 쇠공에 작은 상처가 날 수는 있어도 멈추지 않는다. 어떤 일은 일상생활 속 작은 일이 아니어서 정말로 공을 멈추게 할 수도 있다. 왔던 길을 다시 가게 하거나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버릴 수도 있다. 인생에는 고난과 시련이 항상 함께한다. No hay mal que por bien no venga. 아직 오지 않은 선(善)이 있기에 세상에 나쁜 것.. 2022. 5. 25.
01. 올해도 수고했어(Feliz cumpleaños) - 생일 축하합니다! - Happy birthday! - お誕生日おめでとうございます。 일 년에 딱 한 번 있는 생일은 기쁜 날이다. 아니, 마냥 기쁜 날은 아니었다. 두려움, 부담감, 슬픔도 수반된다. 누군가에게 축하받아야 하는데 아무도 몰라줄 수도 있다. 스스로 다른 사람에게 알리기도 애매하고, 잊고 싶어도, 내 정보가 등록된 가게에서 고객 생일 축하 메시지가 온다. 설렘을 주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누군가는 더 외롭게 느끼는 것처럼 특별한 날은 오히려 고독함을 던져주기도 한다. 생일은 나이를 한 살 더 먹었다는 증명일이다. 태어난 날로부터 점점 멀어지면서 죽을 날에 가까워지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숙명(amor fati)이다. 그렇다면 스페인어로는 ‘생일 축하해’를 어떻게 말할까. ¡Feli.. 2022. 5. 12.
08. 가족 VS 물질적 행복 얼마 전에 남편이, ‘당신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를 물어보는 미국 한 리서치에서 다른 나라들은 모두 ‘가족’을 1순위로 선택했는데, 한국만이 유일하게 ‘물질적 행복’을 가장 중요하게 선택했다고 이야기했다. “에이 설마…. 어떻게 그럴 수가?” 그래서 자료를 찾아보았는데 놀랍게도 사실이었다. 미국 Pew 리서치 조사1 중 미국, 영국, 프랑스 그리고 일본까지. 모든 나라는 ‘가족’이 가장 중요했는데 우리나라만 유일하게 ‘물질적 행복’이 1위였다. 그래서 이에 대해서 내가 아는 지인들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중 결혼한 지 아직 10년이 채 안 된 지인이 말했다. “나도 지금은 물질적 행복이 중요해. 솔직히 처음에는 사랑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다른 것 다 안 보고 사람.. 2022. 5. 12.
10. 지금 이 순간을 사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회) 지금 이 순간을 사시기 바랍니다. 지나간 어제를 후회하다보면 오늘이라는 귀중한 시간이 무의미하게 흘러갈 것입니다. 어제로 인해 오늘이 낭비되지 않게 해주세요. 지금 눈앞에 있는 일에 전념할 때 함께하는 그 사람의 말을 깊이 경청할 때 현재를 최대한 누리고 느끼게 됩니다. 더 애쓰고, 더 마음을 내어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2022. 5. 3.
00. <깊은 밤을 건너온 너에게> 연재 예고 여백을 담는 일상의 빛깔 여백을 담는 일상의 빛깔 나는 수채화를 그리는 사람이다 《깊은 밤을 건너온 너에게》 누군가가 ‘수많은’의 기준을 물었다. 나는 모른다. 각자의 삶이 다르듯 ‘수많은’의 조건과 기준은 다르다. 연습을 통해 적당한 농도를 조절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말의 의미를 깨달을 것이다. 평범한 삶이 어렵듯 적당한 농도를 찾는 것 또한 쉽지 않다. 농도를 조절하는 연습을 거치다 보면 투명성을 확보하더라도 마음에 들지 않은 그림이 나올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채화를 그리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있다. 자신만의 ‘농도’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그 농도를 사계절로 나누어 풀어놓는다. 봄에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은 열정과 생각이 가득하고, 여름에는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할 수.. 2022. 5. 2.
09. 오늘의 생각과 행동이 내일의 나를 만듭니다 과거의 생각과 행동이 오늘의 나를 만들고 오늘의 생각과 행동이 내일의 나를 만듭니다. 후회로 여겨지는 과거가 있다면, 인정하고 받아들이세요. 앞으로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결정할 수 있습니다. 지난날의 과오를 뉘우치지 않고, 남을 탓하고 불평한다면 남는 것은 만족할 수 없는 현재의 삶입니다. 미래를 바꿀 힘은 지금 이 순간에 있습니다. 5년 뒤, 10년 뒤의 나에게 어떤 얘기를 할 수 있습니까? 충만한 미래를 살아갈 권리를 포기하지 마세요. 현재는 과거의 부족을 만족으로 바꿀 수 있고 만족할 수 있는 미래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지금을 소중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2022. 5. 2.
08. 침묵의 힘은 위대합니다. 침묵의 힘은 위대합니다. 내 마음에 치유의 공간을 만들고, 그곳에서 머물 힘은 오직 침묵에 있습니다. 침묵 속에 머물고 있을 때 고요함의 지혜가 떠오릅니다. 지혜는 삶의 방향성을 제시합니다. 지혜의 힘으로 삶을 아름답게 가꿀 수 있습니다. 침묵의 위대한 힘은 겉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침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음속으로는 불평불만을 쏟아내기도 합니다. 쉼 없이 계속 말을 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끊임없이 말하면서도 내면에서는 고요한 지혜로 침묵을 지킵니다. 필요 없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한 마디의 울림이 감동을 줍니다. 2022. 5. 1.
00. <세상은 가만히 있는데 내 마음이 흔들릴 때> 연재 예고 지친 마음을 포근히 안아주는 이야기 섬에서 잠시 쉬었다 가세요! 딱딱한 하루가 말랑해지는 100가지 이야기. 저자가 따뜻한 호흡을 담아 여러 현장의 오프라인 게시판과 온라인 게시판, 저널지, 웹진, SNS 공간 등에 게시했던 수많은 글 중에서 선별하여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괜스레 울적하고 마음이 헛헛할 때, 우연히 마주친 글귀에서 기대치 않은 위로를 받을 때가 있고, 심란한 마음으로 SNS를 보다가 눈에 드는 사진 한 장, 이야기 한 자락에 마음이 정렬되는 순간도 있다. “세상은 가만히 있는데 내 마음이 흔들릴 때”는 이런 뜻밖의 조우를 통한 기쁨을 온전하게 맛볼 수 있는 도서로, 저자가 따뜻한 호흡을 담아 여러 현장의 오프라인 게시판과 온라인 게시판, 저널지, 웹진, SNS 공간 등에 게시했던 수많.. 2022. 4. 22.
00. <내 마음에 글로 붙이는 반창고> 연재 예고 마음의 편안을 원하는 영혼에게 건네는 따뜻한 글 한 스푼 젊은 수도승 도연 스님의 섬세하고 따뜻한 성찰, 그리고 인생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살아내고 있는 당신에게 희망이 좌절되고 불안이 일상화된 상실의 시대에 지친 당신을 위로하고, 상처받은 마음에 새살을 돋게 해줄 카이스트 출신 수도승 도연 스님의 상처 치유 에세이가 출간되었다. 『내 마음에 글로 붙이는 반창고』는 인간의 삶을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사계절의 흐름 속에서 조망하며, 가장 나다운 삶을 꿈꾸는 지친 현대인에게 따듯한 조언을 건넨다. 도연 스님은 날카로운 온기를 담은 시선으로 속도경쟁에 지친 직장인, 보이지 않는 미래에 갈피를 잃은 젊은 세대의 내면을 직시한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주변 상황을 과도하게 의식하거나 경쟁에.. 2022. 4. 22.
04. 뿌리로 돌아감 致虛極, 守靜篤. 萬物竝作, 吾以觀復. 夫物芸芸, 各復歸其根. 치허극, 수정독. 만물병작, 오이관복. 부물운운, 각복귀기근. 歸根曰靜, 靜謂復命. 復命曰常, 知常曰明. 不知常, 妄作凶. 귀근왈정, 정위복명. 복명왈상, 지상왈명. 부지상, 망작흉. 知常容, 容乃公, 公乃全, 全乃天, 天乃道, 道乃久, 沒身不殆. 지상용, 용내공, 공내전, 전내천, 천내도, 도내구, 몰신불태. 비움에 이르기를 지극히 하고, 고요함을 지키기를 돈독히 해라. 만물은 다 함께 자라는데, 나는 그것을 통해 자연의 순환하는 이치를 본다. 만물은 무성하지만, 제각각 자신의 뿌리로 돌아간다. 뿌리로 돌아가는 것을 일러 정(靜)이라 하는데, 이것을 명(命)으로 되돌아간다고 부른다. 명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늘 그러한 이치[常]라 하고, 늘 .. 2022.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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